1938년 10월 1일

읍명 변경, 성대하게 봉고제
초대읍장에 안종순 씨 임명

 

 

 

“十月 一日의 時政記念日을 期하여 京畿道內 利川郡 利川面과 平澤郡 平澤面은 각각 利川邑과 平澤邑으로 昇格을 하였는데, 이날 意味 깊은 昇格을 期하여 利川邑과 平澤邑에서는 當日 郡守와 面長과 其他 關係者들이 神祠에 參拜한 後 奉告祭를 盛大리 擧行하였다. 그리고 邑長은 現在의 面長으로 重任할 터인데, 利川邑은 李起鎬氏요, 平澤邑은 安鍾順氏로 이 두 곳 面이 邑으로 昇格한만큼 將來 京畿道內 有數한 生産都市로서 飛躍할 것을 期約하게 되었고, 더욱 두 곳 邑은 最近 鐵道 沿線에 있는 農産物 其他 商業의 集散地로 刮目할만한 發展을 하고 있는 곳이라 한다. 이날 京畿道로부터는 姜屬과 棗囑託이 利川邑과 平澤邑 奉告祭에 참석하였다. ”(『매일신보』 1938년 10월 3일)

‘평택’이라는 지명은(地名)은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지만, 가깝게 보면 1938년이다. 일제강점기인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진위군과 평택군, 그리고 수원 등 일부지역을 포함하여 진위군이 되었다. 이때 병파면(丙坡面)과 성남면(城南面)을 합하여 병남면(丙南面)이라고 하였다. 이후 병남면은 1931년 평택면(平澤面)으로 면명(面名)을 변경하였다. 평택역을 포함하고 있는 평택면은 진위군의 중심지로 성장하면서 1938년 10월 1일 평택면은 평택읍으로, 진위군은 평택군으로 각각 승격하고 군명을 변경하게 되었다. 병남면을 평택면으로 변경한 가장 큰 이유는 “평택역이 있는 관계로 일반사회에서는 평택은 알아도 병남은 알지 못하는 고로 상업거래와 기타 제반 관계상 불편”하다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1931년 3월 3일 진위군 면협의회에서 평택면으로 할 것을 만장일치로 가결하였다.

평택읍 승격과 군명을 변경한 1938년 10월 1일 평택군내는 떠들썩하였다. 그야말로 축제 분위기였다. 바로 전날까지도 진위군이었지만 이날 평택군청은 ‘읍 승격 봉고제’를 성대하게 거행하였다. 먼저 평택신사를 참배한 다음 봉고제를 가졌다. 신문기사에는 장소를 언급하지 않았지만, 평택공화당이 아니었을까 한다.

『매일신보』 기사에는 이날 봉고제에 참석한 일본인 모리야마(森山淸吾) 군수를 비롯하여 초대 평택읍장 안종순(安鍾純), 도의원 이민훤(李敏烜)의 담화가 게재되었다. 초대 안종순 읍장은 “대 평택 건설에 일층 노력할 것”이라고 소감을 밝혔으며, 이민훤은 “20년 전 5, 6호의 한촌이 오늘날 명성 있는 대 평택 도시의 중심”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고 회고하였다. 초대읍장 안종순은 1934년 평택면장이 되었는데, 1940년까지 평택읍장으로 활동하였다. 그런데 안종순은 면장과 읍장 이전까지 활동이 전혀 확인되지 않고 있다. 다만 1920년대 안성지역에서 안성상사(安城商事) 지배인, 안성청년회 집행위원 등으로 활동한 안종순이 있는데, 동일 인물인지는 좀 더 확인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한다. 그리고 읍장으로 활동하던 1938년 7월 9일 평택상공회의소 창립을 주도하고 이사로 당선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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