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이면 멀다 쉬는 날이면 어김없이 찾는 곳이 있다. 마음의 고향처럼 포근한 불악산이다. 지금은 부락산 이라고도 한다. 산행하다 보면 항상 눈에 들어오는 문구가 있는데 평택시청에서 걸어놓은 현수막 내용 중 부락산을 시커먼 매직펜으로 浮鶴山(부학산) 고처 쓴 글씨이다. 마음을 아프게 한 문구이다.
1980년대 송탄읍이 시로 승격되면서 현 송탄출장소 자리에 서정지구 대단위 택지개발사업을 진행하면서 불악산의 1/3이 사라졌다. 개발이라는 미명 아래 향토사와 관련된 생태적 가치가 있는 문화자산이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진 것뿐만 아니라 지역에서 구전(口傳)으로 내려오는 불악산의 이름도 사라졌다.
송탄시청 당시 뒤뜰의 별관 이름이 불악회관이었다. 불악산 자락에 있다 보니 당연히 지어진 이름이다. 하지만 1995년 3개 시·군이 통합되고 평택시사가 만들어 지면서 본격적으로 ‘불악산’이라는 이름이 없어졌다. 2011년에 ‘송탄진위서탄고덕을사람하는사람들모임’에서 1995년 이후 지명위원회에서 지명을 변경한 회의 자료와 위원회 위원 명단을 행정정보 공개청구 한 사실이 있는데 회의 자료는 받아 볼 수 없었고, 위원회 위원 명단에 평택시 북부지역 송탄, 진위지역 연고가 있는 위원은 확인 할 수가 없었다. 행정 공무원과 일부 향토사연구가, 교수들이 다수결에 따라 통과되었다는 얘기를 듣고 이 사실에 한참동안 어안이 벙벙했다.
불악산은 시대에 따라 佛樂山(불악산) → 負樂山(부락산) → 佛樂山(불악산) → 負樂山(부락산), 때로는 浮鶴山(부학산), 負鶴山(부학산), 佛鶴山(불학산), 불악산(佛岳山), 佛樂山(불악산), 負樂山(부락산)으로 불린 산 이름이다. 그리 높지 않은 산이며 성(盛)하면서 풍류가 있는 곳 이며, 평택시 북부 송탄, 진위, 고덕 지역주민의 마음의 쉼터이며 어머니 품처럼 포근한 산이다.
역사적 고증자료에 의하면 영조 33년인 1757~1765년에 만들어진 <여지도서(輿地圖書)>에 ‘현의 남쪽 10리에 있고 양성현 천덕산에서 그 줄기가 이어져 온다’고 기록되어 있고,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군현지도인 <해동지도(海東地圖)>와 조선 후기 국정을 총괄했던 비변사에서 만든 <팔도군현지도(八道郡縣地圖)>, 그리고 <대동여지도>에 불악산 산명이 기록되어 있다.
부락산으로 산명이 기록되어 있는 자료는 1843년, 1875년. 1899년에 발행한 <진위읍지(振威邑誌)> 등 이며 현대에 와서 평택시와 송탄시에서 시사를 편찬하였을 때 負樂山(부락산) 명칭을 사용하는 것은 <진위읍지> 문헌을 참고 하였다 하지만< 진위읍지>의 근간이 되는 <해동지도>와 <여지도서>, 그리고 <팔도군현도>에는 ‘불악산(佛樂山)’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김정호 선생이 만든 대동여지도 역시 ‘불악산’이라고 선명하게 표기되어 있으며 지역 주민들 사이에 오래전부터 구전으로 ‘불악산’이라고 전해 내려오고 있다. 1911년 조선총독부에서 작성한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일탄면 부락산(一炭面 負鶴山) 송장면 불학산(松莊面 佛鶴山)이라고 되어 있는 것을 확인 할 수 있다. 이는 발음하기 어려운 지명을 일본의 발음식 지명으로 만들다 보니 불악산의 명칭이 변형되었으며 불악산의 지명을 지금까지 負鶴山(부학산), 負樂山(부락산)이라고 사용하는 것은 애석한 일이다.
다시 한 번 언급하지만 진위, 송탄지역이 고향인 사람들은 불악산(佛樂山)의 지명을 한 결 같이 사용하고 있으며 과거 지명을 하루 빨리 되찾아 주길 바란다.
시대적으로 잘못 변경된 지명과 산명은 하루 빨리 제자리로 돌려놔야한다. 할아버지가 손자 이름을 지어 주는 것은 당연하지만 손자가 선조와 조상님들이 지은 이름을 고친다는 것을 어떻게 생각해야할지, 그리고 지명과 산 이름을 정할 때 종합적인 검토 없이 다수결에 의해 결정하는 것이 합당한지 묻고 싶다.

 

 

 

 

손창완 시인·평택향토사연구가
송탄진위서탄고덕을사랑하는사람들모임 추진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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