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4년 4월 15일

대만 원주민 공연단 순회공연
음악·무용으로 볼거리 제공해

 

 

 

“대만과 일본 조선의 친선융화(親善融和)를 목적으로 일본 각지를 비롯해 전선을 순유(巡遊) 중인 대만인(臺灣人)의 남녀 번인무용음악행각단(蕃人舞踊音樂行脚團) 일행 아홉 명은 그동안 각지에서 그 진기한 대만 독특의 괴상한 무용과 음악에 대 갈채를 받아오던 중 금 十五일부터 양일간 평택(平澤) 읍내 건견장(乾繭場)에서 공연을 하게 됐는데, 여흥으로 활동사진의 특별상영도 있어 일반의 비상한 인기를 이끌고 있다 한다.”(『매일신보』 1934년 4월 18일)

대만(臺灣)은 우리와 같이 일제의 식민역사를 가지고 있다. 1984년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대만을 식민지로 침탈했다. 1895년 시작된 대만의 식민역사는 일제가 패망한 1845년 8월 15일 우리와 같이 해방됐다. 대만은 우리보다 15년 일찍 일제의 식민지가 된 것이다. 대만에 한족(漢族)이 진출하면서의 원주민을 번인(蕃人)이라고 불렀다. 평지에서 생활하는 원주민을 생번(生蕃), 고산지대에서 사는 원주민을 고산번(高山蕃)이라고 했다. 고산번들은 생번과 달리 한족에 동화되지 않고 자신들의 고유한 문화를 유지했다. 그렇다 보니 이들 문화는 공연의 대상이 됐다. 요즘으로 말하면 ‘콘텐츠화’라고나 할까.

일제강점기 1934년 대만 번인으로 구성된 공연단이 전국을 순회하면서 공연한 바 있다. 공연 명분은 ‘친선융화(親善融和)’였다. 공연 목적은 친선융화라고 했지만, 이는 일본이 식민지 조선과 대만을 일본화 시키려는 식민지배정책의 하나였다. 이러한 목적에 따라 이 공연단은 일본 순회공연을 마치고 식민지 조선에서 공연을 이어갔다. 1934년 4월 15일과 16일에도 평택에서도 공연이 있었다.

대만 원주민 공연단은 모두 9명으로 음악과 무용을 공연했다. 무엇보다 원주민이 공연하면서 입는 의상이 관심의 대상이었다. 이국적이고 이색적인 의상은 평택에서는 처음 보는 것들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원주민 공연은 인기 중의 인기였다. 4월 15일과 16일 양일간 건견장에서 진행된 공연은 대성공이었다. 공연 외에도 공연단의 화려한 모습을 사진으로 전시해 호기심을 더욱 자극했다. 당시 평택에서는 처음으로 공연된 대만 원주민 공연은 평택시민에게 새롭고 특별한 볼거리였으며 눈요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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