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0년 12월 9일

수원우시장에서 소 판 돈 211원 뺏어
허리춤에 차고 오다가 강도 만나 피해

 

 

 

“九일 오후 일곱시 쯤에 평택군 송탄면 시산리(平澤郡 松炭面 柴山里) 사는 이규철(李圭喆, 六五) 씨가 수원장터(水原市場)에 가서 이백십일원에 소를 팔아 일원은 쓰고 나머지 이백십원을 가지고 자기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전기 시산리 좌동촌(佐洞村)으로부터 감지미(鑑地味)로 가는 등외도로에 들어서자 돌연 산기슭에서 이십오세 가량의 장정이 나타나며 돈을 내라고 위협하는 것을 없다고 저항하니 괴한은 노인의 멱살을 잡아끌어 엎어 놓고 허리에 찬 돈 이백 십원을 강탈 도주한 사건이 돌발하여 소관 평택경찰서에서는 서장 이하 총동원으로 범인을 수사하는 중이다”(『매일신보』 1940년 12월 10일)

지금도 평택은 중심지를 벗어나면 농가들이 많다. 한말과 일제강점기는 쌀로 유명세를 탔다. 쌀은 농경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생산품목으로, 무엇보다도 노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소가 많이 필요했다. 그러다보니 평택은 소를 키우는 농가들이 많았다.
소를 팔려면 평택우시장과 안중우시장, 수원우시장을 이용했다. 수원우시장은 수원화성 축성 이후 형성됐으며, 경기남부에서 가장 활발하게 소를 사고파는 장이었다.
1940년 12월 9일 평택 송탄 시산리에 사는 이규철이라고 하는 65세 노인이 수원우시장에 가서 소를 팔았다. 소 값은 211원이었다. 제 값을 받았는지 알 수 없지만 적은 돈은 아닐 것으로 보인다.
211원 중 1원은 쓰고, 210원을 잘 싸매서 허리춤에 감추었다. 집이 있는 시산리 좌동촌을 거쳐 감지미로 가는 도로에 들어서자, 25세 정도의 강도가 나타나서 소 판 돈을 내놓으라고 노인을 협박했다. 노인은 돈이 없다고 했지만, 강도는 노인을 매치고 허리춤에 있던 돈을 빼앗아 달아났다.
우시장 장날이 서는 날이면 강도나 도둑이 자주 출몰하곤 했는데, 평택에서도 소 판 돈을 강탈해가는 강도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목숨보다 아까운 소 판 돈을 강탈단한 것이다.
평택경찰서에서는 강도를 잡기 위해 수소문했지만 오리무중이었다.
당시 기사에 의하면, 송탄면 시산리(柴山里), 감지미(鑑地味)라는 지명이 등장하고 있다. 그런데 이 지명은 아무리 찾아보아도 확인할 수가 없다. 시산리는 현재의 지산동인 ‘지산리(芝山里)’, 감지미는 독곡동 ‘건지미’의 오류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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