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가십을 공유하며
상대방과 친밀감을 높인다
따라서 가십은
우리가 평생 고민해야할
주제에 대한
끊임없는 학습이다

 

 

 
▲ 홍민정/평택여고 2
clava735@naver.com

언제나 어떠한 사건이 터지고 나면 잠깐의 동요 뒤에는 가십이 따른다. 사랑, 죽음, 교육, 정치를 통틀어 모든 분야에서 공통된다. 그렇게 하나의 가십 뒤에는 또 다른 가십이 달려 이른바 가십의 가십은 하나의 사회를 이루게 된다.

SNS가 끝없이 발달하는 지금, 이제 가십은 순식간에 전 세계로 퍼져나간다. 즉, 우리는 가십과 루머를 하루가 멀게 접한다. 오늘 다룰 이야기의 내용은 모두가 함께 사는 세상에서 가십이 필요한 이유다. 들어가기에 앞서 다소 비슷하다고 느껴지는 가십과 루머의 차이에 대해 잠깐 짚고 넘어가보자.

‘알쓸신잡’ 9화에서는 물리학자 정재승이 루머와 가십에 대한 차이를 알려준다. 소위 루머는 불확실한 정보의 통칭이며 가십은 타인에 대한 참, 거짓 여부가 확실한 정보란 것이다. 더불어 가십은 소수에게만 공유된다는 점에서 루머와는 차별화 됐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과연 대다수의 사람이 가십에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가십은 그 자체만으로도 즐겁고 상대방과의 친밀감을 극대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먼저, 가십은 항상 비밀의 약속으로 시작돼 ‘너’와 ‘나’의 거리를 단번에 줄여준다. ‘이건 비밀인데’ 라는 둥 ‘너니까 얘기하는건데’라는 둥, 혹은 ‘진짜 말하면 안된다?’ 이런 식으로 말이다. 그렇게 정보를 전달한 후에는 인물의 품평이 시작된다. 서로의 생각이 공유되고 그 품평 위에 다른 품평이 덧입혀지면서 전보다 상대방과의 관계가 더욱 친밀해지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가십에는 사회적 기능 역시 존재한다. 가십을 나누게 되면 사회구성원들의 부도덕한 일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자신 역시 가십의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에 비윤리적인 행위를 억제한다는 논리였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가십의 중요성과 즐거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십에 대해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이유는 가십의 희생양에 대한 동정보다는 자신 역시 그 가십의 희생양이 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그리고 앞서 언급했듯 가십에 대한 반응 끝에는 항상 새로운 가십이 생성된다. 그렇게, ‘가십의 부정’에 대한 가십으로 인간은 또 다시 상대방과의 친밀감을 쌓으며 가십을 즐긴다.

마지막으로 영국의 일간신문 가디언을 인용해보자면 가십은 다시 말해 우리가 평생 고민해야할 주제에 대한 끊임없는 학습의 시간이다. 덧붙여 이 글의 논리에서 오류를 발견한다면 부디 이제 당신은 다른 사람과 이 글을 대가로 대화하고 비웃음으로써 새로운 가십을 만들고 친밀감을 쌓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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