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8년 3월 10일

상·하수도 제대로 된 시설 없어
먹을 물 오염, 시급히 시설 요망

 

   
 

“경기도 평택시장은 해빙기를 당해 하수구(下水溝)의 불비로 골목길은 오수가 창익하여 통행인의 고통은 극도로 달하며, 유아 등이 문밖으로 나왔다가는 진흙에 빠져서 의복을 더럽히는 일이 적지 않다 하며, 상수도(上水道)의 혜택을 입지 못하고 아직도 우물물을 먹고 있는 바, 개천과 길바닥에 넘치는 물이 우물로 스며들어와 음료수까지 더러워져서 곤란을 당하고 있다는 바, 당국에서는 주민의 위생과 불편이 막심한 고통 상태를 고려해 하루바삐 위생시설을 해주기를 주민 일반은 요망하여 마지않는다 한다.”(『동아일보』 1938년 3월 10일)

‘근대’라는 사회의 기준은 여러 가지가 있다. 그 중의 하나가 위생시설이다. 위생시설은 다양하지만 무엇보다도 하수도와 상수도의 역할이 컸다.

요즘은 집집마다 화장실이 있어서 편리하게 사용하고 있지만, 1980년대만 해도 마을에는 공중화장실이 많았다. 그런데 공중화장실은 여러 사람이 사용하다보니 지저분하기 이를 데 없다.

특히 비가 오는 날이면 화장실을 가는 것이 여간 불편하지 않다. 냄새도 그렇거니와 비로 인해 더욱 지저분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먹는 물도 마을의 우물을 사용했기 때문에 불편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래서 위생시설은 문화시설로 인식되기도 한다.

1930년대 후반 평택의 위생시설은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다. 지금이야 그렇지 않겠지만 특히 하수도와 상수도 시설이 불비(不備)했다. 평소에도 불편했지만 특히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는 해빙기에는 더욱 불편했다.

하수도 시설이 제대로 갖추지 못한 지금의 통복시장인 당시 평택시장 일대는 겨울 내내 얼었던 얼음과 눈, 그리고 땅이 녹으면서 물이 흘러넘쳤다. 때문에 통행하는 주민들의 불편은 그야말로 고통이었다. 어린아이들은 밖으로 나와 놀다가 옷에 오물을 뒤집어쓰기 일쑤였고 어머니에게 혼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여기에 더해 이 지저분한 물이 우물로 스며들었다. 주민들은 물조차 제대로 먹을 수 없는 그야말로 고통의 연속이었으며, 불편한 삶을 감내해야만 했다.

평택주민들은 단국 즉 평택군청에서 하루빨리 위생시설을 갖춰주길 희망했지만, 위생시설은 바로 처리할 수 없는 것이라 주민의 불편한 삶은 한동안 지속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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