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과 같이
목사님께서 이 세상을 떠나신지 어언 30년.
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은 물입니다. 아무 맛도 없는 물, 하지만 사람들은 그 물을 먹을 때마다 다른 맛을 느낍니다.
물! 무엇을 먹고 먹는가? 언제 먹는가? 무엇을 하고 먹는가? 어디에서 먹는가?에 따라 달라지는 물맛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물은 사람들에게 똑같은 맛을 주지 않습니다. 먹는 사람이 스스로 맛을 만들어 느끼게 합니다. 물을 먹고 생각하게 합니다. 아무리 아무리 먹어도 질리지 않는 물, 이원재 목사님은 물입니다
물은 네모그릇에 담기면 네모가 되고, 둥근 그릇에 담기면 둥글게 됩니다. 아무리 경사진 곳에서도 물은 수평입니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거나 어느 한쪽을 외면하지 않아 물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고 평등합니다. 물은 누구에게나 스스로 물을 찾게 합니다.
이원재 목사님은 세상에 남긴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이 세상을 떠나면서 가지고 간 것도 없습니다. 이 세상과 인연을 맺은 일도 없습니다. 언제나 홀로 자유였습니다. 스스로 모든 것에서 해방되었습니다. 하지만 물질에 집착하는 세상 사람들 그 어느 누구도 이원재 목사님을 올바로 알지 못하고 매사를 탐탁지 않게 여겼습니다. 그리고는 권세에 연연해하는 수많은 사람들, 형식에 얽매인 사람들 모두, 결국 목사님과 닿은 인연마저 부정했습니다. 목사님을 사랑했던 사람들마저 목사님에게서 등을 돌리고 인연을 끊었습니다.
하지만 목사님은 결코 사람들이 떠난 것을 힘들어 하거나 떠난 사람들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만 믿으려드는 사람들이 물었습니다. 거짓증언을 하는 사람들 말입니다.
- 이원재 목사님이 왜 훌륭한 거야?
- 뭘했길래 훌륭한 거지?
- 세상에 뭐, 남긴 거 있나?
사람들은 만나자마자 돈 이야기를 합니다. 사람들은 기회만 있으면 자신과 가족의 부富와 성공을 입에 올립니다. ‘성공지상제일주의’가 신봉되는 세상에서 아무 이름도 없고, 아무 직책도 없고 또한 가진 돈도 없지만 자신의 삶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며 사는 사람은 아무에게도 기억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세상은 경쟁을 부추깁니다. 목적달성을 위해서는 수단방법을 가리지 말아야 할 것을 종용합니다. 남을 죽여야 내가 산다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불행으로 나의 행복을 만들기 위해서 벌이는 극단적이고 치열한 경쟁과 승부를 위해 던지는 무리수는 결국 상대방은 물론 자신이 누려야 할 삶까지도 철저히 파괴시킵니다.
물질은 행복이 아닙니다.

 
아래로 아래로 흐르는 물
이 세상에서 사람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공기나 물 같이 아무 빛깔도 없고 또한 향기도 없습니다. 하지만 깨끗한 물과 공기가 있어 우리 몸과 마음은 건강합니다.
이원재 목사님, 당신은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아무 것도 강요하지 않았습니다. 빛깔도 향기도 없으셨습니다. 목사님은 오직 몸으로 사셨습니다. 행동으로 앞서가셨습니다. 그러기에 사람들은 단지 목사님과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했습니다. 목사님과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은 기쁨에 충만했습니다. 당신은 아무 것도 주지 않았지만 사람들 스스로 목사님을 바라보며 삶의 달고, 쓰고, 맵고, 짠 맛을 만들어 갔습니다. 그러다가도 힘들고 지쳐 넘어질 때 가장 먼저 그리운 사람이었습니다.
이원재 목사님, 당신에게는 작은 수첩과 탁상일기 밖에 필요한 것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그 속에서 당신은 神을 만나고 사랑을 만나고 세상도 만났습니다.
이원재 목사님, 또다시 당신은 물입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흐르고 높은 곳 낮은 곳 가리지 않고 밤에도 낮에도 끊임없이 흐르는 당신은 물이었습니다. 아래로 아래로 낮은 곳으로 흐르는 물이었습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하늘나라에 오를 자가 없느니라-
신약성서 요한복음 14장 6절.
세상사람 모두가 다 하늘나라에 오르기를 원해도 당신은 세상에 남아 하염없이 흐르기를 자청하셨습니다. 그래서 모든 것을 다 담아 흐르고 흐른 이원재 목사님, 오늘도 당신은 우리들 마음속 어딘가를 흐르고 계십니다.
이원재 목사님은 한광여고 교목으로 교직생활을 하셨습니다. 목사님은 엄숙하고 권위적인 목사님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를 땅으로 내려오시게 해서 ‘우리 곁에 계신 하느님’으로 만든 성프란치스코 수도회 신부님들 처럼 사랑과 기쁨이 가득한 목사님이셨습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번사람, 정의롭지 못하게 ‘자리’에 오른 사람까지도 성공한 사람이라고 추켜세우는 세상의 가치로 보면 목사님은 분명 세상살이에 실패하셨습니다. 살아계시는 동안 자유로운 생각으로 일관하신 목사님은 입으로만 예수를 부르짖는 많은 사람들에게 끊임없는 핍박과 조롱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목사님은 단 한 번도 그들을 미워하거나 맞서지 않았습니다. 한 여인이 군중 앞에 끌려나왔습니다.
-여러분! 이 여자는 간음을 했습니다. ‘모세’의 율법대로 모두 돌을 던져 이 여자를 벌하시오!
이 때 예수가 군중 앞에 나왔습니다.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사람 있거든 돌을 들어 이 여인을 쳐라!

이동진은 홍익대 미대 卒, 한광고등학교 교사, MBC창작동요제 대상곡 ‘노을’의 작사가다.
※ 블로그 http://blog.naver.com/jaa_yoo(바람이 머물다 간 들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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