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4년 9월 15일

용인 두 여성 평택역에서 배회
새 이성 찾아 서울 가려다 잡혀

 

 

“지난 십오일 오후 열한시경에 경부선 평택역 부근(京釜線 平澤驛 附近)에서 꽃 같은 젊은 두 명이 배회하는 것을 경관이 탐지하고 사실을 물어본 즉 하나는 용인군 고사면 대갈리(龍仁郡 古四面 大葛里) 사는 김기남(金奇男)의 처 이점순(李点順,17)이요, (중략) 나이가 이팔에 가까워 옴을 따라 이성(理性)에 대한 지각도 생기자 이 두 여자는 아무리 생각하여도 부모가 짝을 지어준 남편은 자기들의 이상적 남성이 아니니, 우리도 남과 같은 사람인 이상에는 남과 같이 뜻에 맞는 남자를 구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결심을 품고 둘이 공모한 후에 경성 방면을 향하여 도망하는 중에 그와 같이 경관의 손에 잡히어 보호를 받는 중이라 한다”(『시대일보』 1924년 9월 20일)

결혼은 ‘남녀가 정식으로 부부 관계를 맺음’이라고 한다. 그렇지만 시대에 따라 결혼하는 양태가 다르다. 지금은 자유연애시대이지만, 불과 80년 전만해도 부모가 맺어주는 짝과 결혼했다. 전근대시대에는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지만, 오늘날에는 있을 수가 없는 일이다. 그렇지만 오늘날에도 일부 계층에서는 여전히 이와 같은 결혼이 남아있다. 이를 ‘계약결혼’이라고 한다.

1920년대는 문화시대라고 일컫지만, 자유연애가 신여성의 로망이었다. 그렇다보니 부모가 맺어준 짝과 이혼해 사회적 문제가 제기되기도 했다. 때로는 일찍 결혼한 여성들이 가출을 하는 경우가 없지 않았는데, 평택에서 이와 같은 사건이 일어났다.

용인에 사는 두 젊은 여성은 어릴 적 부모가 정해준 남자와 결혼을 했다. 별 탈 없이 결혼생활을 하던 이 두 여성은 이팔청춘이 지나자 이성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다. 철없을 때는 당연한 것으로 인식했지만 사춘기를 지나면서 남편이 자신들의 이상적 남성이 아니었다. 동서지간인 이 두 여자는 자신들의 이상적인 남성을 찾기 위해 가출하기로 공모했다.

마침내 가출을 단행한 1924년 9월 15일 경성 즉 서울로 가기위해 평택으로 향했다. 평택역에서 배회하던 두 여자를 수상하게 여기던 경찰이 이를 보고 검거했다. 안 그래도 일본 경찰은 독립운동 자금을 모금하려는 수상한 사람 즉 운동가를 색출하기 위해 혈안이 돼 있었다. 두 여성은 경찰에 잡힌 후 자신들의 집으로 돌려보내졌겠지만, 이 사건은 당시 결혼에 대한 젊은 여성들의 인식을 잘 보여주는 단면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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