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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 평택의 전통예인-5
박성복 기자  |  sbbark@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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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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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시사신문·평택문화원 공동기획]

   
 

고사소리를 아침에 받아
저녁이면 다 외워 불렀을 정도로
기억력과 소리에 능했던
평택의 참 소리꾼 ‘이민조’

 

이민조, 경기도무형문화재 제48호 평택민요 농요 보유자로 활약
평택 서부권 농요 발굴, MBC라디오 ‘우리의 소리를 찾아서’ 녹음
1980년 ‘경기농악’ 단원으로 제21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 참가


 

   
▲ 평택민요 농요 가운데 모내는 소리를 하고 있는 이민조 보유자


Ⅲ. 평택의 예인藝人
1. 소리
3) 평택민요平澤民謠 보유자

■ 이민조李敏祖

경기도무형문화재 제48호 평택민요 농요農謠 보유자 이민조는 1935년 8월 11일 포승읍 포승남로 378-6(방림리 404-1번지) 하전촌에서 함평 이씨 대교공파 9대손으로 태어났다. 소작농인 아버지 이정서와 어머니 이순이 사이에서 태어난 이민조는 실제 출생년도보다 5년 빠른 1930년 태어난 것으로 호적에 올라있다.

방림리는 포승읍의 주산인 대덕산 자락에 위치한 마을로 산의 능선이 화살箭처럼 생겼고, 고려시대 화살을 만들었던 마을이라고 해 살치미라고 불린다. 살치미는 상전촌上箭村과 하전촌下箭村으로 나뉘는데 이민조가 나고 자란 하전촌은 원래 김해 김씨 집성촌이었지만 김씨들이 나간 후 함평 이씨가 입향해 40여 가구가 넘어서는 동족들이 350여년을 이어오고 있다.

방 하나에 부엌 딸린 오두막에서 태어난 이민조는 네 살 되던 해에 아버지가 작고하고 당시 남의 농사 열 댓 마지기와 품삯으로 근근이 생계를 이어왔기 때문에 굶기를 밥 먹듯 하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는 길쌈 기술이 있었던 어머니가 생계를 책임졌다. 목화를 직접 재배하기도 한 어머니는 명주실로 옷감을 짜는 기술이 인근에서 가장 좋았고 이웃에서 길쌈을 하다 엉키면 항상 어머니를 찾을 정도로 길쌈 일에 있어서는 기술자 중의 기술자였다.

   
▲ 이민조 평택민요 농요 보유자

이민조가 농요를 부르기 시작한 것은 가난 때문에 밥이라도 얻어먹기 위해 남의 집 농사일을 다니기 시작한 때부터이다. 농사일과 마을 대소사에 참여해 집안 어른들인 이택서李擇緖, 이민상李民常, 이요헌李堯憲 등으로부터 모심는 소리와 논매는 소리, 지경소리, 고사소리, 상여소리, 회닫이 소리를 하나하나 배워나가기 시작했다.

성인 품삯의 반을 받으며 처음 시작한 일이 지경다지기인데 집안 어른 이요헌을 따라다니며 집 지을 터에 주춧돌을 세우기인 정초定礎를 위한 지경다지기를 하면서 소리를 처음 접하게 됐다. 낮에는 농사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주로 야간에 횃불을 받쳐놓고 하는 지경다지기는 지경 하나에 일곱 명 정도가 달려들었다. 이요헌이 ‘메기는 소리인 선소리’를 했고 이민조는 지경꾼들과 함께 ‘받는 소리’를 했다.

이민조가 처음 ‘메기는 소리’를 한 것은 그의 소리 스승 이요헌이 작고한 직후부터였다. 방림리 상전촌 이기범 가옥 안팎채를 한 번에 지을 때였다. 건축 규모가 커서 포승과 현덕에서 다섯 마을 지경꾼들이 참여했는데 이곳에서 마을을 대표해 선소리를 했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다섯 마을에서 지경다지기를 구경 온 인파가 까마귀 떼처럼 보일 정도였고, 어느 마을이 메기는 소리와 받음 소리를 더 잘하나 경쟁이 붙었는데 처음으로 메기는 소리에 나선 이민조는 당당이 제 역할을 다해 이후 선소리꾼으로 이름을 알려나갔다.

이민조는 마을에 시주 나온 심복사 스님에게서 회심곡을 배웠다. 마을 어른인 이택서가 시주 나온 심복사 스님에게 쌀 서 말을 준 후 스님의 고사소리를 붓글씨로 받아 적어 이민조에게 건네줘 외우게 했다. 회심곡은 아침에 받아서 저녁때 벌써 다 외워 불렀을 정도로 이민조는 기억력이 좋았으며 소리에 능했다. 이민조가 소리를 하고부터는 동네에서 뿐만 아니라 이웃 마을에까지 불려 다녔을 정도였고, 이웃 마을에 가서 북을 메고 모심는 소리를 하면 어찌나 흥겨운지 그 마을 사람들이 구경하며 함께 즐기느라 모내기가 중단되기도 했다고 한다.

소리로 이름이 나기 시작하자 걸립에 참여해달라는 주문도 들어왔다. 멀리 영종도와 덕적도까지 가서 갯벌에 말뚝을 박는 일에 참여했다. 소리를 하다가 정작 자신의 논 서마지기 모내는 시기를 놓쳐 한걱정 속에 돌아와 보니 삼촌이 이미 모내기를 마쳤다는 일화도 있다.
 

   
▲ 이민조 농요 보유자가 태어나고 자란 포승읍 방림리

이민조는 풍물에도 능했다. 해방되던 해인 1945년 초등학교 다닐 때부터 풍물을 시작했다. 마을 선배 한영식이 상쇠로 앞에서 끌고 이민조가 그 뒤를 따랐다. 풍물을 시작해 실력이 붙은 이후로는 지금의 천주교 안중성당 자리에서 열린 안중시장번영회 주최 백중놀이에 참여해 당시 평택군 서부 4개면 마을에서 참가한 풍물패와 실력을 겨루기도 했다.

이민조의 부친 이정서는 마을 풍물패의 상쇠였다. 부친이 사망하자 상쇠를 도맡았던 이택서는 예닐곱 살인 이민조에게 “너희 부친이 상쇠를 했으니 너도 한번 쇠를 쳐보라”고 꽹과리를 쥐어주기도 했다고 한다. 이민조가 장성하면서부터는 다시 마을 풍물패의 상쇠를 물려받게 되었다.

이민조는 마을 단위 논매는 소리와 두레농악을 시작한 후 1970년대부터는 평택농악 단원으로 활동해 꽹과리와 북, 법고, 열두발상모 등 다양한 악기를 구사했다. 이민조는 과거에 최은창, 이돌천, 이원보 등에게서 농악가락을 배웠으며, 당시 김기복, 황홍엽, 안창선, 김익수 등과 같이 평택농악패에서 활동했다.

1958년과 1959년에는 이승만 대통령 탄신 기념 전국농악경연대회에 평택농악의 이름을 걸고 출전했다. 당시 상쇠는 이원보였고, 평택농악 보유자였던 최은창이 장구를, 이민조가 법고잽이로 나서 수십만 명의 관중이 보는 가운데 공연을 해 두해 연속 우승을 차지했다.

1980년에는 평택농악단을 다시 창단한 최은창, 이돌천이 그해 여름 포승읍 방림리 이민조에게 찾아와 제주도에서 열리는 제21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 평택농악 단원으로 참여해 줄 것을 요청해 방림리, 홍원리에서 풍물을 제법 하는 몇몇을 모아 평택농악단에 합류했다. 이때 ‘경기농악’이라는 이름으로 출전한 평택농악단은 전국에서 실력이 제일 좋았지만 텃세에 밀려 특별상에 만족해야만 했다. 이민조는 이후 서울 남사당과 안성 남사당에도 참여해 풍물놀이로 왕성한 활동을 이어갔다.

이민조는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평택 서부지역 농요를 지속적으로 발굴하고 전승했으며, MBC 라디오 ‘우리의 소리를 찾아서’에 출연해 두레소리와 얼카뎅이 등을 녹음, 현재까지 MBC 라디오 방송을 통해 지속적으로 방송되고 있다.

1993년부터 3년간은 평택군을 대표해 경기도민속예술경연대회에 두레놀이로 참여했다. 수원에서 열린 1993년 대회에서는 모범상을, 안양에서 열린 1994년 대회에서는 장려상을 탔고, 성남에서 열린 1995년 대회는 당일 강한 흙바람이 불어 이민조는 대회 참여를 포기해야 했다.

   
▲ 2007년 ‘제16회 경기도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포승두레놀이로 참가해 우수상을 수상한 평택시 참가팀

이후 12년만인 2007년 ‘제16회 경기도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포승두레놀이로 참가해 우수상을 수상한 후 2009년 3월 9일 경기도무형문화재 제48호 평택민요 농요분야 보유자로 지정돼 평택민요보존회 단원들과 함께 상설공연과 정기 발표공연, 특별공연, 초청공연을 진행해오고 있다.

평택민요 농요 보유자 이민조는 현재 모심는 소리(상사 소리)를 비롯해 논매는 소리(초벌매기-얼카덩어리), 비단타령, 논매는 소리(재벌매기-어화슬슬 대허리야), 지게놀이(상여 소리), 논매는 소리(만물매기) 등을 평택민요보존회 회원들에게 전수하고 있다.

최근에는 안중읍 현화택지지구 아파트에 거주하면서 평택지역 논매는 소리를 비롯한 농요를 잊지 않도록 보존하고 있으며, 지금도 가사는 물론 가락까지도 선명하게 기억하며 논매는 소리를 잇고자 하는 평택민요 단원들에게 전수하고 있다.

 
▲ 글·박성복 사장
   편집·김은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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