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2년 2월 22일

13개 양조장, 연간 7200석 생산
당시 인구 1인당 257원 14전 소비

 

 

“미곡(米穀)의 산지(産地)로서 아직도 이름이 있는 평택을 중심으로 十一면에 나누어 있는 진위군(振威郡) 전체에 산재하여 있는 十三개 소나 되는 양조장(釀造場)에서 一년간 양조 석수는 七,二○○석(石)으로 그 대가(代價)가 一八○,○○○원이라고 하니, 이것을 인구(人口) 七○,○○○인에게 분할(分割)하여 본다면 一년간에 한 사람이 二百五十七원 十四전을 소비하는 셈이요, 거기에 정봉(正宗) 맥주(麥酒) 등 외래주(外來酒)까지 합한다면 一인당(一人當)이 대략(大略) 三百원은 되리라 한다”(『중앙일보』 1932년 2월 20일)

사회지표 중 하나가 술 소비량이다. 불황인 경우 술 소비량이 늘어난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IMF 이후 술 소비량이 상당히 늘어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지난 6월 발표한 ‘국세통계연보’에 의하면 수입분을 포함하고 주정을 제외한 술 출고량은 1966년 73만 7000㎘에서 2015년 375만 7000㎘로 5.1배 늘었다고 한다. 이를 성인 1인당 환산하면 술 소비량은 50년 사이에 53.5ℓ에서 91.8ℓ로 1.7배 늘어났다.

1931년 평택의 술 소비량은 얼마나 될까? 중앙일보에 의하면 다음과 같이 소개된 바 있다. 평택을 중심으로 11개 면에 양조장은 13개 정도 있었다. 각 면마다 1개의 양조장이 있었으며, 주요 중심지에 1개 정도가 더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들 양조장에서 1년간 술 생산량은 7000석이었다. 당시 1석(또는 섬)은 15말이므로 10만 5000말이다. 이를 되로 환산하면 105만 되이다. 이를 돈으로 환산하면 당시 돈으로 18만원이었다. 1933년 설렁탕, 비빔밥, 냉면 값이 10전, 구두가 5원, 양벌 1벌이 15원 정도였다고 하니, 술값이 적지 않았다고 추정된다.

그렇다면 1931년 평택의 양조장에서 생산된 술을 평택 사람들이 다 소비한다면 어느 정도일까? 당시 진위군 인구가 7만 명 정도였다고 한다면, 1인당 1년간 술 소비량은 1석 즉 15되 정도였다. 돈으로 환산하면 1인당 257원 14전이었다고 한다. 여기서 언급하고 있는 술 소비량이 정종과 맥주 등을 제외했다고 하니, 전체적으로 보면 그 이상이라고 할 수 있다. 평택 사람들이 1인당 300원 정도의 술을 마셨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성인 기준으로 본다면 2배 정도인 600원 쯤 되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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