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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 평택의 전통예인-6
박성복 기자  |  sbbark@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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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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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시사신문·평택문화원 공동기획]

   
 

어업이 주업인 갯가에서 나서
어려서부터 고기잡이를 하며
자연스럽게 갯가소리를 배웠고
마을 상쇠로 농악대 이끈 ‘이종구’

 

이종구, 경기도무형문화재 제48호 평택민요 어업요 보유자로 활약
마두마을 어른들과 중선배를 타고 서해바다에 나가 고기잡이 시작
어업요를 담아 <삶의 소리 흥의 소리 평택전통민요> 음반 제작


 

   
▲ 평택민요 어업요 바디질 소리

 


Ⅲ. 평택의 예인藝人
1. 소리
3) 평택민요平澤民謠 보유자

   
▲ 고 이종구 평택민요 어업요 보유자

■ 이종구李鐘九

경기도무형문화재 제48호 평택민요 어업요漁業謠 보유자 이종구는 1923년 3월 24일(음력) 서해 바다와 인접한 강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어촌마을 현덕면 신왕1리 242-2번지에서 어부인 아버지 이도성과 어머니 김운열의 2남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평택은 지리적으로 용인시에서 발원해 진위면~서탄면~청북읍~고덕면~오성면~팽성읍을 거쳐 서해로 흘러드는 진위천과 군포시·의왕시에서 발원해 수원시~화성시를 거쳐 서탄면에서 진위천에 합류하는 황구지천, 용인시에서 발원해 오산시를 거쳐 진위면에서 진위천에 합류하는 오산천, 안성시에서 발원해 천안시를 지난 후 유천동~팽성읍~통복동~신대동~고덕면을 거쳐 서해로 흐르는 안성천 등 4대 국가하천이 있어 수자원이 매우 풍족한 지역이다.

평택 곳곳을 휘감아 도는 강물은 바닷물과 교차되면서 강다리, 숭어, 농어, 장어, 꽃게, 민물장어 등 풍부한 어종魚種을 보유해 어업이 발달했다. 특히 이종구가 나고 자란 현덕면 일대는 근대 이전까지만 해도 나루와 포구가 많았는데 신왕리 신왕나루와 대안리 구진나루, 권관리 계두진에는 성어기盛漁期마다 고깃배들이 장사진을 이뤘다.

   
▲ 고 이종구 어업요 보유자가 나고 자란 현덕면 신왕1리

신왕나루는 조선시대 기록에는 당포진 또는 당진포로 기록되어 있으며, 조선후기까지 포구상업이 매우 발달한 나루였다. 19세기 말의 《수원부선세혁파성책》에는 청어·조기·미역·미곡·대맥·조·소금·목화·창호지·우피·담배에 관한 조세를 당포진에서 거둬갔다고 기록돼 있다.

현덕면 신왕리에는 한때 5톤급 중선 배만 10여 척, 작은 어선들은 30여 척 넘게 있었다. 중선들은 안강망이라는 어구를 사용해서 아산만 뿐 아니라 서해 연안을 오르내리며 고기를 잡았고, 작은 어선들은 안성천 하구에서 투망이나 삼중망을 이용해서 숭어와 강다리·농어·삼치·준치를 잡았다.

1960년대 현덕면 신왕1리 마두마을은 50여 호의 가구에 300여명의 주민이 거주했을 정도로 규모가 매우 큰 마을이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평택호방조제가 준공되기 이전이어서 강물과 바닷물이 교차해 마두마을의 주업은 어업이었다. 때문에 신왕나루에는 10여척이 넘는 어선이 정박했으며 대부분 안강망 어선으로 배의 규모가 비교적 커 겨울에는 한강하구 인천 앞바다와 김포, 강화와 백령도 연안까지 조기잡이를 떠났다. 반면 평택과 화성, 당진 등 경기만 일대에서 고기잡이를 하다 풍랑을 만난 어선들은 평택 현덕면 일대의 포구와 나루에 배를 정박해 태풍이 불 때면 신왕나루에는 피항어선이 40~50여척을 넘을 때도 있었다.

현덕면 마두마을 어민들이 주로 잡은 어종은 봄·여름철에는 숭어, 꽃게, 민물장어였으며, 가을철에는 가물치, 해파리, 강다리, 새우, 겨울철에는 동어, 사철 모두 잡힌 것은 망둥어였다.

이종구는 지금은 작고한 신왕리 이종석, 이영수, 김만봉과 생존에 있는 인원환, 이의근, 박노봉, 김순식, 김인택 등과 어려서부터 고기잡이를 함께 나갔다. 당시에는 농경지가 별로 없어 바다에 나가 어획량이 많고 적음에 따라 희비가 교차했다. 그만큼 어업만으로는 생계를 꾸려나가기가 어려워 마을 주민들 대부분이 궁핍한 생활을 이어갔다.

이종구를 비롯한 마을 주민들이 잡아온 물고기는 배 들어올 때에 맞춰 자전거나 오토바이를 타고 온 인근 안중시장 상인들이 사갔으며, 팔다 남은 물고기는 마을 사람들이 햇볕에 말렸기 때문에 마두마을은 언제나 생선 비린내가 진동했다.

어부가 많은 마두마을은 풍어와 무사안녕을 기원하는 기복신앙이 발달했다. 신왕리 서낭당 당목에서 매년 정월 서낭제를 지낸 후 이튿날 신왕나루에서 풍어제를 지냈다. 이때는 인근의 이름난 무속인들이 참여한 대규모 굿판이 벌어져 코흘리개 아이들까지 구경나올 정도로 마을 주민 전체가 참여해 한 해 동안 고기잡이배의 만선과 어부들의 무사안녕을 기원했다.
 

   
▲ 평택민요 어업요 그물 거두기 시연

어족자원이 풍부한 갯가에서 태어난 이종구는 어려서부터 배를 타고 고기잡이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갯가소리를 배웠고, 고기잡이를 하지 않는 시기에는 농악을 배워 북, 장구, 징, 꽹과리 등 상당한 수준의 실력을 갖추게 됐다.

어려서부터 장한선, 류길선, 인원환, 이의근 등과 함께 중선배를 타고 서해바다에 나가 고기잡이를 했다. 이때 마을 어른인 장한선의 노래를 자연스럽게 따라 듣고 갯가소리를 배웠다. 그리고 장성하면서부터 앞소리를 메기는 수준에 이르렀으며, 농악에도 관심이 많아 동네 상쇠를 맡아 두레패를 이끌었다.

바다에서 고기잡이를 할 때는 중선배인 안강망 어선을 주로 이용했고, 7~8명이 한배를 타고 멀리는 연평도, 인천 앞바다까지 나가서 고기잡이를 하는 경우도 있었다. 한번 출항을 하면 3~4개월을 바다에 머물며 고기잡이를 했고, 그 피로를 잊기 위해 자연스레 갯가소리를 부르게 됐다.

갯가소리라고도 불리는 어업요는 닻 감는 소리, 큰 배 노 젓는 소리, 바디질 소리, 돌 옮기는 소리, 그물 다는 소리, 그물 뽑는 소리, 아매·수해 올리는 소리 등으로 이뤄졌고, 사공이 선창을 하면 나머지 어부들이 받는 소리를 하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어업요는 노동에서 오는 피곤함을 덜어주고 협동심을 고취해 고기잡이의 능률을 올리는 역할을 했다.

이종구는 2009년 6월 29일 경기도무형문화재 제48호 평택민요 어업요분야 보유자로 지정돼 5년 동안 어업요 보존과 후진 양성을 위한 전승활동을 해오다 2014년 8월 10일 작고했다. 특히 2010년에는 지금까지 발굴·보존한 어업요를 올곧이 담아 <삶의 소리 흥의 소리 평택전통민요> 음반을 제작했다. 이 음반에는 평택민요 농요 보유자 이민조, 장례요 보유자 박용철과 함께 분야별 평택 소리를 담아냈다.

큰 배 노 젓는 소리, 수심 재는 소리와 닻 내리는 소리, 아매 수해 내리는 소리, 아매 수해 올리는 소리, 그물 뽑는 소리, 그물 다는 소리는 이종구 보유자가 메기는 소리를, 평택민요보존회 단원들이 받는 소리를 녹음했다.

출항 닻감는 소리는 인원환, 이의근 전수조교가 메기는 소리를 하고 평택민요보존회 단원들이 받는 소리를 했으며 돌 옮기는 소리, 줄 사리는 소리, 고기 되는 소리(작은말), 고기 되는 소리(큰말)는 이종구 보유자가 메기는 소리를 하면 인원환 전수조교가 받는 소리를 하는 방식으로 녹음했다. 또 바디질 소리는 이의근이 메기는 소리를, 인원환이 받는 소리를 녹음했다. 이 원음 음반제작은 농요와 어업요, 장례요를 어려서부터 보고 익히고 제대로 기억해 이를 전승할 수 있는 보유자들이 고령화됨에 따라 후대에 계속 이어지게 하기위한 노력의 결실이었다.

 
▲ 글·박성복 사장
   편집·김은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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