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를 하다가 가구 모서리에 새끼발가락을 세게 부딪친 일이 있습니다. 평소 덜렁대던 성격 탓이겠지만 그보다는 어느새 둔해진 내 몸이 아직 팔팔하다고 자부하는 마음을 따라가지 못해 일어난 사고임이 분명합니다.

나는 한동안 그 자리에 주저앉아 새끼발가락을 부여잡고 말문을 잃었습니다. 진하게 밀려오는 통증을 애써 참으며 하던 청소를 마쳤지만 시간이 한참 지나도 아픔은 가시지 않았고 저녁이 되니 기어이 발가락이 퉁퉁 부어올라 있었습니다.

그때부터 내 신경은 온통 다친 새끼발가락에게로 쏠렸고 어느새 걸음걸이도 부자연스러워졌습니다. 신발을 신는 것은 물론 앉을 때도 행여 새끼발가락이 스치지 않을까 조심조심 앉아야 했고 이후로도 한참 동안 내 신경은 온통 그 작은 새끼발가락에게로 쏠려 있었습니다. 

평상시 의식조차 하지 못했던 발가락이었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작은 새끼발가락 하나가 다쳤을 뿐인데 그 며칠 동안 나는 친구와의 약속도 취소해야 했고, 보고 싶었던 영화도 포기해야 했습니다. 눈에 드러나지 않아서 잊고 지냈던 발가락이 평온한 일상을 흔들고 내 삶의 질까지 떨어뜨리기 시작했던 것이지요.

평상시 우리 신체 중에서 가장 많은 관심을 받는 것은 얼굴입니다. 남들이 보게 된다는 이유로 이중세안을 하면서 깨끗이 씻고, 영양이 듬뿍 담긴 크림이나 로션을 발라주고, 거울을 보며 예쁘다고 두드려 주기도 합니다.

반면, 발은 제2의 심장이라고 하는데도 단지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홀대하기 일쑤입니다. 가장 더러운 곳을 밟고, 내 무게의 하중을 오롯이 견디는 발, 그럼에도 남들 앞에는 여간해서 드러나지 않는 발에 대해서는 그저 냄새만 나지 않게 씻어주는 것이 전부니까요. 때로는 남들 앞에 맨발을 보이는 것이 부끄러워 숨기기 급급합니다. 발이 차지하는 크림이나 로션도 유통기한이 지나 버리기 아까운 화장품을 건성건성 발라주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얼굴은 보이는 위치에 있으니 좋은 것은 다 발라주고, 내장기관은 아예 보이지 않으니 몸에 좋다는 약도 챙기지만, 정작 발은 드러나 있음에도 양말에 가려진다거나 때로는 창피하다는 이유로 무시하고 홀대 당하기 일쑤입니다. 그런데도 묵묵히 자기 역할을 다하며 나를 편안하게 해주고 있으니 생각하면 할수록 고맙기 그지없습니다.

돌아보면 우리 사회에도 눈에 띄지는 않지만 누구보다 중요한 역할을 하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꿈을 위해 공부하는 학생들, 열심히 직장에 다니며 사회생활을 배우는 청년들, 춥거나 덥거나 매일 가족들을 위해 일하는 가장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아침부터 저녁까지 가족을 챙기는 주부들, 비록 드러나지는 않지만 묵묵히 자기의 일에 충실한 그들이 있어 우리 사회가 이렇듯 편안하게 굴러갈 수 있는 것은 아닌지.

다람쥐 쳇바퀴 같다고 생각했던 평범한 일상이 이 사회 전체를 평안하게 굴러가게 하는데 귀한 역할을 하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힘들어도 열심히 살아낸 오늘 하루가 마치 큰일을 해낸 것처럼 귀하게 여겨지는 저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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