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구군의 철학과 비전,
문화예술정책 그리고
박수근미술관은
우리에게 많은 영감과
시사점을 준다

 

 
▲ 김해규 소장
평택지역문화연구소

얼마 전 몇몇 지인들과 강원도 인제, 양구 일대를 답사했다. 인제군 빙어축제를 일별하고 양구 방향으로 길을 잡았다. 사실 인제와 양구는 분단 국가인 대한민국에서도 가장 오지이며 군사적 색체가 짖은 지역이다. 분단과 군사적 색체가 짖은 고장에서 안보 코스프레는 식상할 것이고, 접근성이 떨어져서 어지간한 박물관, 미술관으로는 관심 끌기 힘들 거라고 생각됐다.

하지만 이번 답사를 통해 양구와 인제에 대한 인식이 180도 바뀌었다. 지역적인 한계로 인해 군사 관련 박물관과 사료관이 있기는 하지만, 이를 상쇄할 박수근이나 박인환, 이해인 같은 문학 예술가들, 김형석, 안병욱 같은 철학자를 발굴해 문학관, 미술관을 건립하고, 자연환경을 활용한 다양한 콘텐츠를 계발해 관광객을 유치하는 모습은 여타의 지방자치단체에서 쉽게 찾아보기 힘든 발상이었다.

여행의 백미는 양구의 ‘박수근미술관’이었다. 박수근(1914∼1965)은 양구 출신의 화가다. 일찍부터 그림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으며 화가로 성장한 뒤에는 ‘빨래터’, ‘나무와 두 여인’, ‘농악’과 같이 민중들의 삶을 소재한 작품으로 대중들의 사랑을 받는 20세기 가장 한국적인 화가로 인정받고 있다. 양구군이 박수근에게 주목한 것은 2000년대부터다. 양구군은 강원도의 오지이며 전쟁과 군사지역으로만 인식된 지역이미지를 문학과 예술,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가진 문화관광도시로 전환시키려는 계획을 갖고 1차로 박수근 화백의 옛 집터이며 묘소가 있는 곳에 박수근미술관과 예술마을 조성작업을 시작했다.

이어 이해인문학관과 김형석, 안병욱 철학박물관을 결합한 복합문화시설을 파로호반에 건립했으며, 2017년에는 양구읍내의 칙칙한 건물 외벽에 박수근 그림을 그리는 프로젝트를 추진해 도시이미지를 확 바꿨다. 그 결과 2002년 개관 첫해에는 6500명에 불과했던 관람객이 2017년에는 6만 명 이상으로 증가했고 앞으로 문학관과 지역축제를 연계한다면 더 많은 관람객이 찾을 것으로 예상된다.

양구군의 ‘박수근 프로젝트’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지방자치단체의 철학과 비전에 건축가와 예술가들의 적극적 동참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 가운데서도 양구군의 역사와 화가 박수근의 예술적 삶, 그리고 지역민들의 기대를 꿰뚫어볼 줄 아는 이종호라는 뛰어난 건축가를 만난 것은 최고의 축복이었다.

일찍이 김수근, 장세양의 영향을 받은 이종호는 인간과 공간, 자연과의 소통을 염두에 두고 10여 년에 걸쳐 박수근미술관과 예술마을을 설계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미술관은 관람객들이 박수근과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도록 배려했으면서도 자연과 배치되지 않도록 했다.

산기슭에 앉아 자신의 미술관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박수근상과 그림에서나 볼 수 있었던 오솔길과 골목길, 담벼락, 벅수, 빨래터, 박수근의 예술세계와 철학을 계승한 후배 화가들의 작품전시공간, 화가들이 작업하고, 전시하고, 판매도 할 수 있는 공간들, 이승에서 저승으로 연결된 공간적 배려가 넉넉하면서도 빈틈없이 이뤄졌다.

평택시가 공립박물관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향후에는 공립박물관 외에 다양한 전문박물관과 미술관, 기념관이 건립될 것이다. 박물관, 미술관, 기념관 건립은 도시의 품격을 높이고, 시민들의 삶의 질이 향상시키며, 도시의 균형발전을 이루는 토대다. 하지만 뮤지엄의 수를 늘리는 것과 함께 질적인 면도 고려해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양구군의 철학과 비전, 문화예술정책 그리고 박수근미술관과 예술마을은 우리에게 많은 영감과 시사점을 준다. 사람들은 ‘부러우면 진다’고 말하지만 우리도 정말 ‘박수근미술관’ 같은 멋진 뮤지엄을 갖고 싶다.

저작권자 © 평택시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