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는 너와 내가 ‘함께 잘 사는 길’

20여 년간 자원봉사, 8700시간 축적
자영업 중 오토바이로 반찬배달 봉사

 
예전에 비해 봉사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그만큼 삶의 여유가 늘어났기 때문이라는 것이 중론이지만 봉사는 반드시 삶의 여유가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봉사는 대상과 나의 합일을 통해 그의 고통을 내 마음으로 느낄 수 있는 따뜻함과 상대에 대한 배려, 사랑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남 모르게 행한 낮은 봉사 20년
“동네에서 새마을지도자와 통장을 하면서 봉사를 시작한 것이 처음 봉사를 하게 된 계기였습니다. 아무래도 지도자의 자리는 봉사를 해야만 하는 자리니까요. 그러다 그게 점차 내 생활의 일부가 되었고 나중에는 적십자봉사회에 가입해 봉사를 하기도 했지요. 사회 곳곳에 봉사와 관련된 것이라면 미약하지만 힘을 보태기 위해 많이 돌아다녔어요. 적십자 장년봉사회는 23년째 하고 있고 수원보호관찰소 선도위원은 20년째, 평택시복지위원은 현재 7년째 하고 있습니다”
김재홍(72) 복지위원은 전남 여수출생으로 평택에는 1976년에 정착해 현재까지 살고 있다. 26살에 여수시 공무원으로 6년간 일 해온 김재홍 위원은 공무원직을 그만두고 평택에 올라와 친척 건물을 관리하기도 하고 농사를 짓기도 하면서 점차 봉사에 눈뜨기 시작했다고.
“저는 소소한 봉사를 많이 했지요. 결식아동과 독거노인들에게 반찬을 배달해주는 일이라든가, 어려운 사람들을 찾아내 그들이 생활보호대상자 자격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이라든가 하는 일들 말예요. 그렇게 봉사하다보니 현재는 봉사시간이 8700시간 정도가 되었네요. 저보다 더 많은 봉사시간을 가진 분도 있고 훌륭한 분들도 많은데 제 얘기를 하려니 부끄럽습니다”
자신은 드러낼 것이 없어 부끄럽다고 말하는 김재홍 위원은 넉넉지 않은 가정형편 때문에 경제적인 도움은 그리 많이 주지 못했고 대신 몸으로 행하는 메신저 역할의 봉사를 주로 해왔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가 평택 박애병원 뒤에서 청국장식당을 운영하던 당시 한 번도 거르지 않고 해온 봉사를 미룰 수가 없어 비를 맞고 반찬배달을 하다가 폐렴을 앓게 된 이야기는 그가 봉사인으로서 가져야 하는 기본적인 마음가짐에 얼마나 충실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거창한 봉사가 아닌 실질적으로 자신의 시간과 마음을 나누어야 하는 밑바닥 봉사는 김재홍 위원이 평생을 몸소 실천해 온 봉사의 기본이기도 하다.

체온을 나누면 둘 다 살 수 있어
“추운 겨울 황량한 들판을 두 사람이 지나가다 길에 쓰러진 사람을 발견했는데 앞에 가던 사람은 그냥 지나쳤고 뒤에 있는 사람은 그 사람을 들쳐 업고 힘들게 길을 떠났다지요. 그런데 앞에 가던 사람은 목적지에 가기도 전에 추위를 견디지 못하고 위험에 처했지만 뒤에 간 사람은 업고 있는 사람의 체온 덕분으로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봉사는 그런 것이 아닐까요? 힘들지만 서로의 체온을 통해 너와 내가 함께 사는 것 말입니다”
김재홍 위원은 봉사를 하며 힘이 들 때마다 이 이야기를 곱씹어 보면 스스로 다시 용기가 생겨 봉사할 힘을 얻는다고 말한다.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보지 않은 사람은 인생을 논하지 말라는 말도 떠올린다는 김재홍 위원은 많은 사람들의 힘든 삶을 곁에서 지켜보며 오히려 자신이 살아갈 힘을 얻기도 하고 그들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며 그 행복을 자신이 고스란히 받기도 한다고 덧붙인다.
“힘들고 어렵게 사는 사람들에게도 행복을 누릴 권리는 있어야 하지요. 봉사는 상대를 기쁘게 해주는 일이기도 하지만 그 기쁨은 결국 부메랑이 되어 내게로 돌아오게 된다는 것을 느끼는 일이기도 합니다. 주위에서도 많이들 격려해주고 그것이 결국 제 스스로가 잘 사는 일이라고 생각하며 살고 있습니다”
현재 생업을 그만두고 쉬고 있는 김재홍 위원이지만 아직 봉사만큼은 놓지 못한다. 그의 손길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사회 곳곳에 있는 것 같아 한시도 마음이 놓이지 않는 까닭이다. 때문에 지금도 매일 오토바이를 타고 시내를 돌며 자신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찾아내 도움을 줄 수 있도록 연계하는 역할은 그가 아직도 계속해야 할 드러나지 않는 봉사의 일부분이다.

명예욕은 없지만 봉사 전하고파
“앞으로도 사회 구성원으로서 제 몫을 다하며 살고 싶습니다. 명예욕은 없지만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젊은이들의 바른 삶을 위해 제가 필요하다면 기꺼이 그동안의 체험을 바탕으로 봉사에 대한 강의를 할 수도 있겠지요”
범죄예방위원으로서 20여 년 동안 103명의 청소년을 선도했다는 김재홍 위원은 지금도 자신의 메신저 역할을 통해 자칫 나쁜 길로 빠질 수도 있었던 학생들이 학자금을 받아 공부를 계속한 후 현재 사회 곳곳에서 잘 살고 있는 모습을 볼 때 가장 뿌듯하다며 웃는다. 김재홍 위원은 하나뿐인 아들에게는 굳이 봉사하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그저 자신이 몸으로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아들의 마음속에 봉사에 대한 기본적인 마음가짐들은 충분히 쌓여 가리라는 믿음 때문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세익스피어는 자선이란 이중으로 축복받는 일이라며 자선에 대해 극찬했고 슈바이처는 적십자를 어둠을 밝히는 등불에 비유하며 그 등불이 꺼지지 않게 지켜주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고 말하기도 했지요. 이제는 국민들의 봉사에 대한 마음가짐을 보면 그 사회가 선진국인가 아닌가를 판가름 할 정도로 봉사는 국가의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우리나라도 봉사에 대한 인식과 활동이 현재보다 더 많이 활성화되기를 기원하는 마음입니다”
지금도 매주 성당에 나가면 약자를 위해 도움을 줄 수 있는 삶을 살게 해달라고 기도한다는 김재홍 위원, 가장 밑바닥에서 실천하는 봉사를 통해 많은 어려운 사람들에게 삶의 희망을 전하는 메신저 역할을 해온 그에게 봉사란 부메랑으로 돌아오는 삶의 기쁨이자 최고의 행복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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