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으로 태어나 살아간다는 것이 참 쉽지 않다는 생각을 종종 하게 됩니다. 여성이기 때문에 선뜻 나서지 못하는 것, 여성이기 때문에 참아야 하는 것, 여성이기 때문에 해서는 안 된다고 강요당하는 것…,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참 많은 것들 앞에서 “해도 되나?” “괜찮을까” 하며 스스로 되묻곤 합니다. 이러한 자기검열은 여성을 억압해 온 많은 사회적 환경 속에서 여성들의 내면에 고착화된 것처럼 느껴질 때도 많습니다.

모든 음과 양이 서로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우주의 이치 속에서 어느 한쪽에게 더 많은 것을 요구하거나 일방적으로 참아야 한다면 그것은 결코 조화로운 세상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여성들은 그동안 참 많은 것을 인내하며 살아왔고 세상이 아무리 좋아졌다고 하나 여전히 보이지 않는 차별과 폭력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얼마 전,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직업이라고 알려진 여성 검사와 과거 유명했던 여성 시인까지 폭로한 성폭력 경험은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이미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었던 일,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당연히 겪어야 했을 일이 밖으로 터져 나온 것에 불과했습니다.

성폭력은 강간 등의 성폭행이나 성추행, 성희롱을 모두 포괄하는 말이므로 살아가는 동안 한번쯤 성폭력에 노출되지 않은 여성은 드물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것은 때로는 알면서도 모르는 척, 때로는 그게 성폭력인줄 모르는 상황에서 관습적으로 행해지기도 했으니까요.

지금 벌어지고 있는 ‘미투 운동’은 여성들이 ‘나도 당했다’라는 공감의 형태로 일어나고 있지만 그것이 도달하는 궁극적인 지점은 여성에 대한 성폭력이 많은 이들의 묵인에 힘입어 은밀하게 행해져 왔다는 것을 세상에 알림과 동시에 여성도 남성과 동등한 입장에서 살아가고 싶다는 바람입니다.

만일 여기저기서 똑 같은 상처를 입고 피 흘리는 사람들이 있다면 우선은 큰 범위 내에서 그들의 상처가 어디에서 연유되었는지 알아내고 “많이 아프겠구나” 하는 공감과 함께 그에 맞는 치료를 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그 사람들을 앞에 두고 “모든 사람들이 당신에게 상처를 입힌 것은 아니다”라고 되짚어주거나 개별적으로 들어가 “누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그랬느냐”며 일일이 따져 묻는 것은 치료를 선행한 뒤에 해도 늦지 않습니다.

여성에게 가해지는 성폭력은 결코 일부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나 역시도 같은 여성으로서 “미 투”라고 말할 수밖에 없으니까요. 그것은 사회 전체적으로 개선돼야 하고 인식이 바뀌어야 하는 문제입니다. “여성으로서가 아닌 한 인간으로 존중해 달라”는 것이 미투 운동입니다.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키고 있는데 가리키는 달은 보지 않고 손가락만 본다면 정작 여성들이 말하고자 하는 본질은 크게 왜곡될지도 모릅니다.

미투 운동의 책임은 우리 모두에게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해결해야 하는 주체도 우리 모두입니다. 최소한 우리는 그것을 보고도 내게 불이익이 생길까봐 모른 척 했거나, 나만 아니면 된다는 생각으로 외면했거나, 사회적 관습이라는 이유로 무관심했던 공범일 수 있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 스스로가 바뀌어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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