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4년 9월 27일

진서청년회·권농회 주최
‘피뽑기대회’ 광주리 우승

 

 

“진위군(振威郡) 청북면(靑北面) 진서청년회(振西靑年會) 급(及) 권농회(勸農會) 주최(主催)와 동면(同面) 유지(有志) 이강세(李康世), 이기학(李起鶴), 김화식(金華植), 안영균(安英均) 제씨(諸氏)의 후원(後援)으로 지난 구월(九月) 이십칠일(二十七日)에 동(同) 면소(面所) 내(內)에서 피발우량부락(稗拔優良部落) 표창식(表彰式)을 거행(擧行)했는데, 청량(淸涼)한 가을바람에 나부끼는 우승기(優勝旗)는 결국(結局) 광주리(光州里)로 돌아갔다고.”(『시대일보』 1924년 10월 2일)

<조선왕조실록사전>에 의하면 ‘권농(勸農)’을 ‘국왕, 중앙관료, 수령 등이 안정적인 농업생산을 위해 농민들에게 농사를 권장하고 장려하는 여러 가지 활동’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세종대왕은 권농과 관련해 “나라는 백성을 근본으로 삼고, 백성은 먹는 것을 하늘로 삼는다. 농사짓는 일은 의식(衣食)의 근원이고, 왕정(王政)에서 먼저 해야 할 바이다”라고 규정한 바 있다. 한말을 거치면서 근대사회가 형성됐지만, 1920년대까지만 해도 여전히 한국은 농경사회였다. 그런 점에서 당시 ‘권농’은 농민들의 삶에서는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권농(勸農)’하면 주로 봄을 떠올리지만, 사실 농촌사회는 사시사철 권농을 준비하고 생활화했다. 1924년 9월 27일 당시 진위군 청북면에서는 대대적인 권농대회를 개최한 바 있다. 진서청년회(振西靑年會)와 권농회(勸農會)가 주최하고, 지역 유지들이 참여한 권농대회는 청북면사무소에서 진행됐다. 지역 유지로 참여한 인물은 이강세(李康世), 이기학(李起鶴), 김화식(金華植), 안영균(安英均) 등이었다. 권농대회를 주최한 진서청년회는 언제 결성됐는지 확인되지 않지만, 청북면이 당시 진위군 서쪽에 위치하고 있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으로 추정된다. 지역 유지 이강세는 청북면 덕우리 진명강습소를 설립하는데 기여한 바 있으며, 1936년 곡물무역을 목적으로 설립한 평택산업의 감사로 활동한 인물이었다. 김화식은 청북면 한산리에 거주하는 유지로 공공사업뿐만 아니라 빈민구제와 호세대납 등으로 지역민으로부터 칭송이 자자한 인물이었다. 안영균은 1922년부터 4년간 청북면장으로 활동한 바 있으며, 1929년 안중금융조합 대표로 선임된 유지였다.

권농대회의 중요한 행사 중의 하나가 논농사의 최대 적인 ‘피(稗)’뽑기 대회였다. 이날 피뽑기대회 즉 ‘패발대회’에서 광주리(光州里)가 우승기를 차지했다. 그런데 의아한 점은 ‘광주리’라는 마을 이름이 현재 확인이 안 된다는 점이다. 혹시 오탈자가 아닌가 하지만 이 역시 추정할 뿐이다. 아무튼 청량한 가을바람을 맞으면서 진행된 권농대회는 지역민들의 마을잔치였으며, 삶의 활력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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