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4년 3월 30일

인구 6만 3090명으로 집계
평택역 위치한 병남면이 중심

 

 

“진위군(振威郡) 각면별(各面別) 호구수(戶口數)는 삼월(三月) 말(末) 현재(現在) 조사(調査)에 의하여 여좌(如左)하다고.(하략)”(『동아일보』 1924년 7월 4일)

인구조사는 예나 지금이나 중요한 국가 과제 중 하나다. 인구조사의 목적은 무엇일까. 기본적으로는 ‘나라의 살림을 효율적으로 설계하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나라 살림의 가장 중요한 것은 세수의 확보다. 때문에 인구조사는 주기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조선시대에도 세수를 확보하기 위해 호구조사를 했으며 일제강점기에도 호구조사를 하였다. 조선총독부는 1924년 3월 평택군(당시는 진위군이라고 하였음)의 호구조사를 했는데, 총 호수는 1만 1577호에 총인구는 6만 3090명이었다. 각 면별로 조사된 호구와 인구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북면 조선인 906호(戶), 남 2550명, 여 2304명/일본인 14호, 남 33명, 여 25명 ▲고덕면(古德面) : 조선인 884호(戶), 남 2511명, 여 2430명/일본인 2호, 남 3명, 여 3명 ▲청북면(靑北面) : 조선인 1249호(戶), 남 3684명, 여 3491명/일본인 10호, 남 11명, 여 7명 ▲병남면(丙南面) : 조선인 1434호(戶), 남 3752명, 여 3441명/일본인 214호, 남 22명, 여 202명 ▲송탄면(松炭面) : 조선인 1063호(戶), 남 2900명, 여 2877명/일본인 22호, 남 59명, 여 34명/중국인 3호, 남 8명 ▲서탄면(西炭面) : 조선인 773호(戶), 남 2128명, 여 2044명/일본인 2호, 남 3명, 여 1명 ▲오성면(梧城面) : 조선인 1238호(戶), 남 3481명, 여 3,246명/일본인 4호, 남 5명, 여 4명/중국인 4호, 남 13명 ▲포승면(浦升面) : 조선인 1209호(戶), 남 3485명, 여 3382명/일본인 2호, 남 3명, 여 2명 ▲현덕면(玄德面) : 조선인 1179호(戶), 남 3499명, 여 3513명/일본인 2호, 남 2명, 여 1명 ▲부용면(芙蓉面)과 서면(西面) : 조선인 총호수 1424호(戶) 남 3876명, 여 3729명/일본인 8호, 남 25명, 여 13명

이들 인구조사에 의하면 병남면에 가장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살고 있었는데 이는 병남면(현 원평동, 비전동 일대)이 평택의 중심지였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일본인 역시 병남면에 가장 많이 거주했다는 점에서도 평택역을 중심으로 일본인 마을이 형성됐다고 할 수 있다. 주요 번화가는 평택역이 그 중심에 있었다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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