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거이(白居易, 772~846)는 하남성 신정현에서 직급이 그리 높지 않은 관리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자는 낙천(樂天). 만년에는 향산거사, 취음선생이라는 자호를 썼다. 아버지의 임지에 따라 거주지를 이리저리 옮겨 살다가 아버지가 죽고 난 뒤인 27세 때 낙양으로 이주했다. 일찍이 15세 무렵부터 진사(進士) 응시의 꿈을 품고 입안이 헐고 팔꿈치에 굳은살이 배길 정도로 공부에 몰두했다. 28세 때 향시(鄕試)에 응시하여 붙고, 이듬해에는 진사시(進士試)에서도 급제를 하는데, 나이가 29세였다. 백거이가 17인의 급제자 가운데 가장 어린 나이였다. 이 뒤로 비교적 평탄한 관리 생활을 한다. 비서성 교서랑(秘書省校書郞), 주질현위, 한림학사(翰林學士) 등의 관직을 거쳐 37세 때인 원화 3년(808)에는 좌습유(左拾遺)에 올랐다. 좌습유는 백관을 탄핵하고 황제에게 간언을 올리는 간관(諫官)이다. 44세 때 재상 무원형(武元衡)이 피살되자 자객의 체포를 상소하는데, 지나치게 강직함을 문제 삼아 강주사마(江州司馬)로 좌천된다. 사마의 직책은 주로 군무(軍務)를 맡는 관직이다. 당대(當代)에는 절도사(節度使) 아래에 행군사마를 두고, 이와 별도로 각 주에 사마를 두어 좌천된 사람들을 배치했다. 원화 10년(816)에 강주사마로 좌천되어 원화 13년(818)까지 강주에서 지내는데, 백거이는 지방으로 좌천당한 데서 오는 좌절감과 울분을 다스리는 방편으로 그때까지 썼던 시 중에서 800여 편을 골라 시집 15권으로 편찬한다. 시집을 편찬한 뒤 “이 세상의 부귀는 나와 연분이 없으나,/죽은 뒤 내 문장은 분명 명성을 얻으리라./기세가 거칠고 말이 거창하다고 탓하지 마오./내 이제 막 시집 15권을 엮었노라.”라는 시구를 적었다. 인생 후반기에는 태자빈객분사동도(太子賓客分司東都)와 태자소부분사(太子少傅分司) 등의 관직을 지내기도 했다. 75세 때인 846년에 낙양의 자택에서 운명을 한다.

“어린 시절은 예전에/이미 가버리고,/청춘도 지금/또한 다하였다./쓸쓸한 마음 달랠 길 없어,/다시 이 황량한 뜰에 왔다.//나 홀로 뜰에/오래 서 있자니,/햇살은 옅고/바람은 차갑다./가을 푸성귀는 잡초에 모두 뒤덮이고,/푸르던 나무도 시들었다.//오직 몇 떨기 국화만이/울타리 근처에서/막 꽃을 피우고 있다./술잔 들어/술을 조금 따르고/그대 국화 곁에/잠시 머물러 본다.//내 젊었던 시절 돌이켜 보면,/늘 신이 나고 즐거웠다./술을 보면/시도 때도 없이 마셨고,/마시지 않아도/벌써 유쾌했다.//요즘 나이가 든 뒤로는,/즐거움 느끼기가 점점 어려워진다./더 노쇠해지는 것이/늘 걱정이니,/억지로 마셔보지만/역시 즐겁지 않다.//그대 국화를/돌아보며 이르노니,/이 늦은 때/어찌 홀로 고운가?/나를 위하여 피지 않은 것/잘 알고 있지만/그래도 그대 때문에/잠시 활짝 웃어본다.”(백거이, ‘동쪽 뜰에서 국화를 보며(東園玩菊)’)

<동쪽 뜰에서 국화를 바라보며>는 백거이가 원화 8년(813)에 지은 시다. 가을은 조락(凋落)의 쓸쓸함과 더불어 깊어간다. 한해살이 풀들은 푸름을 잃고 시든다. 가을은 천지에 죽음의 차갑고 스산한 기운을 불러들인다. 사람은 스산해지면 본질에 더 가까워진다. 백거이는 <동쪽 언덕에서 가을을 느끼며 원팔에게 부침>이라는 시에서도 늦가을의 정취를 그리는데, “울고 있는 귀뚜라미 붉은 여뀌 속에 숨었고/수척한 말은 푸른 순무를 차고 있다.”라고 적는다. 귀뚜라미는 숨어 울고, 말은 입맛을 잃어 말랐다. 집안이라고 다르지 않다. 뜰에 있는 식물들은 시들어 잎 지고, 가을 푸성귀들은 잡초에 뒤덮였다. 찬바람이 불면 시든 풀은 서걱이고 우수수 떨어진 낙엽은 흩날린다. 뜰은 황량하고 피폐한데, 주변을 살펴보니 울타리 근처에 국화 몇 떨기가 막 꽃을 피우고 있다. 황량함 속에서 저 홀로 피어난 국화가 나를 위한 것은 아니겠지만 마음이 환해진다. 시인이 “이 늦은 때/어찌 홀로 고운가?”하고 그 기특함에 감탄을 하며 국화를 들여다보는 모습이 그려진다. 돌이켜보면 어린 시절은 이미 멀리 사라지고 청춘의 때도 다하였다. 몸의 기력은 쇠해지고 마음은 쓸쓸한 게 꼭 이 황량한 뜰의 풍경이 제 처지를 말하는 듯하다. 인생의 때도 저무는 가을에 당도해 있다. 술잔을 들고 생각하니, 젊은 시절엔 늘 신나고 즐거워서 술도 자주 마셨다. 그러나 그것도 다 지나간 옛일이다. 나이가 드니 술 마실 일도 줄고 술을 마셔 봐도 젊은 날처럼 흥겹지가 않다. 식물들이 쇠잔한 기색을 드러낸 황폐한 가을 뜰의 풍경처럼 인생은 덧없고 황량하고 쓸쓸하다. 그런 황량함과 쓸쓸함 가운데 우연히 마주친 국화 몇 송이로 인해 잠시 동안이나마 화창해진 기분을 시로 그려냈다.

▲ 장석주/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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