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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 전략에
시장의 변화와 고객의 욕구를
반드시 반영해야 한다

 

▲ 이우진 과장
평택시농업기술센터 기술보급과

1994년 나는 농대를 갓 졸업하고 부모님과 함께 농사를 짓고 있었다. 주작목은 돼지호박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쥬키니호박과 상추였다. 처음 달리는 쥬키니호박은 아깝기는 했지만 모두 따서 버려야 했다. 크기도 작고 색깔도 칙칙해서 도매시장에서 상품성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한참 따내는 일을 하다 뒤돌아보니 어머니께서 고랑에 버린 호박들을 하나하나 골라서 포대에 담고 계셨다.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갈 때쯤 어머니께서 갑자기 전주 시내에 있는 모래내시장으로 가자고 하셨다. 아까 모아놓은 호박을 팔러 가신다는 것이었다.퇴근 무렵이라 그런지 시장은 제법 사람들로 붐볐다. 어머니는 작은 것은 다섯 개에 1000원, 큰 것은 세 개에 1000원씩 팔기 시작하셨다. 하나둘 사람들이 모여들더니 순식간에 호박이 모두 팔렸다. 나는 어머니에게 그게 팔릴지 어떻게 아셨냐고 물었다. 어머니는 된장찌개 끓일 때는 작은 호박도 괜찮다고 하셨다. 크기가 작은 호박은 생산자에게는 가치가 없었지만 소비자에서는 효용 가치가 있었다. 농업의 본질은 효용 가치가 있는 농·축산물을 시장에 파는 것이다. 어머니는 경험으로 고객의 입장에서 호박의 효용 가치를 판단하셨던 것이다.

얼마 전에 ‘스타벅스가 두려워하는 것은 고객이 진정한 커피의 맛을 아는 것이다’라는 제목의 비즈니스 칼럼을 읽었다. 칼럼에서 몇 가지 농업 분야의 시사점을 얻을 수 있었다. 커피시장을 독점하다시피 하는 스타벅스조차도 커피의 맛에 집중한 새로운 전략으로 시장의 흐름과 고객의 변화에 대응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농업인이 두려워하는 것은 고객이 진정한 농산물의 맛을 아는 것이다’라고 칼럼의 제목을 비틀어 상상해보았다. 고객이 진정한 농산물의 맛을 알게 되면 어떻게 될지 미리 알면 전략수립에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고객들이 커피의 맛을 알게 되자 커피의 상품군은 200원에서 5000원까지 획기적으로 발전했다. 아마 농산물의 상품군도 지금보다 훨씬 다양해질 것이다. 농산물의 맛도 고객의 선호도에 따라 훨씬 풍성해질 것이다. 현재 농산물의 품질기준은 크게 세 가지로 볼 수 있다. 먼저 모양, 색깔과 같은 외관이나 브랜드처럼 보면 바로 알 수 있는 기준이다. 두 번째는 맛이나 식감과 같이 먹어봐야만 알 수 있는 기준이다. 마지막으로 안전성이나 기능성과 같이 먹어봐도 알 수 없는 점이다. 고객이 진정한 농산물의 맛을 알게 된다면 품질선택 기준이 첫 번째에서 두 번째, 세 번째로 변화할 것이다. 어떤 시나리오든 체계적인 준비만 있다면 결코 농업인들에게 위기가 되지 않고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2011년에 미국 시애틀의 파머스마켓에 견학을 간 적이 있다. 이곳에서 팔리는 토마토는 색깔에서 모양까지 매우 다양했다. 우리나라 같았으면 품질이 떨어져 팔 수 없는 것들도 많았다. 이런 토마토가 팔리는 한 가지 이유는 시애틀 소비자의 선택기준이 우리와는 다르기 때문이었다. 지금 시장에는 다양하고 품질 좋은 수입농산물이 넘쳐나고 있다. 우리 소비자들도 시에틀의 소비자들처럼 농산물의 선택기준이 달라지고 있다. 국내산 양파보다 중국산 수입양파가 더 비싸게 팔리는 사례가 그것을 방증하고 있다. 앞으로도 농업의 본질은 변화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고객의 농산물 선택기준은 급격하게 변화할 것이다. 이런 변화는 스타벅스 사례에서 보았듯이 위기가 아닌 기회가 될 것이다. 새로운 농업전략에 시장의 변화와 고객의 욕구를 반드시 반영해야 하는 이유다. 농업인들이 스스로 할 수 없다면 농업기술센터와 같은 공공기관의 도움을 받는 것도 좋은 방안이다. 아울러 농업기술센터에서도 이러한 농업인들의 요구변화에 대응하여 기술보급기능과 함께 경영마케팅 지원기능을 확대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농업기술센터의 주고객은 바로 농업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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