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이 없는
미군이 사라진
평택을 꿈꿔본다

 

   
▲ 임윤경 사무국장
평택평화센터

‘산과 들을 말리고 나무와 곡식을 태우면서 또 유월이 왔구나. 효순이 미선이 너 귀여운 우리의 딸들을 우리가 이 땅에 되살려야 할 유월이 왔구나. 이제 거꾸로 너희가 별이 되어 우리 갈 길을 가리켜주는 유월이 왔구나. 우리의 꿈을 지켜주고 쓰러지려는 우리를 일으켜 세우는 다시 그날이 왔구나’

지난 2015년 신경림 시인이 미군 장갑차에 치여 숨진 신효순·심미선 양 13주기 추모제에서 낭송한 추모 시 중 일부다. 지금 읽어도 당시 상황이 떠올라 가슴이 먹먹해진다. 두 소녀가 미군 장갑차에 깔려 숨진 2002년 6월 13일은 전국동시지방선거일이었다. 또한 한일월드컵 개막 후 우리나라 월드컵 축구대표팀과 포르투갈 축구대표팀의 조별 예선 경기를 하루 앞둔 날이기도 했다. 2018년 6월, 지금 모습과 매우 흡사하다.

당시 보수언론은 솜털 같은 만 14살 중학생 2명이 미군 장갑차에 의해 비참한 죽음을 맞은 사건을 단순 ‘교통사고’로 깎아내리고 진상을 얼버무려 넘기려고 했다. 그리고 짤막한 단신 기사로 처리했다. 선거와 월드컵 속에서 이 사건은 기자들에게 귀찮은 사고였을 뿐이었다. 미군 또한 사건 이후 단 한 번도 진실을 말하지 않았다. “나를 분노하게 만드는 것은 미군이 공무 수행 중 발생한 사고라며 일방적으로 조사하고 끝내려 한다는 것과 우리가 재판관할권조차 없다는 것” “더욱 기막힌 일은 이 사고에 대해 항의하러 간 우리 여고생들과 시민단체에 무릎을 꿇고 사죄해도 시원찮은 미군이 무장한 채 총부리를 들이댔다는 것이다” 당시 모 신문 기고문에 실린 내용이다. 미군은 사고 발생 후 유족에게조차 알리지 않은 채 서둘러 현장조사를 벌였다. 그리고 운전병에게 정지 명령을 냈다는 거짓발표를 한다. 물론 허위로 밝혀졌다. 또한 “훈련을 주민들에게 미리 통보했다”고 거짓발표한 뒤 주민들의 항의를 받아야 했다. 거짓을 일삼는 미군과 무관심한 언론. 이에 분노한 시민들은 가만히 있지 않았다. 삼삼오오 촛불을 들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전국은 미선·효순을 추모하는 촛불시위로 뜨거워졌다. 평택도 예외는 아니었다. “미선이와 효순이를 살려내라! 불평등한 소파 즉각 개정하라!”는 구호를 걸고 케익타운 앞 네거리에서 수백 명의 학생과 시민들이 모여 촛불시위를 펼쳤다. 당시 동네 사람들과 돗자리를 챙겨 참여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때의 함성도, 그 숙연한 분위기도 말이다.

올해로 효순·미선 추모 16주기가 된다. 16년이 지난 지금, 상황은 얼마나 변했을까. 여전히 미군 범죄자는 한국 법원의 재판을 받지 않을 수 있다. 여전히 전시훈련 시 인근 주민들의 안전을 담보할 특별한 대책은 없으며, 여전히 미군은 위험천만한 대공용 레이더를 주민들 몰래 주택가에 설치하고 있다. 미군으로 인해 입은 피해자는 개인이 미군을 상대로 피해를 입증해야 하며 한국인을 상대로 살인·강간·강도 등의 흉악 범죄를 저질러도 미군은 무사히 빠져나갈 길이 열려 있는 것이다. 16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반 달라진 것이 없다.

평택에 살아가면서 미군으로 인한 피해 사례를 많이 접한다. 그때마다 느끼는 것은 미군이 참 함부로 행동한다는 것이다. 왜 그럴까. 만약 소파협정(한미주둔군지위협정)이 엄격해 미군이 함부로 할 수 없는 분위기가 조성된다면 과연 그때도 미군이 함부로 행동할까. 아마 애당초 이런 사고가 발생할 가능성도 낮았을 것이고 또 설령 사고가 발생했다고 해도 미국이 그처럼 무책임하게 나오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미선·효순 16주기인 올해 6월.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으로 평화의 분위기가 높아지고 있다. 지금도 여전히 변화지 않는 상황 속에서 작게나마 희망을 품어본다. 그리고 매주 미군기지 주변 마을을 돌아보며 주민 피해 사례를 살펴보고 있지만 언젠가는 미군이 없는, 미군이 사라진 평택을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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