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에게 사랑받는 연극 만들겠습니다”

정운봉, 평택에 첫 연극단체 설립
시민과 지자체의 많은 관심 필요

 

 

“연극으로 본질적인 삶의 가치관을 찾고 진심으로 관객이 사랑하는 공연을 펼치고 싶습니다”
경상북도 고령 출신으로 평생을 연극인으로 살아오다 ‘진갑 進甲’이 넘은 나이에 평택에 정착한 정운봉 한국연극협회 평택지부장은 이제 겨우 8년 된 평택시민이다. 성공과 실패를 반복하며 곡절 많은 삶을 살아온 그는 평택의 역사와 인물을 활용해 지역 연극 인프라를 넓혀나갈 계획이다.

연극의 길, 성공과 시련
서울에서 70년대부터 연극 활동을 펼쳐온 정운봉(71) 지부장은 극단 ‘한강’의 단역배우로 데뷔한 뒤 연극 <햄릿>, <에쿠스> 등에 출연하며 활약했다.
“처음부터 큰 뜻을 가지고 연극인이 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연극을 하면서 영화나 드라마에도 출연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실제로 1990년도에는 정을영 PD가 연출한 KBS 미니시리즈 <겨울 나그네>에 출연했습니다”
연극을 시작하고 18년 만에 방송에 데뷔했지만, 그는 방송이 영 익숙하지 않았다. 무언가 자신의 색과 맞지 않는 느낌이었다.
“기대하던 방송에 출연했지만, 녹화가 진행된 3개월간 많이 힘들었습니다. 연극배우였던 제게 방송국은 호락호락하지 않았죠. 녹화가 진행될 때마다 위축되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이후 정운봉 지부장은 방송과 멀어졌다. 다른 작품에 출연 제의를 받기도 했으나 그는 다시 연극 무대로 돌아왔다.
1991년에는 극단 ‘예보’를 창립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문을 닫으면서 좌절을 맛보기도 했다. 하지만 고생 끝에 낙이 온 것일까. 정운봉 지부장은 1993년 연극 인생의 황금기를 맞게 된다.
“배우 최종원, 전무송과 함께 1992년 ‘극발전연구회’를 설립하고 다음 해에 이강백의 ‘북어대가리’라는 작품으로 공연을 펼쳤습니다. 이 작품이 당시 엄청난 흥행을 기록하면서 그해 백상예술대상 대상과 작품상, 연출상을 받는 기염을 토했죠. 그뿐만 아니라 일본과 미국 등 해외 공연을 펼치며 굉장한 인기를 누렸습니다”
하지만 이는 오래가지 못했다. 함께 하던 배우 최종원과 전무송이 방송과 영화계를 아우르며 바빠지자 자연스레 ‘극발전연구회’가 해체된 것이다.

첫 소극장, 다가온 위기
정운봉 지부장은 후배들의 연락을 받고 수원으로 내려간다. 이후 한국연극협회 수원지부 회원들과 활동하면서 경기도연극제에 참가해 동료 연극인들로부터 극찬을 받았다.
“후배들의 부탁으로 연극을 만들어 경기도연극제에 참가했습니다. 당시 대회에서 한 작품으로 연출상, 미술상, 연기상을 휩쓸었죠. 이후에는 수원에 직접 소극장을 열고 ‘촌벽’이라는 극단을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불과 2개월 뒤 그에게 큰 시련이 다가왔다. 1997년 한국 경제를 크게 위축시킨 IMF 외환위기 사건이 터진 것이다.
“IMF가 터지고 나서 2년 정도를 버텼습니다. 아파트를 팔아서 모조리 소극장에 투자했지만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어요. 이러다가 노숙자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죠. 그 길로 후배들에게 소극장 운영을 넘기고 나왔습니다”
안정적인 소득이 필요했던 그는 수만 명이 몰린 경기도립극단 입단 시험에 쉰여섯의 나이로 합격해 수년간 활동하기도 했다.

평택에서 ‘연극’을 하다
경기도립극단에서 나와 남양주, 성남, 일산 등 경기도 각지에서 활동을 펼치던 정운봉 지부장은 우연한 기회에 평택에 정착한다.
“새로운 곳에 극단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던 찰나에 우연히 평택호관광단지에 들렀고 공사 중이던 한국소리터 공연장을 발견했습니다. 순간 이곳에 정착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한국소리터’가 완공되고 이듬해인 2013년도에 경기문화재단 상주단체로 등록하고 본격적으로 평택에서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평택에 정착한 뒤 그는 평택시지부를 설립하고 <울고 넘는 박달재>, <무동>, <사랑초> 등의 연극을 만들어 공연을 펼쳐왔다. 특히 평택농악을 소재로 한 <무동>은 경기도연극제에서 대상을 타고 전국연극제에서 은상을 받는 등 우수한 성적으로 평택의 이야기를 널리 알렸다.
“좋은 작품으로 전국에서 인정받았지만 정작 평택시민들의 관심은 미미했습니다. 정말 안타까운 현실이죠. 관객이 적다 보니 관련 단체나 지자체에서 지원받기도 힘든 실정입니다”
정운봉 지부장은 시민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는 결국 이 지역의 꿈나무를 키우는 것이 답이라고 생각한다.
“지역의 새싹을 키우기 위해 경기물류고와 한광여고, 평택여고에 연극반을 만들었습니다. 아이들이 꼭 배우가 되지 않더라도 연극에 대한 관심과 이해를 높일 기회라고 생각했죠”
그는 지자체나 지역의 기업, 시민들이 인내심을 갖고 문화예술에 많은 투자와 관심을 쏟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정운봉 지부장의 노력이 지속된다면 언젠가 평택시민들이 연극을 사랑하고 투자를 아끼지 않는 날이 오지 않을까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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