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위안부 고령화로 생활고,
“시대적 아픔 지역이 보듬어야”


국가, 법이 있음에도 직접 윤락행위 방조·조장 책임 인정
평택의 특수성, 기지촌에서 흘러나온 달러로 경제 돌아가
평택서 전국 최초 미군위안부 조례 제정, 민·관 함께 만들어


평택시민재단과 햇살사회복지회가 공동으로 주최한 ‘평택시 미군위안부 지원조례 제정을 위한 시민토론회’가 7월 24일 팽성국제교류센터 국제회의실에서 진행됐다.
이번 포럼은 전국 최초로 시민이 주도해 연구한 조례라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른 ‘미군위안부 지원조례’에 대해 시민들의 좋은 의견을 더하기 위해 마련됐다. 이번 토론회는 미군을 몰아내기 위한 것이라고 오해한 일부 팽성읍 주민들과 시민들에 의해 소란이 일기는 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함께 한 많은 시민들의 마음이 더해진 가운데 이어졌다. 우순덕 햇살사회복지회 대표는 “한때 민간 외교관 달러벌이 역군이라 칭송받으며 기지촌에서 미군을 상대로 일했던 젊은 여성들은 지금은 늙고 병들어 쪽방에서 외롭게 살아가고 있다”며 “평택시가 할머니들을 지원할 수 있는 조례 제정에 먼저 나서주기를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평택시사신문>은 이날 토론 내용을 지상 중계함으로써 미군위안부 지원조례 제정의 취지와 의미를 바르게 알리고 이에 대한 의미를 시민들과 함께 공유하고자 한다. - 편집자 주 -

 


 

▲ 박성복 사장
평택시사신문

■ 토론 좌장
박성복 사장/평택시사신문

청소년기 송탄 미군기지 인근에 살면서 문화적 충격을 느꼈다. 그것이 평택사회가 지금까지 안고 왔던 긍정적, 부정적 현상을 내포하고 있다고 본다. 다양한 구조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평택에서 오늘 토론회는 의미도 있고 역사적 소명감도 느껴지는 자리다. 한국 현대사에 있어 전쟁 이후 미군문화, 기지촌 문화, 여성들의 삶, 이들이 할머니가 되어 살아가는 지난한 삶을 이 시대가 함께 고민하고 아파하는 자리, 제도를 만드는 심도 있는 토론회가 됐으면 좋겠다. 각자 생각은 달라도 목표는 같다고 생각한다. 기지촌 할머니들을 사회가 어떻게 보듬고 사회적 책임을 다할 수 있는가에 대한 공감대도 같다고 생각한다. 이 또한 평택사회가 안고 가야할 책무일 것이다.

 

▲ 이나영 교수
중앙대 사회학과

■ 주제발표
이나영 교수/중앙대 사회학과

국가, 기지촌 정화대책 등 성병 통제
‘윤락행위방지법’ 불구하고 국가가 관리

1945년 우리나라에 미군이 주둔하기 시작하면서 기지촌이 시작됐다. 1946년 5월 ‘부녀자 매매 또는 매매계약 금지’ 공포에 따라 부녀자 매매는 금지됐다. 자발적 공창은 허용됐으나 1947년 11월 ‘공창제도등폐지령’이 공포됐고 1948년 2월 효력이 발생했다. 1945년부터 1949년까지 미군 기지촌 성매매는 미군이 직접 운영했으며 주로 군부대 안에 있는 장교클럽과 사병클럽에서 이뤄졌다. 부대 근처 한국인 민간업자가 운영하되 미군 군의관과 헌병이 지정하고 체계적인 통제를 받는 유곽형태로 이뤄졌으며, 국가가 규제하는 성매매 체제의 기본 골격을 유지했다. 설치나 경영면에서도 일본군 위안소와 유사한 점이 많다. 한국전쟁 시기에는 연합군 위안소와 한국군 위안소가 동시에 설치됐으며, 정부가 직접 개입해 설치하고 민간업자가 감독하는 형식으로 이뤄졌다. 민간업자들이 처음부터 주도적으로 관계 당국에 신청하면 정부가 이를 허가하는 방식이었다. 한국전쟁 이후 국가 건설 시기에는 전통문화와 민족의 경계에 대한 불안감이 증대됐고 미군은 자국 병사들의 성병 방지를 고민하면서 양국 간 성병대책위원회가 조직됐으며, 성매매 여성을 유엔군, 국군 주둔지와 서울, 부산, 대구 등에 집결시켜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이승만 정권 당시에는 국가의 개입과 함께 기지촌이 본격적으로 형성됐다. 미군부대 주변의 댄스홀과 바 등을 내국인 출입금지 구역으로 지정하고 미 헌병대에 구역 통제권을 부여했다. ‘창녀’를 등록해서 격리하고 효율적인 감시체계를 형성했으며 성병진료소 43개소가 평택, 파주, 양주 등 지역에 위치하게 됐다. 1957년에는 미군 외박이 허용됐으며 기지촌 성매매가 성장했다.

박정희 정권 당시에는 ‘윤락행위 방지법’이 제정됐으나 법적인 실효성이 거의 없었고 ‘관광진흥법’이 제정되면서 기지촌 클럽들을 ‘특수 관광시설업체’로 지정해 면세 주류를 공급하고 달러로 세금을 납부하게 했다. 또한 ‘한미친선협의회’를 구성해 기지촌 관리에 개입했다. 이에 따라 기지촌 여성을 등록제로 하고 강제적으로 성병검진을 하게 했으며 격리수용하거나 교육시키기도 했다. 1970년대에는 미군철수를 막기 위해 통제 시스템을 강화해 일명 기지촌 정화대책으로 심화된 성병통제와 흑백분리를 조장했다.

기지촌 관련 산업이 대한민국 전체 GNP의 25%를 차지하는 등 경제가 활황을 맞으면서 여성들은 사회적으로 천시당하면서도 ‘개인외교관’ ‘애국자’ 등으로 호명되면서 외화벌이에 주력할 것을 요구했으며 실제 여성 한명이 버는 외화에 가족, 지역사회, 국가가 기생하는 형태였다.

기지촌 여성들은 2014년 6월 25일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으며 이에 대해 국가는 2017년 1월과 2018년 2월에 기지촌 운영과 관리에 국가가 관여했음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리고 위자료 지급을 명령했다. 이 소송은 원고들이 자신의 입으로 진술하고 법원이 이를 중요한 입증으로 인정하면서 보편적이고 국제적인 인권가치를 확인하고 국가의 책임을 규명했다는데 큰 의미가 있다.

 

▲ 이은우 이사장
평택시민재단

■ 주제발표
이은우 이사장/평택시민재단

노령화로 지원 시급, 전국 첫 조례 될 것
조례제정, 미군과 바람직한 관계형성 도움

평택지역은 한국전쟁 이후부터 미군기지가 존재했고 기지이전 확장으로 대다수 주한미군이 평택에 주둔하고 있는 현실 속에서 오랜 기간 미군 기지촌에서 벌어들인 달러와 공급물자 등을 통해 지역경제와 지역민의 삶이 유지돼 왔다. 미군기지 이전으로 ‘평택지원특별법’이 만들어지고 예산 지원을 받고 있으나 정작 피해 당사자인 위안부 여성들을 위한 정책이나 예산지원은 전무한 것이 현실이다. 주한미군 부인회에서도 과거를 성찰하면서 정기적으로 자원봉사를 통해 미군 위안부 할머니들을 돕고 있는 현실에서 평택시도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일 시점이다. 조례제정은 일부에서 우려하는 주한미군과의 갈등을 유발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주한미군과의 바람직한 관계형성과 호혜관계를 증진시킬 것이다.

대상자인 미군위안부 여성들은 현재 고령화로 인해 급박한 지원이 필요하다. 사회적 낙인 속에서 고통으로 평생을 지낸 기지촌 위안부 할머니들은 대다수가 기초생활 수급권자인데다 미군기지이전사업으로 월세부담이 가중되면서 이중의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팽성읍과 신장동 일대에 180여명의 할머니들이 거주하고 있는데 이들에게 예산을 지원하더라도 평택시 재정에는 크게 부담이 되지 않는 규모다. 이번 조례 제정은 평택에서 추진하는 선도적인 입법으로 국제평화도시 이미지가 창출되고 지방자치 활성화와 타 지역에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도 있다. 시민의 인권보호와 복지증진은 평택시의 책무이기도 한 만큼 이번 조례는 의미가 있을 것이다.

시민들이 주도해서 만든 조례연구모임은 2018년 4월 첫 모임을 구성하고 현재까지 여섯 차례 연구모임을 진행해 조례안을 확정했다. 조례제명에 사용된 ‘미군위안부’라는 명칭은 향후 협의를 통해 ‘평택시 기지촌여성’으로 변경도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담당부서는 중장기적으로 볼 때 한미협력사업단 한미협력과로 지정할 필요가 있으며 미군위안부 지원단체, 시민단체, 평택시의회, 평택시 담당부서가 참여해 함께 협의하면서 조례를 제정하는 민·관 협력모델로 추진할 계획이다. 조례 상정을 의원발의로 할지, 평택시 발의로 할지에 대해서는 논의가 필요하지만 오는 9월 10일 개회예정인 제201회 제1차 정례회 때 조례안 상정과 의결을 목표로 하고 있다.

 

▲ 김숙자 어르신
미군기지촌 위안부

■ 지정토론
김숙자 어르신/미군기지촌 위안부 출신

어린 시절 매질을 견디지 못해 집을 나왔고 식모살이를 전전하다가 이후 성환, 김제, 평택시 팽성읍 안정리 등에서 미군들과 지냈다. 1976년 안정리에 와서 일을 했는데 우리는 클럽을 돌아다니며 서비스 교육을 받고 성병검진에 대한 당부를 받았다.

평택군청이나 읍사무소 관계자들도 찾아왔고 국회의원들은 나이 들면 9평 아파트를 지원해주겠다는 얘기도 했다. 젊었을 때 외화획득이라는 명목으로 부추기면서 우리를 관리했던 정부가 지금은 아무런 지원도 하지 않고 우리는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다. 조례가 제정돼 사는 동안이라도 조금 편안하게 지냈으면 좋겠다.

 

▲ 유승영 의원
평택시의회

■ 지정토론
유승영 의원/평택시의회

어떤 부분에 문제가 있을 때 된다거나 안된다가 아니라 우선 사람이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 조례를 살펴보면 기지촌 할머니들에 대한 지원예산은 연간 2~3억 원 이하이고 그 정도 지원은 평택시가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명칭에 대한 부분은 평택시의 정서상의 문제이기 때문에 변경을 검토할 수 있어야 하지만 무엇보다 빨리 지원이 이뤄져서 평택이 더불어 잘사는 곳이 되었으면 좋겠다.

 

▲ 최치선 상임위원
평택문화원 향토사연구소

■ 지정토론
최치선 상임위원/평택향토사연구소

한 도시의 격은 나보다 못한 사람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고 이웃으로 섬기며 살아가는 가에 있다. 미군위안부라는 명칭에 대해서는 용어에 너무 집착하지 말고 우선 오해부터 풀어야 한다.
지역사회에서 발 벗고 나서서 이들의 문제를 바라본 사람이 있는가. 미군위안부들이 모여 있는 햇살사회복지회에는 아이러니하게도 미군 부인들이 와서 자원봉사 하고 있다. 이는 반미 문제가 아니라 여성을 존중하는 측면으로 봐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 최미정 정책위원장
경기여성연대

■ 지정토론
최미정 정책위원장/경기여성연대

평택이 가장 선도적으로 조례를 제정할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지고 있다. 당사자들이 살고 있는 지역이고 조만간 미군기지가 평택으로 이전해오는 구조이기 때문에 평택의 시작이 경기도와 전체적인 입법과정에도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 자리가 그 출발이라고 생각한다.
아직은 고등법원의 판결만 나 있고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다. 미군 위안부를 얘기할 때 항상 자발적인가 아닌가의 문제로만 이야기한다. 그러나 국가가 명확히 인정하는 부분은 자발적인가 아닌가의 문제가 아니라 법률에 근거 없이 강제로 가뒀고, 강제로 조사했고, 감금했다는 것이며 그 부분이 법에서 인정됐다는 것이다. 당시에는 그런 부분들을 강제할 수 있는 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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