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향백리(花香白里)요, 주향천리(酒香千里)” 이 말의 뜻은 ‘꽃향기는 백리요, 술 향기는 천리를 간다’는 것. 흔히 꽃 보다 술 한 잔이 더 생각나는 시끌시끌한 연말도 이제 다 지나가고 60년 만에 한 번 온다는 흑룡의 해인 임진년 새해가 밝아왔다. 돌이켜보면 어느 해인들 그렇지 않은 해가 있을까마는 특히 신묘년 토끼띠인 지난해는 유난히 다사다난했던 해인 것 같다. 국내외를 불문하고 정치, 경제, 사회 등 모든 분야에서 굵직한 사건들이 터지면서 지구촌의 사람들의 가슴을 놀라게 한 해였다. 유럽 재정위기를 시작으로 아직 끝나지 않은 세계 재정위기와 함께 중동 및 북아프리카 민주화운동으로 전 세계가 정치, 경제적으로 혼란한 시기를 보냈을 뿐만 아니라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우리 모두에게 큰 충격과 함께 불안감을 안겨 준 해이기도 했다. 이어서 빈 라덴, 카다피, 김정일 등 세계적인 독재자들이 이 세상을 떠났다. 국내에서는 한미FTA 국회 비준안 통과를 비롯해 부자감세 논란, 무상급식주민투표, 반값등록금, 서울시장보궐선거, 안철수 신드롬, 복지논쟁 등으로 주요 국가사업과 관련해 사회적 갈등이 높아졌던 한 해이기도 했다. 게다가 세계적으로 토픽감이 된 민노당 강기갑 의원의 기이한 행태, 마치 독립 투쟁하는 혁명가인 양 신성해야 할 국회의사당에 최루탄을 터트리고도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도 분별 못하고 있는 같은 당 김선동 의원 등 커다란 이슈들이 신문지면과 SNS를 뜨겁게 달궜던 해였던 같다.
이런 혼란 속에서도 어김없이 임진년 새 날은 시작됐다. 이맘때가 되면 거의 모든 사람들이 작심삼일(作心三日)이 될지언정 한 해의 계획을 세우며 부푼 꿈에 젖는다. 그러면서 지난 옛것은 모두 잊고 새로운 변화를 찾으려한다.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이 같은 계획을 세워 이를 연 말까지 실행에 옮기는 사람은 12%에 불과하다고 한다. 90%에 가까운 사람들이 달성하지도 못할 목표를 세워놓고 중도에서 포기하는 것이다. 이처럼 누구나가 연말연시가 되면 으레 이 같은 계획을 세우는 것은 마음속으로는 무엇인가 달라지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너무 거대하고 지나친 목표를 세우면 힘이 들고 결국은 좌절하며 포기하는 실패의 삶을 살게 된다. 자신이 계획한 목표가 성공하려면 우선 눈송이처럼 아주 작은 입자 정도의 목표를 세워 시작해야 한다. 그래서 그 성취감을 통해 더 큰 계획을 하나하나 쌓다보면 자연스럽게 큰 계획이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먼저 버리고 비우는 것부터 선행되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이 변화되어야 한다. 내가 나 자신을 먼저 변화시키면 그것을 보고 가족이 변화되는 것이다. 자신은 작은 틀에 안주하면서 남에게 변화와 개혁을 부르짖는 것은 모순이다. 그래서 모든 것을 버리고 비우는 자세로 자신이 먼저 변화해야 한다. 버리고 비우는 일은 결코 소극적인 삶이 아니라 지혜로운 삶의 선택이다. 이 같은 변화는 우선 자신에 대한 기대감, 스스로 해 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질 때 비로소 그 계획들이 하나하나 이루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아주 작은 것 하나에 대한 변화를 실행하고 거기에 다른 것을 더해 가면 정말로 인생에서 커다란 변화를 일굴 수 있다. 그래서 1년이 아닌 평생의 변화를 만드는데 필요한 자신감을 천천히 아주 천천히 쌓으면서 점차 더 큰 목표를 달성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버리지 않고는 결코 새 것이 들어설 수 없다. 무엇을 해야 할지를 결정하는 것은 비교적 쉽다. 그러나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할 것인지를 결정하기는 매우 어렵다. 그래서 버릴 수 있는 용기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다. 공간이나 여백은 그저 비어있는 것이 아니라 그 공간과 여백이 이미 본질과 실상을 떠 받쳐주고 있다는 것이다. 단지 욕심과 의욕만으로 이룰 수도 없는 거대한 계획을 세우는 것은 애초부터 잘못된 것이다. 내가 행복 할 수 있는 것은 내가 얼마나 높은 사회적 지위나 명예, 또는 얼마나 많은 재산을 갖고 있는가가 아니라 나 자신의 영혼과 얼마나 일치되어 있는가 하는 것이다. 내가 행복함을 느끼기 위해서는 나에게 주어진 오늘 하루, 지금 이 시간이 있음에 감사하고. 밥과 몇 가지 반찬, 비록 풍성한 식탁은 아닐지라도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하며 허기를 달랠 수 있는 한 끼 식사를 할 수 있음에 감사하는 내가 되어야 한다. 또 누군가 나에게 경우에 맞지 않게 행동하고 비난할 지라도 그 사람으로 인해 나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음에 감사하는 내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토록 아름다운 세상에 태어났음을, 살아있기에 고통을 느낄 수 있음을 커다란 축복으로 여기고 무더운 여름 밤 별빛 하나, 봄날의 빗방울 하나에서도 눈물겨운 감동과 환희를 느낄 수 있는, 가을 빛 맑은 영혼으로 나의 마음을 풀어 한 줄의 시어(詩語)들을 엮을 수 있음에 감사해야한다.
우리가 철인(哲人)은 아니지만 이미 지나 간 어제(과거)에는 미련을 갖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어쩌면 오지 않을지도 모르는 내일(미래) 또한 두려워하지 말자. 다만 우리에게 주어진 오늘(현재), 이 시간들을 얼마나 충실하게 사느냐가 중요하다. 하루하루의 값진 삶이 일주일이 가고, 한 달이 가고, 일 년이 가고, 평생을 가는 것이다.


 

深頌 안호원
시인, 수필가, 칼럼니스트
사회학박사(H.D), 교수, 목사
평택종합고등학교 14회 졸업
영등포구예술인총연합회 부이사장
한국 심성 교육개발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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