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훌륭한 서예인, 올바른 정신이 중요”

38년 공직 마무리, 서예 정진
후학 양성위한 재능기부 할 것

 

 

“붓과 물아일체 돼 한자 한자 써나가는 것이 훌륭한 작가가 되는 과정이며 무엇보다 기본기가 탄탄해야 힘이 넘치고 웅장한 작품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운이 따라서 제6회 대한민국삼봉서화대전에서 대상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감사하게 생각하며 앞으로 후학을 기르기 위한 재능기부도 마다치 않을 것입니다”
옛 송탄읍의 중심지였던 지산동에서 태어난 소진호 씨는 38년간의 공직 생활을 접고서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배운 서예 실력을 거름 삼아 작품 활동을 펼치고 있다. 전국의 많은 작가가 참여하는 삼봉서예대전에서 대상을 받고도 운이 따른 결과라며 겸손한 모습을 보이는 그는 더욱 훌륭한 작가가 되기 위해 정진할 계획이라고 한다.

고향 송탄에서 태어나
송북초등학교와 태광중·고등학교를 졸업한 소진호(65) 씨는 졸업 후 상경해 다닌 1년간의 회사 생활을 제외하고는 평택을 떠난 기억이 없다.
“지금은 아파트가 들어서고 건물이 세워진 이곳이 어린 시절에는 모두 논과 밭이었습니다. 송탄을 지나던 유일한 도로인 국도 1호선이 편도 1차선이었으니 굉장히 열악한 도시였죠. 당시 중앙시장에는 비만 내리면 땅이 질퍽여 ‘마누라는 없어도 장화 없이는 못 산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었을 정도니까요”
지금은 구획 정리에 의해 개발돼 도시의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그의 기억 속에는 여전히 하천이 흐르고 메뚜기와 개구리가 지천에 널려있는 송탄의 모습이 생생하다.
“비록 가난했지만 어린 시절 친구들과 물고기 잡고, 메뚜기 잡고 뛰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학교를 마치고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친구들과 뛰어 놀다보면 부모님이 직접 찾으러 나오는 일이 부지기수였죠. 또 당시엔 먹거리가 풍족하지 않아 다들 삐쩍 말랐었습니다”
맨날 나가 놀기만 하던 아들이 걱정된 소진호 씨의 아버지는 어느 날 그를 앉히고 먹을 갈게 했다. 그가 서예를 처음 접한 것이 그때라고 한다.
“공부에는 관심이 없고 노는 데만 열중하자 직접 글을 가르치기 위해 아버지가 제 손에 붓을 쥐어주셨습니다. 동그라미와 세모, 네모만 거의 7개월 동안 그렸는데 이때 아버지의 가르침이 기본기를 탄탄하게끔 만들었던 것 같아요”

38년 9개월간 공직 생활
고등학교 졸업 후 상경한 소진호 씨는 1년간의 회사 생활을 뒤로 하고 고향으로 내려와 우연한 기회에 공무원 시험을 치렀다.
“집으로 내려와 무얼 할까 고민하던 찰나 공무원 시험 공고를 보고 시험을 치렀습니다. 얼떨결에 합격한 것이 30년이 훌쩍 넘도록 공직에서 일한 계기가 됐죠. 처음엔 진위면사무소로 출근을 했는데 하루에 4대 뿐인 버스를 타고 출퇴근을 하려니 너무 힘들고 월급도 굉장히 적어 그만두려고 생각한 적도 많았습니다”
아버지가 사직을 만류해 공직 생활을 계속한 그는 한참 새마을운동이 일던 시절 각종 개량사업부터 시작해 청북면장으로 재직하며 3층 규모의 청사를 신축하기까지 다양한 일을 추진했다.
“1985년도인지 그 다음해인지 정확하지 않지만 당시 토지개발공사를 상대로 1년간 싸워서 개발부담금 15억 원을 받아내기도 했습니다. 지금으로 따지면 100억여 원에 달하는 돈이죠.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3개 시·군 통합 당시 송탄출장소와 안중출장소 신설을 위해 동료들과 정부 부처에 몇 날 며칠을 찾아갔던 일이죠. 인원 감축이 불가피했지만 결국 두 곳의 출장소를 만들 수 있도록 승인을 받았습니다”

본격적인 서예의 시작
소진호 씨는 2012년 명예퇴직을 앞두고 무료한 노후를 대비해 취미를 만들고자 다시 붓을 잡기 시작했다.
“국민학교에 다니던 시절 아버지에게 서예를 배운 이후로 한동안 잊고 살았습니다. 이따금씩 서예를 연습했지만 일하느라 온전히 집중할 수는 없었어요. 퇴직을 앞두고 문득 서예를 다시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시 붓을 잡은 소진호 씨는 어린 시절 쌓아둔 기본기 덕분에 상당한 실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전국 각지의 대회에서 수차례 특선과 입상을 하며 실력을 인정받은 그는 올해 삼봉서화대전에서 대상을 받으며 값진 성과를 거뒀다.
“무엇보다도 고향 평택에서 개최되는 삼봉서화대전에서 대상을 받아 기쁩니다. 삼봉서화대전은 전국에서도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대회죠. 운이 따랐기에 제가 대상을 받을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소진호 씨는 앞으로 지역 후배들에게 올바른 서예를 전수하고 싶다고 한다. 정신을 집중하는 것이 서예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그는 바른 정신을 가진 사람이 훌륭한 작품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믿는다.
훗날 그의 가르침을 받은 후학이 평택지역의 서예 발전을 위해 앞장서는 모습을 상상하며 그 것이 현실이 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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