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4년 4월 28일

서울 유학 중 금전적 어려움
가정 형편 비관, 양잿물 마셔

 

“본적을 진위군 송탄면 가재리(振威郡 松炭面 佳才里) 이팔삼(二八三) 번지에 두고 부내 원남동(苑南洞) 일이(一二) 번지 창경여관(昌慶旅館)에 투숙 중인 최기철(崔基哲, 23)은 지난 이십팔일 오후 영시 경에 양잿물을 많이 먹고 고민하는 것을 여관 사람이 발견하고 곧 성대병원에 입원 응급수담을 가한 결과, 생명에는 관계가 없다는데 원인은 지난 사(四)월에 서울로 와서 각 고등보통학교에 입학시험을 보았으나 전부 입지에 되지 못하고 중앙기독교청년회관 학교에 입학하여 수업 중 자기 집에서 학비를 잘 보내지 아니하는 것을 비관하여 그 같이 자살하려던 것이라 한다”(『조선중앙일보』 1934년 5월 1일)

어느 나라, 어느 시기든 교육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다. 그래서 교육은 개인이든, 국가든 공력을 많이 들이고 있다. 요즘이야 중학교까지 의무교육이기 때문에 학비에 크게 신경을 쓰지는 않지만, 예전에는 학비 때문에 겪는 어려움이 적지 않았다. 1960년 후반 초등학교 시절을 보낸 필자의 경우, 학교에서 학비를 제때 내지 않으면 선생님으로부터 곤혹한 상황을 맞이하기도 했다. 그러면 학생들은 눈물 콧물 흘려가면서 집으로 가기도 했다. 때로는 학교에 가는 것조차 창피하게 느낀 적이 있다. 최근에야 교육복지 등으로 대부분 학생이 무상(?)으로 교육을 받고 있어, 공부에만 열중하면 되지 않을까 한다. 그것도 필자의 생각이겠지만.

1930년대만 해도 학교에 다니려면 학비를 마련해야 했다. 당시 학비 때문에 자살하려 한 기막힌 이야기가 있었다. 당시 진위군 송탄면 가재리에 집을 두고 있는 23세의 열혈청년학도 최기철은 1934년 4월 공부를 하려고 서울로 유학을 떠났다. 정해진 학교는 없었지만, 서울에 있는 고등보통학교 입학시험을 치렀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모두 합격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 됐다. 하는 수 없이 중앙기독교청년회관에서 운영하는 학교에 입학해 학업에 열중하였지만, 학비로 인해 이만저만 고민이 아니었다.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은 집에서 학비를 제때 보내주지 못했다. 더구나 여관에 투숙하면서 생활하고 있는 상황에서 금전 문제는 무엇보다도 큰 걱정이었다.

최기철은 학비 마련을 고민하다가 더는 방법이 없자 세상을 하직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4월 28일 늦은 12시경 양잿물을 벌컥 들이마시고 말았다. 이를 발견한 투숙객이 즉시 최기철을 병원으로 옮겨 응급조치를 받도록 했다. 생명에는 크게 지장이 없었지만, 학비 때문에 죽음을 고민한 최기철의 심정은 이제는 점점 옛이야기가 돼 가고 있다.

저작권자 © 평택시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