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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 평택의 전통예인-11
박성복 기자  |  sbbark@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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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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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시사신문·평택문화원 공동기획]

   
 

방용현은 경기시나위
대금·해금의 명인으로
동령제의 창시자이며
지영희에게 대금산조를 가르쳤다

 

방용현方龍鉉, 동령마을 세습무 집안에서 출생·방화준이라 불려
굿청에서 대금으로 생계, 서울 진출 늦었으나 예능적 재능 뛰어나
젓대시나위로 불리는 대금산조 유명, 지영희·이충선·김광식 가르쳐

 

   
▲ 방용현(方龍鉉) 경기시나위 대금 명인




Ⅲ. 평택의 예인藝人
2. 기악

3) 평택의 기악器樂 명인名人

 

■ 방용현方龍鉉

경기시나위 대금 명인 방용현은 1863년 지금의 이충레포츠공원과 접한 이충동 동령마을 세습무 집안에서 태어났으며 방화준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렸다.

방용현이 태어난 평택시 이충동 동령東嶺마을은 송탄지역 중심부에 자리 잡은 부락산負樂山(150.5m) 남쪽 능선에 자리 잡았으며, 삼국시대에서 고려시대 사이에 축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평택 동령마을성터平澤 東嶺城址가 있다. 또 동령마을은 마을 입구를 ‘성물백이(성문 밖)’, 송탄고등학교를 넘어가는 고개를 ‘성현城峴(성 고개)’이라 부르며, 주변 지형으로 봤을 때 역사학계에서는 치소治所와 읍성邑城이 있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동령마을은 특히 용왕제와 줄다리기 등의 전통을 400여년 이상 이어오고 있다. 동령마을 용왕제는 마을 안 논에 있는 우물 용왕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의식이다. 매년 음력 정월 첫 용날(진일·辰日)에 진행하며, 줄다리기는 매년 음력 대보름에 지역주민들이 힘을 모아 줄다리기 줄을 만들고, 연날리기와 농악놀이, 달집태우기를 통해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해오고 있다.

방용현은 이처럼 전통이 잘 보존되어온 동령마을에서 태어나 방화준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렸으며, 이 마을에서 무속 악사로 종사했다. 당시는 무업에 종사한다는 이유로 사람대접을 제대로 받지 못하던 상황이어서 ‘어디 가면 세끼 밥 한 그릇 못 먹으랴’는 생각으로 뼈저린 한을 품고 서울 왕십리로 이주해 대금 시나위에 열중하였다.

방용현은 젓대라고도 불리는 대금大笒 시나위 연주와 해금 연주의 대가로 널리 알려져 있는데 대금은 시나위 외에도 정악대금正樂大笒으로 문묘제례악과 대취타大吹打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정악正樂과 민속악에 널리 사용되고 있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관악기이다. 당시 다수의 국악인들이 한 가지 악기만을 다룬 것이 아니라 다양한 악기를 다뤘던 것처럼 방용현은 대금은 물론 해금도 자유자재로 연주해 해금 명인으로도 이름을 올렸다.

   
▲ 이충동 동령마을 방용현 집터(2012년)

방용현은 이충선과 지영희에게 대금과 해금을 사사하였다. 방용현에게 사사받은 시나위는 나중에 한주환, 박종기의 대금산조를 바탕으로 이충선류 피리, 대금산조와 지영희류 피리시나위, 해금산조가 만들어지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대금산조는 젓대시나위로 흔히 불리는데 박종기에 의해서 창시되었고, 그의 산조는 한주환을 거쳐서 한범수에게 전승되었다. 방용현은 서울을 비롯한 중부지방에서 젓대시나위로 유명하였고 그의 산조는 김원식에게 전승되었다. 경상도지방의 강백천은 독특한 대금산조를 만들었고, 방용현의 제자 이충선과 김광식도 가야금산조를 모방하여 대금산조를 만들었다고 한다.

방용현의 주특기인 대금은 가로로 불게 되어 있는 횡적류橫笛類의 관악기로 다른 횡적류와는 다르게 입에 대는 취공부분을 연주자의 왼쪽 어깨에 올려놓고 불고, 취공과 지공遲攻, 지공과 지공 사이의 간격이 비교적 긴 편이어서 완성도 있는 연주에는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
 

   
▲ 이충동 동령마을 방용현 집터(2016년)

방용현은 1927년 5월 27일 경성여자미술학교 교우회 주최로 열린 조선정악대회朝鮮正樂大會에 김형준, 이성환, 지용구 등과 함께 출연하여 행진할 때 연주하는 풍류인 행악行樂을 독주했다. 1930년 9월 15일에는 팔도명창대회에서 김기풍, 김만송, 김명수, 심상건, 지용구 등과 함께 풍류 공연에 출연했다. 1933년 8월 12일 조선악협회朝鮮樂協會 주최 ‘조선악 감상의 밤’ 때에는 명창 이동백, 해금산조의 명인 지용구 등과 함께 출연해 당대 최고의 소리와 연주를 유감없이 보여줬다.

방용현은 1930년 만들어진 ‘조선음률협회’에 정회원이 되어서 라디오 방송과 무대 공연에 출연하는가 하면 음반 취입을 하는 기회도 만들었다. 또 굿청에 가서 대금을 연주하기도 하였고, 특히 일본 공연에서는 이동안 일행과 호흡을 맞춰 공연하기도 했다. 이들은 세습무 집안들끼리라서 서로 의기투합하여 활발한 활동을 해나갔다.

   
▲ 조선음률협회 창립 기사(동아일보, 1930년 9월 27일 보도)

1933년 8월 20일 조선음악학원朝鮮音樂學院 설립을 위해 진행한 ‘전통악과 무용의 밤’에는 최수성, 지용구와 함께 출연했으며, 1938년 5월 2일 전조선향토연예대회에서는 최수성, 김덕진, 지용구 등과 함께 신선음악神仙音樂을 연주했다. 방용현이 고재덕, 김주호와 함께 취입한 ‘긴아리랑’, ‘성화타령’, ‘수심가’ 등은 SP시대 유명 레코드사였던 독일 폴리돌음반에서 발매했다.

1933년부터 1941년까지는 경성방송국京城放送局에 출연하여 검무의 무용곡, 무용풍악, 방아타령을 포함한 수십 곡의 민요와 ‘별우조타령別羽調打令’, ‘보렴報念’, ‘보허자步虛子’, ‘본풍류本風流’ 등 수십 곡을 방송하였다.

방용현은 고향인 평택 등지의 굿청에서 대금을 불며 생계를 꾸려나가느라 서울 진출은 남들보다 늦은 편이었으나 예능적 재능이 매우 뛰어나 경기도당굿 동령제 시나위의 창시자가 되었다. 시나위는 여러 국악기의 각각 다른 소리와 즉흥적인 가락이 어우러지는 특징을 가지고 있으며, 떠는 소리와 흘러내리거나 꺾는 소리와 같은 높은 기량의 연주법을 사용하기 때문에 애절하면서도 화려한 느낌을 주는 음악이다.

경기도당굿 굿음악 명인들은 제각기 자신만의 음악 장르를 구축해나갔는데 방용현의 경우 우리나라 전통 굿음악의 즉흥적 기악합주곡인 시나위가운데 대금 시나위의 명인이기도 하고 그만의 즉흥적 가락과 기교가 특징인 경기도당굿 시나위 동령제東嶺制를 만들어내 후학들에게 전수했다.

대금 시나위 명인 방용현의 피에서 흐르는 예술적 혼은 후대에도 이어졌는데 경기도당굿의 마지막 시나위 연주자인 방돌근(방인근)은 그의 손자이며, 증손녀의 딸도 한영숙류 춤을 전수했다. 또 그의 제자로는 경기도 광주 출신으로 1935년 광무좌단장光舞座團長을 역임하고, 대한국악원 이사, 국악예술학교 교사, 서울시립국악관현악단 악장으로 활동한 대금 연주의 대가 김광식金光植(1911~1972년)이 있으며 또한 같은 광주 출신으로 빅타레코드사 전속악사이자 국가무형문화재 제49호 송파산대놀이 장고, 대금, 피리 예능보유자였던 대금과 피리 연주의 명인 이충선李忠善(1901~1990년)이 있다. 이충선은 평택 출신인 지영희의 아내 성금연에게서 가야금산조를 배우기도 했으며, 1973년 신세계레코드사가 제작한 LP음반인 이은주, 묵계월이 취입한 <한국민요특선집>에서 해금 지영희, 가야금 성금연과 함께 피리를 맡아 반주했다.

방용현은 젓대시나위로 불리는 대금산조로 유명하였고 그의 제자 이충선과 김광식도 가야금산조를 모방하여 대금산조를 만들었으며, 또 방용현은 같은 평택 출신으로 해금 시나위 명인 지영희에게도 대금 산조와 풍류를 가르쳐 지영희가 우리나라 국악의 대표적 인물로 성장할 수 있는 밑거름을 만들어 주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 글·박성복 사장
   편집·김은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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