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은 음력 정월 초하루인
1월 1일에만 존재하는
우리의 전통 명절이다

 

▲ 박준서 이사
경기도평생교육진흥원

설날은 추석과 함께 우리 민족 최고 최대의 명절이다. 특히 설날은 오래전부터 조상과 자손이 함께 하는 신성한 시간이라는 의미를 지녔다. 그러나 도시와 산업사회로 이뤄진 현대에는 일상의 긴장감과 강박감에서 해방될 수 있는 시기라는 의미가 강해진 것도 사실이다. 개인적으로 보면 설날은 조상과 함께 하며 정신적인 유대감을 굳힐 수 있는 성스러운 시간이며, 국가 전체적으로 보면 국민 대부분이 정든 고향을 찾아가고, 새해 첫 날 아침 차례를 올리며, 또 때때옷을 입고 일가친지, 이웃어른을 찾아뵙는 등 같은 한민족이라는 일체감을 가지게 하는 시간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 볼 때도 설날은 우리 모두를 엮는 공동체의 결속을 강하게 한다는 점에서는 단순한 휴일 이상의 기능과 의미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설날이라는 말은 ‘새해에 대한 낯설음’이라는 의미와 ‘아직 익숙하지 않는 날’이란 뜻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또한 ‘새해 새날이 시작되는 날’이라는 뜻과 “삼가다謹愼” 또는 “조심하여 가만히 있다”라는 의미로 ‘삼가고 조심하는 날’이란 뜻도 지니고 있다. 한편 설날은 ‘원일元日’ ‘원단元旦’ ‘정조正朝’ ‘세수歲首’ ‘세초歲初’ ‘세시歲時’ ‘연두年頭’ ‘연시年始’ 등의 한자어로도 불린다.

우리 조상들이 언제부터 설날을 명절로 지켜왔는지에 대해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연구자들에 의하면 <수서隨書>나 <당서唐書> 등 중국의 사서에 “신라인들이 ‘원일元日’의 아침에 서로 ‘하례賀禮’하며 왕이 잔치를 베풀어 군신을 모아 회연하고, 이날 ‘일월신日月神’을 배례한다”는 기록이 있고, 또 <삼국사기三國史記> 제사 편에 백제 고이왕 5년(서기 238) 정월에 천지신명께 제사를 지냈다고 하는 기록이 전해오고 있다. 이때의 기록이 오늘날의 설과 관련성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확인할 수 없지만, 정월에 조상에게 제사를 지냈다는 것으로 보아 그 관련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렇듯 설날은 삼국시대 때 시작됐다. 아니 어쩌면 훨씬 이전부터일지도 모른다. 이후 고려와 조선까지 이어졌다. 그러다가 을미개혁 이후 양력을 도입하면서 새해 첫날이 설날이 됐다. 일제강점기에는 우리민족 문화 말살을 위해 음력 정월 초하루 설을 쇠는 것을 탄압했다. 일제는 순사까지 동원해 감시를 했으나 설을 쇠는 풍속을 막지는 못했다. 광복 이후에도 정부는 ‘이중과세二重過歲’라는 이유로 음력설을 없애려고 했다. 그러다 보니 두 번에 걸쳐 설을 쇠는 꼴이 됐는데 양력의 것을 ‘신정新正’,음력의 것을 ‘구정舊正’이라고 해 구별했다. 그러나 여전히 대부분 가정에서는 음력설에 차례를 지내는 전통을 유지했다. 국가에서 관혼상제나 명절 등을 가정의례에 관한 법률이나 준칙으로 제정할 수 있으나 일반 국민에게 강제할 수는 없다. 이를 감안해 1985년 정부는 음력 1월 1일을 ‘민속의 날’이라고 하고, 이 날 하루를 공휴일로 정했다. 이후 민족 고유의 설날을 부활시켜야 한다는 여론이 비등해지자 1989년에 음력설을 ‘설날’로 지정하고, 지금처럼 3일 간을 공휴일로 공표했다.

음력설을 구정이라고 부른 것은 일제의 발상이다. 일제는 양력설을 새롭고 진취적이라는 의미에서 신정으로 부르고, 우리가 쇠는 음력설은 오래되어 폐지돼야 한다는 의미에서 구정으로 불렀다. 이 이름은 일제가 물러간 이후에도 사용됐고 아직도 뜻도 이유도 모르면서 무의식 속에 설날을 구정이라 부르고 있다. ‘구정’이라는 단어는 역사의 아픔이 있는 단어일 뿐 우리의 고유 이름인 ‘설’과는 거리가 있다. 애초부터 설, 설날이라는 본래의 이름이 바른 표현이다. 구정이나 신정이라는 표현을 써서는 안 된다. ‘양력설’과 ‘음력설’이라는 것도 마찬가지다. ‘설’은 원래 음력 정월 초하루인 1월 1일에만 존재하는 우리의 전통 명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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