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는 사람이 사는 곳이라면 빠질 수 없는 문화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독일의 맥주축제, 스페인의 토마토축제, 미국의 할로윈축제, 브라질의 삼바축제, 일본의 눈 축제 등 세계 곳곳에서 각각의 특색을 갖춘 축제가 열립니다. 우리나라에도 보령의 머드축제와 안동 국제 탈춤축제는 대표축제로 꼽히고 춘천 국제 마임축제, 금산 인삼축제, 천안 흥타령 축제, 김제 지평선 축제, 강진 청자축제, 함평 나비축제, 진주 남강 유등축제, 하동 야생차 문화축제 등은 최우수 축제로서 비교적 성공한 축제로 꼽히지요.

그러나 평택에는 아직 이렇다 할 대표축제가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평택시농업기술센터에서 열리는 ‘봄꽃축제’나 평택호에서 물빛축제 등이 열리기도 하지만 다른 지자체에서 열리는 축제처럼 대표성을 갖기에는 부족해보입니다.

축제 하나가 성공하면 지자체의 많은 것들이 혜택을 봅니다. 때문에 많은 지자체가 그들만의 독특한 축제를 발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요. 그런데 얼마 전, 유독 마음에 와 닿는 축제에 관한 글이 있어 한동안 생각에 잠긴 적이 있습니다. 바로 화천 산천어축제에 관한 글이었지요. 마침 전날 텔레비전에서 방영했던 산천어축제를 방송으로 보며 나름대로의 문제의식을 가졌던 터라 긴 문장을 꼼꼼하게 읽어보았습니다.

내용을 간략하게 간추리자면, 물고기도 생명인데 인간의 즐거움을 위해 함부로 살상해도 좋은가에 대한 지적이었습니다. 즉, 인간의 즐거움을 위해 동물과 함께 하는 것까지는 좋지만 그 동물을 죽이는 것으로 즐거움을 표현할 것인지, 아니면 동물을 살리는 것으로 즐거움을 표현할 것인지, 인간의 생명에 대한 가치관을 따져 묻는 글이었지요.

산천어축제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물고기를 잡으면서 희열을 느낍니다. 사람들은 물고기를 못 잡은 사람들이 실망하지 않도록 그 근처에 일부러 물고기를 풀어 넣어 잡을 수 있게 해줍니다. 물고기가 미끼를 잘 물 수 있도록 사전에 먹이를 주지 않는다는 하더군요. 그렇게 만든 축제는 사람들이 넘쳐 발 디딜 틈조차 없습니다.

인간들이 즐거움을 표현하며 함께 모여서 즐기는 것이 축제라고 한다면 그곳에 애꿎은 생명은 왜 희생이 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이 듭니다. 예부터 축제를 시작하기 전에는 희생양이라고 해서 동물을 잡아 신에게 바치는 의식이 있었다고는 하나 이처럼 인간의 즐거움을 위해 대규모로 행해지지는 않았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에 대한 문제의식은 분명히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오래 떠나지 않았습니다.

옛날 강태공들은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 낚시를 했어도 잡고 나서는 다시 풀어주는 것으로 생명을 해치는 것을 즐기지는 않았습니다. 옛 인디언들은 자신의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동물을 사냥해도 그 동물을 위해 기도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고 합니다. 인간의 욕망을 자극하는 이러한 축제는 갈수록 많은 인원들을 불러 모아 그들의 욕망을 충족시키겠지만 욕망이라는 것이 채울수록 더 강한 것을 요구한다는 것을 생각할 때 단순히 흥행만을 생각하는 축제는 한번쯤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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