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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 평택의 전통예인-14
박성복 기자  |  sbbark@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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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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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시사신문·평택문화원 공동기획]

   
 

성금연은 가야금산조 명인으로
‘추상’ ‘새가락별곡’을 작곡했고
15현가야금으로 즉흥성이 강조된
무용음악 작품 ‘춘몽’을 발표했다

 

성금연成錦鳶, 1938년 어린 나이에 상경·지영희 함께 음악활동
1968년 국가무형문화재 제23호 가야금산조 예능보유자로 지정
성금연이 만든 작품, 기존 가야금곡들과 여러 측면에서 차별성

 

   
▲ 성금연(成錦鳶) 가야금산조 예능보유자




Ⅲ. 평택의 예인藝人
2. 기악

3) 평택의 기악器樂 명인名人

 

■ 성금연成錦鳶

국가무형문화재 제23호 가야금산조 예능보유자 성금연(1923~1986년)은 해금시나위 명인 지영희池瑛熙의 부인이자 음악적 동반자로 1923년 4월 10일 광주광역시에서 태어났다. 전라남도 담양 또는 전라북도 순창 출생으로도 알려져 있는 성금연의 본명은 성육남成六男이며, 호는 ‘춘소’이다.

13살의 나이인 1935년 조명수曺明洙에게 가야금산조와 병창, 양금, 판소리를 배웠고, 그 다음해인 1936년 안기옥安基玉에게 가야금산조를 배웠다. 또 신쾌동에게 거문고산조, 최막동에게 가야금풍류와 산조를 각각 사사받는 등 당대 최고의 명인들에게 교육 받았는데 이로 인해 그는 국악의 토양을 튼튼히 다져나갔다.

성금연은 어린 나이인 1938년 상경한 후 1948년 지영희와 결혼하고 함께 음악활동을 했다.

1938년 조선성악연구회朝鮮聲樂研究會에 들어가 정정렬丁貞烈에게 판소리 춘향가를 전수 받았다. 일제강점기 가야금산조, 산조, 창극조 방송을 위해 경성방송국京城放送局에 출연했다. 1939년 5월 13일 부민관에서 열린 조선소리경창대회에 출연해 가야금을 공연했다.

1939년에는 최옥삼崔玉三에게 가야금과 소리를 배우기 시작했고, 남편 지영희池瑛熙의 친구인 박상근朴相根에게는 잠시 가야금산조의 중중모리를 배웠다. 그렇지만 그의 산조는 안기옥의 가야금산조에 바탕을 두고 있다.

해방 후 1947년 12월에 창단된 조선음악회朝鮮音樂會에서 지영희, 김광식, 김광채, 이충선 등과 방송활동을 전개했다. 1947년 전속조선음악회專屬朝鮮音樂會 민속악 분야의 단원으로 활동했으며, 문교부 편수국의 장사훈과 서울중앙방송국의 이혜구, 이계원, 이덕근, 송영호의 도움으로 방송활동을 전개했다. 1949년 여성국극동호회女性國劇同好會 회원으로 가입해 박녹주, 김소희, 박귀희 등과 함께 창극에 종사했으며, 이때 임춘앵국극단林春鶯國劇團에서 연주와 연기도 직접 했다.

1948년 킹스타 오아시스에서 산조를 취입했고 그해 1948년 음악연구소를 세웠다. 1953년 고전음악무용연구소를 세웠다. 1958년 10월 전국국악경연대회에서 가야금으로 1등 상을 수상했고, 서울방송국 전속으로 활동했다.

국악 후계세대 육성이라는 끈 꿈을 안고 국악예술학교國樂藝術學校 설립에 공헌했으며, 기악과 주임교사로 활약하는 등 개교 이후 12년간 교사로 재직했고, 서라벌예술대학 강사도 역임했다.

1966년에는 남편 지영희가 만든 서울시립국악관현악단에 입단해 제1악장으로 연주활동을 이어갔다. 이 시기 그의 창작곡인 공후箜 합주곡 ‘신라의 넋’이 서울시립국악관현악단에 의해 연주되기도 했다.

   
▲ 1986년 서울 산울림소극장에서 성금연의 마지막 공연(딸 지미자 지성자 지순자와 성금연)

성금연의 활발한 연주활동은 가야금산조에서는 독보적인 위치를 점했으며, 이로 인해 1968년에는 국가무형문화재 제23호 가야금산조 및 병창의 산조부문 예능보유자로 지정됐다.

성금연이 예능보유자로 지정된 산조는 장구반주에 맞추어 다른 악기를 독주형태로 연주하는 것을 말하며, 4∼6개의 악장을 구분해 느린 장단에서 빠른 장단 순서로 연주한다. 가야금으로 연주하는 산조를 가야금산조라 하고, 직접 가야금을 타면서 노래 부르는 것을 가야금병창이라 한다.

산조는 조선 후기 사회 변혁기에 생성된 음악으로 이 음악을 만들고 즐겼던 계층인 민중의 사회의식을 강하게 반영하고 있다. 산조가 반영하고 있는 의식은 새로운 세계로의 지향과 개방성, 역동성이라 할 수 있다.

모든 산조는 느린 장단으로 시작해 차츰 빠른 장단으로 바뀌는데, 이는 듣는 사람을 서서히 긴장시키며 흥겨움을 끌어올리게 한다. 가야금산조는 4∼6개의 장단으로 짜이는데, 진양조는 아주 느리고 서정적이며 중모리는 안정적이다. 중중모리는 흥취를 돋우며, 자진모리는 밝고 경쾌하다. 휘모리는 흥분과 급박감이 있다. 다른 악기의 산조에 비해 가야금산조는 가야금의 악기적 특성으로 인해 여러 명인들이 다양한 음악유파를 형성할 수 있었다. 명인 반열에 오른 성금연도 ‘성금연류가야금산조成錦鳶流伽倻琴散調’라는 유파를 만들어 냈다.

   
▲ 성금연 가야금산조 연주 음반

1973년 신세계레코드사가 제작한 LP음반 3매의 <한국민요특선집>을 이은주와 묵계월이 취입할 때 가야금을 맡은 그녀는 해금 지영희, 피리 이충선, 대금 허상복, 아쟁 서공철, 장구 이정업과 함께 반주를 맡았다.

1968년 12월 21일 국가무형문화재 제23호 가야금산조伽倻琴散調 및 병창倂唱의 산조부문 예능보유자로 김윤덕金允德과 함께 지정됐으나, 1975년 미국으로 떠나면서 그해 5월 30일 예능보유자에서 해제됐다. 예능보유자 지정 당시 문화재청에 등록된 성금연의 등재 이름은 본명인 성육남成六男이었다. 1977년 6월 24일 민속악회 시나위의 지영희·성금연 초청연주회 때 출연했다. 1991년 6월 28일 KBS국악관현악단 제43회 정기연주회 때 그녀의 창작곡 ‘흥興’이 연주됐다.

그는 안기옥 가야금산조와 박상근朴相根 가야금산조를 토대로 새로 ‘성금연류가야금산조成錦鳶流伽倻琴散調’를 만들어 많은 제자들에게 가르쳤다. 이 산조는 명쾌하고 감칠맛 있는 특성 때문에 다른 가야금산조 명인들이 만들어낸 류流보다 1960년대와 1970년대 초에 가장 많이 연주됐던 가야금산조 중의 하나로 현재까지도 많은 국악인들에 의해 연주되고 있다.

1970년대에 들어서 성금연은 우리 음악에 관련해 보다 넓은 시각을 갖고 활동하게 된다. 1970년 일본에서 열린 EXPO70에 한국민속예술단 단장 자격으로 참가했으며, 1971년 남편인 지영희와 함께 세운 ‘한국민속연구원’의 이사 겸 원장으로 취임하게 된다. 그리고 이듬해에는 미국아시아학회 초청으로 미주 순회공연을 갖게 되는데 지영희, 김소희, 김윤덕 등과 함께 참여한 이 공연 가운데 카네기홀 연주는 성금연이 연주가로 경험한 가장 절정의 무대였다. 이 시기 그의 음악 속에는 강한 자신감, 도도함, 당당함이 살아 숨 쉬고 있었으며, 성금연의 음악여정音樂旅程에 있어서 뒤 돌아볼 틈 없이 숨 가쁘게 달려온 시기라고 할 수 있다.

   
▲ 일본 ABC홀 공연 후 성금연과 딸 지성자(왼쪽)

그는 작곡에도 재질이 있어 ‘추상追想’, ‘새가락별곡’ 등 여러 가야금 독주곡을 작곡하기도 했다. 그의 성금연류 가야금산조는 진양조·중모리·늦은중모리·중중모리·자진모리·휘모리·단모리로 구성됐고, 제자로는 딸인 지성자池成子, 지미자池美子, 지순자池順子, 지윤자池潤子, 지명자池明子와 이재숙李在淑, 황병주黃炳周 등이 있으며, 이 밖에도 수많은 가야금산조의 명인이 배출됐다.

그가 만든 작품들은 기존 가야금곡들과 여러 가지 측면에서 차별성을 갖는다. 기존 열두 줄로 된 전통가야금에서 벗어나 15현가야금을 사용해서 즉흥성이 강조된 무용음악적인 작품인 ‘춘몽春夢’을 발표하는가 하면, 산조의 장단 진행을 따르지 않고 농악장단을 가야금 속으로 옮겨와 ‘꽃의 향기’를 내놓았다.

또 15현 가야금을 통해 평조적인 가락을 살리고 특히 고음의 매력을 십분 살린 곡 ‘흥興’과 경기 무속장단을 가야금을 통해 담아내고자 하는 의지로 ‘새가락별곡’이라는 걸작도 내놓았다.

성금연은 1975년 하와이로 이민 간 후 남편 지영희와 함께 몇 차례의 국내 초청공연, 후계 세대 육성을 위한 국악 연구, 지영희의 전통음악 정리에 매진해오다 1986년 7월 28일 63세의 나이로 하와이에서 생을 마감했다.

 
▲ 글·박성복 사장
   편집·김은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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