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3년 1월 15일

권총으로 군자금 모집 활동
일설, 사기횡령 양민 협박

 

 

“요사이 종로경찰서 사법계에서는 경기도 진위(京畿道 振威)경찰서와 연락해 대활동을 개시한 결과 시내 모처에 잠복해 있는 진위 병남면 합정리(振威 丙南面 蛤井里) 김정한(金正漢, 26) 김정태(金正台, 41) 등의 두 형제를 체포하여 재작일 진위서로 압송하였는데, 그 내용은 절대 비밀에 부침으로 상세히는 알 수 없으나 탐문한 바에 의하면 그자들 형제는 재작년 이래로 사기횡령을 일삼던 외에 최근에는 권총을 가지고 군자금 모집이라는 구실 하에 다수한 양민을 협박하고 각처에서 금품을 강탈한 중대한 범인이라더라”(매일신보 1923년 1월 15일)

3.1운동은 일제강점기 민족운동의 최고봉으로 평가를 받고 있다. 3.1운동으로 독립의 열망을 가진 당시 한국인은 각지에서 독립운동 전선에 참여했고, 특히 독립운동 군자금을 모집하는데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평택에서도 3.1운동 직후 독립운동 군자금을 모집하다가 일본 경찰에 잡혀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는 등 적지 않은 희생을 감내했다. 독립을 위한 자신을 희생시킨 것이다.

그런데 일부에서는 이와 같은 독립운동 군자금 모집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사기를 치거나 재산을 훔치는 사건도 없지 않았다. 평택에서도 이러한 불미스러운 사건이 있었다. 당시 병남면 합정리에 사는 김정한과 김정태 형제는 3.1운동 이후에 서울 등지에서 사기횡령으로 생활했다. 그 때문에 종로경찰서에서는 이 둘을 검거하기 위해 잠복근무까지 했다. 신문 기사에 의하면 ‘대활동’으로 표기할 정도였다. 진위경찰서와 연락해 두 형제를 잡기 위해 서울 시내 모처에 숨어 있다가 마침내 체포했다. 그리고 진위경찰서로 이관했다.

진위경찰서는 이 두 형제를 검거했지만, 그 이유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기자들의 탐문에 의하면 ‘권총으로 군자금을 모집’했기 때문이었다. 당시 권총으로 군자금을 모집한다는 것은 일제 식민통치의 입장에서는 반드시 잡아들여야 하는 우선 과제이기도 했다.

사기횡령을 일삼았다고 한 김정한과 김정태 두 형제를 잡아들였지만, 이보다는 ‘군자금 모집’이 죄명이었을 수도 있다는 점이다. 그렇지만 이 두 사람에 대한 판결문이나 관련 자료가 남아있지 않아 구체적인 죄명이 무엇인지 확인되지 않고 있다. 두 형제의 사기횡령은 군자금 모집에 대한 부정적으로 해석될 수도 있어 해석에 주의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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