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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 평택의 전통예인-15
박성복 기자  |  sbbark@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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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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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시사신문·평택문화원 공동기획]

   
 

방돌근은 시나위 남양제 명인으로
신을 모시는 청배에 뛰어났으며
평생 경기도당굿 발굴과 보존
전승활동에 공을 들여왔다

 

방돌근方乭根, 경기시나위 대금 명인 이충마을 방용현의 손자
2000년 국가무형문화재 제98호 경기도당굿 전수교육조교 지정
굿판에서는 ‘장단 잘 치고 피리 잘 부는 사람’으로 명성 높아

 

   
▲ 방돌근(方乭根) 경기시나위 남양제 명인




Ⅲ. 평택의 예인藝人
2. 기악

3) 평택의 기악器樂 명인名人

 

■ 방돌근方乭根

경기시나위 대금 명인 방용현의 손자인 방돌근은 1941년 2월 18일(음력) 평택시 이충동 동령마을에서 태어났으며, 방인근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렸다. 그가 태어난 경기시나위 동령제의 출발지 이충동二忠洞은 조광조와 오달제가 태어나 유년기를 자란 곳이다. 또 ‘평택 동령마을성터東嶺城址의 흔적과 함께 치소治所와 읍성邑城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10여 년 전부터 이충택지개발사업과 이충레포츠공원 조성으로 지금은 대단위 아파트단지와 체육공원이 들어선 이충동 동령마을은 마을 안 논에 있는 공동우물에서 매년 정월 초정일初丁日에 마을의 안녕과 풍농을 기원하는 용왕제龍王祭를 지내고 있다. 그리고 최근까지도 각 가정에 터주, 제석, 성주, 업 등을 모시고 집안에 일이 있을 때나 정월과 7월, 10월 상달이 되면 집안에 있는 가신家神에게 치성을 드리는 전통을 올곧이 간직한 역사적 토양을 가진 마을이다. 이러한 전통이 있는 곳에서 태어난 방돌근은 어릴 때부터 우리의 전통 신앙에 자연히 젖어 있었고 그 속에서 성장해 왔다.

   
▲ 방돌근의 귀소지 이충동 동령마을 전경

동령마을 방씨 집안의 남자들은 대부분 명이 짧았다. 옛날에는 자손이 귀한 집에서 자손을 천하게 키워야 장수를 하고 번성한다고 하여 이름을 천하게 짓거나 천한 직업을 갖게 하는 풍습이 있었다. 방돌근을 낳은 후 명이 짧을까봐 걱정한 할머니는 손자에게 험한 이름을 지어줬다. 명이 길어지기를 기원하며 지은 이름이 바로 ‘돌근乭根’이었다. 당시에는 굿판에서 음악을 맡아하던 악사들을 보고 ‘산이’라고 하여 매우 천시하는 직업으로 여기고 있었지만 집안에서 방돌근을 산이의 길을 걷게 한 배경에는 명 짧은 집안에서 그가 장수하기를 기원하는 마음이 배어 있었던 것이다.

방돌근은 동령마을에서 태어나 당시 동령제 시나위의 창시자로 전국적인 명성을 떨쳤던 할아버지 방용현의 영향을 받으며 자랐다. 그는 고등학교 때인 1959년 음악을 배우기 위해서 수원으로 다녔다. 수원에서는 경기시나위 남양제의 대가로 경기재인청 출신의 장유순 밑에서 피리 시나위를 익혔다. 장유순의 가문은 화성시 남양읍을 비롯한 인근에서 명성을 떨치던 세습무가였다.

장유순은 아침마다 방돌근을 찾아와 그가 갖고 있던 재주를 다 물려주었다. 장유순에게 남양제 시나위를 물려받은 방돌근은 1960년 경기재인청 도대방의 가문으로 오산시를 근거지로 활동한 이씨 세습무가의 마지막 화랭이 이용우에게서 그 어렵다고 하는 경기무악 장단과 도당굿 장단을 전수받았다. 당시에는 꼭 장단을 치려는 것이 아니고, 함께 일을 다니면서 이것저것 알려주는 것이 고작이었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이용우에게서 장구 장단을 배운 후에 바로 굿판으로 나설 정도로 방돌근의 학습 속도는 매우 빨랐다.
 

방돌근은 19세 되던 해인 1961년부터 이용우, 정팔봉, 오필선, 이덕만 등 내로라하는 경기도 세습무가의 화랭이와 함께 경기도 일원의 도당굿에서 피리를 불기 시작했으며, 전국 각처를 다니면서 굿음악을 하기도 했다.

방돌근이 굿음악을 제대로 배운 것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그는 현장에서 많은 스승들과 함께 일하면서 자신만의 음악 세계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일을 나간 곳에는 당시 굿음악의 대가들인 정명환, 조만봉, 이덕순, 하대봉, 정달용, 임달봉, 김삼봉 등과 함께 굿판에 들어섰으며 40년이 넘는 세월을 굿음악과 인연을 이어갔다.

그러다가 정부가 각 지역의 굿음악을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하기 시작하면서 처음 활동 무대였던 수원으로 돌아와 다시 굿판에 섰고, 1992년 국가무형문화재 제98호 경기도당굿 이수자로, 2000년 8월 22일 전수교육조교로 지정됐다.

   
▲ 평택시 이충동 동령마을 용왕제

50대에 들어선 방돌근은 1993년 예술의 전당 ‘명인명무전발표회名人名舞傳發表會’에 참여했으며, 1998년 국립국악원과 KBS 한국방송이 공동으로 녹음한 경기도당굿 CD를 발간했다. 1995년부터는 부산해운대축제, 수원화홍문화제, 용인민속촌, 서울경복궁, 서울놀이마당, 88서울올림픽 성공개최굿한마당 등 100여회 공연에서 경기도당굿 전통 장단과 신을 부르는 청배 사설을 진행했다.

방돌근은 후배 국악인 양성과 잊혀져가는 굿 재현에서 앞장섰다. 1999년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무용과 특강을 비롯해 2000년 3월부터는 국립국악고등학교에서 국악 강사로 활동했으며, 2000년 2월에는 화성 서해안 풍어굿 재현을 주도적으로 추진했다.

굿판에서는 ‘장단 잘 치고 피리 잘 부는 사람’으로 방돌근을 지칭했다. 방돌근은 그 어렵다는 도당굿 장단을 손가락 안에서 화려하게 구사했다. 그의 피리시나위를 듣다보면 가벼운 듯 무겁고, 무거운 듯 하면서도 깊게 가라앉지 않는다.

방돌근은 경기도당굿 가운데 신격을 청해서 모셔오기 위해 가장 먼저 불리는 소리인 ‘청배請拜’에 뛰어났으며, 화랭이들의 소리와 음악을 고스란히 간직해 도당굿의 발굴과 보존, 전승에 평생 공을 들여왔다.

청배請拜는 거리의 신격들을 청원해 굿청에서 흠향하도록 소리로 모셔드리는 과정이므로 경기도당굿에서 청배는 매우 중요하며, 그 소리 또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흔히 청배는 부정청배, 시루청배, 제석청배, 군웅청배 등이 불리고 있다.

2000년 국가무형문화재 제98호 경기도당굿 전수교육조교로 지정돼 후진 양성과 연주 활동을 왕성하게 해오던 방돌근은 국립국악고등학교 강사로 활동하며 생전 처음 제자들과 함께 개인발표회를 준비했다. 그러나 2001년 5월 17일 개인발표회를 4일 앞두고 60세의 나이로 급작스러운 사고로 세상을 떠나 뭇사람들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방돌근의 문하에서 배운 제자들은 나름대로 그의 자취를 따라 흔적을 더듬어가려고 노력하고 있다.

   
▲ 청배를 하고 있는 방돌근

방돌근이 작고하자 전통음악인들은 “이제 경기도의 음악은 끝났다”라는 말로 아쉬움을 표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가 세상을 뜨기 일 년 전부터 자신이 지니고 있는 모든 음악적 기량을 제자들에게 물려주었다는 것이다. 그는 제자들을 날마다 집으로 불러들여 그가 가진 모든 역량을 혼신을 다해 전수했다. 전수생들에게 장단을 하나하나 알려줄 때도 그가 아는 것을 하나라도 더 알려주기 위해 몇 번이고 반복하는 등 참으로 정이 많았다고 제자들은 기억한다. 방돌근의 경기시나위는 김현주, 안재숙, 김현숙, 김흥수에게로 전해졌다. 그는 또 승경숙에게 경기도당굿 장단과 창법을 지도했으며, 목진호 역시 방돌근에게 이어진 경기도당굿 장단을 정통으로 이어받은 경기도당굿보존회 이수자이다.

경기도당굿 남부지부장 승경숙은 처음에는 경기도당굿이 낯설기만 했다고 한다. 경기도의 판소리인 판배개 창으로 불러대는 도당굿의 소리가 따라 하기조차 힘들었는데 그래도 힘든 도당굿의 춤사위며 장단, 소리를 배울 수 있었던 것은 당시 전수교육조교인 방돌근의 가르침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전한다. 방돌근은 이 시대의 마지막 전악이라고 할 만큼 도당굿의 장단과 경기시나위를 구가하던 악사였다.

경기시나위는 크게 남양제南陽制, 동령제東嶺制, 안산제安山制, 광주제廣州制로 나뉜다.

안산제安山制는 국가무형문화재 제52호 시나위 예능보유자였던 지영희가 창안하고 연주했던 제制로 현재는 국립전통예술고등학교에서 전승되고 있다. 이충선의 광주제廣州制 시나위 역시 산조가 정착되어 국립국악고등학교로 전승되고 있다. 국가무형문화재 제98호 경기도당京畿道都堂굿 전수교육조교 방돌근의 할아버지인 방화준의 동령제東嶺制는 전승이 끊겨 아쉬움을 더한다.

   
▲ 경기시나위 남양제 명인 방돌근

현재 경기도에 전승되고 있는 유일한 제制는 남양제南陽制로 방돌근에 의해 그의 제자들과 국립국악고등학교에서 전승되고 있다. 남양제는 경기도 화성 남양을 근거지로 집단 거주하며 경기도당굿을 전승시켜온 세습무가世襲巫家인 남양 장씨들이 창시자로 150년간이나 전승되어온 시나위다. 창시자 장만용으로부터 장점복, 장흥봉으로 전수가 되었다가 조암에 거주하던 문상근에게로, 다시 장유순에게로 전승되어 방돌근에게 전해진다.

방돌근의 피리시나위 가락은 생전에 연주한 가락이 전해지는데 경기도당굿의 도살풀이 장단인 섭채장단 2소박 6박(6/4박자)으로 시작하여 모리장단의 조금 빠른 3소박 4박(12/8박자) 장단으로 이어지며 점점 빨라지면 조금 빠른 모리장단으로 부르고 계속 음악이 빨라지면서 매우 빠른 발뻐드래장단으로 연주되었다.

방돌근 피리시나위의 특징은 지영희 시나위와 선율진행이 비슷하나 가끔씩 목튀김을 하면서 연주하는 것이며, 서울시립국악관현악단 김현주에 의하면 일정한 가락으로 짜인 것이 전해지지 않고 즉흥적으로 연주한 것을 무업에 종사하는 악사들 일부가 배웠다고 한다.

 
▲ 글·박성복 사장
   편집·김은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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