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명절이 되니 모처럼 멀리 떨어져 있던 동생네 가족과 친척들, 조카들의 얼굴을 볼 수 있어 좋았습니다. 모두 모여서 어른들께 세배도 올리고 맛있는 음식도 나눠 먹으며 오랜만에 혈육의 정을 느끼는 시간이었지요. 어르신 두 분만 있을 때는 그리도 휑하게 느껴지던 거실이 앉을 자리도 없이 북적댔고 거실에 상이라도 놓을라치면 어깨가 맞닿을 정도로 비좁게만 느껴집니다.

비록 예전처럼 설날 때때옷을 입고 눈 쌓인 길을 걸어가며 느꼈던 두근거림이나 설렘은 사라지고 없어도 이렇게 명절을 핑계로 그리운 얼굴이라도 볼 수 있으니 참 다행입니다. 못 본 사이에 조카들의 키가 훌쩍 자랐더군요. 한 조카는 수염이 까칠하게 나고, 다른 조카는 벌써 멋진 숙녀 티가 나기 시작한 걸 보니 시간이 참 빠르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내가 어릴 적, 그러니까 1970~80년대 무렵 설날이 다가오면 엄마는 쌀을 튀겨서 강정을 만들곤 했습니다. 쌀을 튀겨주는 뻥튀기 아저씨는 아이들에게 인기 만점이었는데 아이들은 저마다 엄마 손을 잡고 장에 가서 아저씨가 돌리는 뻥튀기기계 앞에 턱을 괴고 앉아있기 일쑤였지요.

뻥튀기 아저씨 기계 앞에는 차례를 기다리는 쌀들이 길게 늘어서 있었고 그 순서를 지키는 건 아이들이었습니다. 쌀을 동그란 기계 안에 밀어 넣고 압력이 높아질 때까지 한참을 손잡이로 빙글빙글 돌리는 아저씨 앞에서 아이들은 눈을 말똥말똥 뜨고 기다리곤 했습니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아저씨가 긴 지렛대를 뻥튀기 기계에 걸면 아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귀를 막고 몸을 웅크렸습니다. 이내 큰 소리가 날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요. 잠시 후 ‘뻥~’하는 소리와 함께 하얀 쌀이 튀겨져 나오면 인심 좋은 아저씨는 튀밥을 한주먹씩 건네주곤 하셨는데, 그 소리가 하도 커서 지나가는 사람들은 깜짝깜짝 놀라기 일쑤였습니다. 그래도 하얀 튀밥이 기계 주변으로 흩어지면 아이들은 마냥 신이 났습니다.

엄마가 장에 가서 튀겨온 쌀로 강정을 만드는 날이면 동생과 나는 하나라도 더 얻어먹을 욕심에 그 옆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엄마는 잘 튀긴 쌀에 조청을 넣어 손으로 잘 섞은 뒤 장기판 뒷면에 꾹꾹 눌러 담았습니다. 그리고 식을 때까지 기다려서 자를 대고 사방으로 반듯하게 썰었습니다.

조청이 굳으면서 어느새 바삭해진 강정은 잘라지기가 무섭게 우리들의 입으로 직행했습니다. 너무 많이 먹는다고 끝내 엄마한테 등짝을 한 대씩 맞으면서도 얼굴에는 행복한 웃음이 가실 줄을 몰랐습니다. 그 바삭하고 달콤했던 쌀강정은 하얀 비닐에 담겨 다락방에 숨겨두었는데 착한 일을 했을 때나 아니면 엄마에게 조르고 졸라서야 겨우 두어 개씩 얻어먹을 수 있는 귀한 과자였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명절에 찾아온 조카들에게 맛있는 과일이나 과자를 내주어도 반응이 영 시큰둥합니다. 먹을거리에 대한 설렘이나 두근거림도 사라진지 오래입니다. 명절날에만 맛볼 수 있는 음식이 사라졌기 때문인가 하는 아쉬움도 잠깐, 어느새 우리 주변에서 사라져버린 뻥튀기 아저씨의 맘씨 좋은 웃음과 하얀 튀밥, 달콤한 강정이 못 견디게 그리워집니다.

저작권자 © 평택시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