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자주 이런 생각을 합니다. “나는 혼자야, 모든 고통은 나 혼자 짊어지고 있고, 죽어도 혼자 죽고, 살아도 혼자 사는 거야”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불교의 연기론에 비춰 보면 이 말은 틀린 말이 됩니다. 나는 혼자가 아니고 현재 내가 겪는 고통도 후대로 이어질 수 있으며, 죽음도 결코 나에게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가르침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생기므로 저것이 생긴다. 이것이 없으므로 저것이 없고, 이것이 죽으므로 저것이 죽는다. 이는 두 막대기가 서로 버티고 섰다가 이쪽이 넘어지면 저쪽이 넘어지는 것과 같다”

성철스님의 이 가르침은 불교의 연기론을 쉽게 풀어 설명한 것입니다. 세월이 흐를수록 깊은 울림으로 되살아나는 이 가르침은 특히 모든 생명에 대한 생각들을 바꾸는 계기가 된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습니다. 

불교의 연기론은 모든 것이 관계되어 있다고 가르칩니다. 내 고통의 근원을 찾기 위해 거슬러 올라가다 만나게 되는 모든 것은 현재의 나와 어떻게든 연계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존재하는 것은 부모가 있기 때문이고, 그 부모가 존재하는 것은 할머니 할아버지가 있기 때문이고, 할머니 할아버지가 있는 것은 그 윗대의 부모가 있었기 때문인 것처럼 현재 내가 존재하는 것은 끝없이 거슬러 올라가야 만나게 되는 윗분들 덕분입니다.

내가 현재 고통 받는 이유나 현재 행복하게 사는 이유도 이유를 찾아 거슬러 올라가 보면 내가 생각지도 못했던 아주 사소한 것이 내 고통의 이유나 행복의 이유와 맞닿아 있을 수 있습니다. 때문에 불가에서는 하찮게 여겨지는 작은 생명일지라도 결코 함부로 하지 말라고 가르칩니다. 만일 오래 전의 업보에 현재의 업보까지 겹치면 그것은 또 다른 엄청난 결과를 낳을지도 모르니 말입니다.

모든 생명이 어떤 인연이든 연계될 수밖에 없다는 것은 참 무서운 가르침입니다. 그것은 현재의 나의 행동을 제약할 수도 있고 타인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새롭게 생각하도록 만드니까요. 또한 현재의 내가 어떻게 행동하느냐 하는 것은 미래의 업보를 미리 막을 수 있는 길이 될 수도 있습니다. 타인의 아픔에 대해 모른척할 수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어제 보았던 친구의 눈물이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았던 것도, 그 친구의 고통이 내게 고스란히 전해져 밤새 잠 못 이루었던 것도 어쩌면 어느 먼 과거, 혹은 어느 먼 미래의 업보가 현재의 나와 어떻게든 연계가 되어 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성철 스님은 불교의 연기론을 막대기 두 개가 서로 버티고 있다가 한쪽이 쓰러지면 나머지 한쪽도 쓰러지는 것과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비록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우리가 함께 서로의 버팀목이 되어 주고 있다는 것, 상대방이 쓰러지면 나 역시도 오래 버티지 못하고 쓰러지고 마는 그런 인연으로 산다는 것을 중생들에게 알려주고 싶으셨던 건 아니었을까. 이런 이유들을 곰곰이 생각하다 보면 오늘 내가 만나는 사람들이나 아주 작은 생명들이 참 귀한 존재들이라는 것을 새삼 또 한 번 느끼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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