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선 시의원 내려놓고 “농사지으며 삽니다”

신뢰와 기본 지켜온 농민출신 4선 시의원
평택의 미래 장기적인 안목으로 나아가야

 
민의를 대변하는 자리에 오래 있을 수 있다는 건 그만큼 주민 신뢰와 자신의 노력이 바탕이 되어야 가능한 일이다. 처음 출발했던 농민의 자리를 잊지 않고 평택시의회 제2~5대까지 16년간 시의원이라는 먼 길을 돌아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 배연서 제5대 의장은 항상 자신의 근본을 잊지 않았기에 더 단단하고 깊은 뿌리를 간직하고 현재의 자리에 우뚝 서 있다.

농사짓는 4선 시의원
“시골에서 만평정도 농사짓기 때문에 농사철에는 눈코 뜰 새 없이 바쁘지만 이제 겨울이 되니 조금 한가해졌어요. 어려서부터 집에서 농사짓는 걸 보고 자라 농민들의 삶이 어떤 것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요. 어릴 적 제 꿈은 내 농장을 갖는 것이었는데 지금도 농사일은 몸에 맞는 옷을 입은 것처럼 자연스럽습니다”
배연서(60) 전 의장은 4선 시의원이라는 보기 드문 이력을 갖고 있다. 16년이라는 시간을 평택시의회에서 보낸 그의 이력은 전국에서도 전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의원직에서 벗어난 그가 다시 평범한 농민으로 되돌아간 그곳엔 농사짓는 직업이 마치 오랫동안 입었던 옷인 듯 잘 어울린다.
“대학 졸업하고 영풍농산이라는 곳에 들어가 일하기도 했고 양돈과 양계, 낙농을 하기도 했습니다. 30대 초반엔 농업후계자로도 선정되고 팽성농협 이사를 8년간 하기도 했지요. 그러다보니 농민의 의견을 대변하고 농민을 위한 제도를 마련하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나서서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농민들의 삶을 무척 열악했으니까요”
농촌현실을 몸으로 체감하는 동안 농촌운동과 사회운동을 함께 해보자는 생각을 했었다는 배연서 전 의장은 그의 의지를 높게 평가한 지역민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아 팽성읍 지역구 시의원에 당선되었다. 어려서부터 내성적이고 나서는 것을 싫어했다던 배연서 전 의장은 그래도 어떤 뜻을 세웠을 때는 그것을 이루기 위해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농업인의 목소리 시의원으로 대변
“40대 초반에 시의원이 되어 평택의 농산물 브랜드인 슈퍼오닝 재배단지도 만들었고 농민회관도 지었습니다. 또한 농업축제도 3일 씩 진행하며 농촌과 도시를 연계해 생산자와 소비자가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도 했지요. 전국 최초로 만든 ‘평택시 무형문화재 보존 및 지원조례’는 국가지정 평택농악이 지금도 꾸준히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배연서 전 의장은 단 한 번의 게으름 없이 16년간 의정활동에 충실히 임해왔지만 스스로 느끼는 가장 큰 오점이 하나 있다고 털어놓는다. 그건 처음 의원으로 당선된 뒤 시골 친구들과 친목계를 미리 정해놨는데 의원에 당선되고 첫 회기와 맞물리는 바람에 회의에 빠지고 제주도에 갔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건 지금도 아쉬움으로 그의 마음 한 켠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평택은 지리적인 여건으로 무한한 발전가능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장기적인 안목으로 미래를 내다 볼 때 이러한 발전가능성에 행정도 포커스를 맞춰 함께 나아가야겠지요. 평택은 향후 10년이면 역동적인 많은 변화들을 겪게 될 거고 그에 따라 시민들의 일자리도 많이 만들어질 겁니다. 농민들도 농사지으면서 직장 다닐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진다면 농촌도 경제적으로 잘 살 수 있을 거라 확신합니다”
배연서 전 의장은 의원이 되고 난 뒤 가장 뿌듯했던 일은 민의를 대변해 일을 처리하거나 지원 방법을 몰라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었을 때라고 말한다. 또한 지역문제에 대해 세밀하게 알게 됨으로 인해 좀 더 넓은 시각으로 지역을 바라볼 수 있었다는 점도 의원이 되고난 뒤 그가 느끼는 뿌듯함이라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 농업인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지만 교통법규 잘 지키고 쓰레기 분리수거 잘 하고, 그런 기본적인 일을 잘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런 건 어릴 때부터 교육받아야 하는 것이지요. 전 시의원을 하는 동안 잃은 것도 많지만 얻은 것 또한 참 많습니다. 어떤 것을 이뤄내기 위해서는 자기희생은 감수해야 하는 부분이지요”
바쁘게 살아가느라 미처 결혼 할 만큼 마음의 여유를 갖지 못했던 그이지만 대신 그는 자유로움을 무기로 시의원을 하던 당시 많은 일들을 해냈다. 그리고 이제 다시 자연인으로 돌아와 농사에 전념하는 지금은 그냥 농사꾼이 아닌 지역을 폭넓게 살필 줄 아는 농업인이 되어 농사와 연계된 지역 현실을 바꿔가는 일에 마음을 쏟는다.
“의원을 하는 동안 가졌던 많은 걱정들을 손에서 놓긴 했지만 그래도 지역에 대한 애착까지 놓은 건 아니니까요. 그런 걱정되는 부분들에 대해서는 다른 의원들에게 조언하기도 하고 함께 의견을 나누기도 합니다. 이젠 농촌도 전문 경영인이 많아져 체계화되었지만 대형마트에서는 이미 중국 쌀도 판매되고 있어 농촌과 관련해 국가적인 차원에서의 식량안보는 생각할 여지가 있지요”
배연서 전 의장은 요즘도 일이 없을 때면 경제·종교·농업 등 매일 6개의 일간지를 보며 스크랩 하고 지역신문을 빠짐없이 꼼꼼하게 챙겨 본다. 그만큼 폭넓은 시각으로 지역을 살피고자 하는 마음 때문이다. 농촌을 생각하는 시의원에서 이제 폭넓은 시각으로 지역을 두루 살피는 자리에 서 있는 배연서 전 의장, 기본을 지키는 삶을 살고자 한다는 쉽고도 가장 어려운 말을 던지는 그에게서 평택시 농업의 밝은 미래를 감지했다는 건 너무 무리한 생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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