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8일, 제432회 이대원 장군 추모 제향
후손·해군 장병·내기초교 학생 100여명 추모


 

 

 

18살 어린 나이에 무과에 급제해 선전관에 오른 후 21살에 종4품 녹도만호가 돼 22살에 왜적과 맞서 싸우다 순국한 우리나라 전쟁사의 입지전적인 인물 충렬공 이대원 장군의 제432회 추모 제향이 그가 태어나고 묻힌 평택시 포승읍 희곡리 확충사䨥忠祠에서 거행됐다.

평택문화원과 확충사유적관리위원회는 지난 3월 28일 오전 ‘제432회 충렬공 이대원 장군 추모 제향’을 진행했다.

이날 추모 제향은 함평 이 씨 후손, 백운기 안중출장소장과 강정구·이종한 평택시의회 의원, 노병우 해군 2함대기지전대장과 장병, 내기초등학교 학생 등 1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해군 2함대 군악대의 연주와 ‘앙상블 수’의 진혼곡 연주로 엄숙한 분위기 속에 시작됐다.

특히 장군의 후손인 이계훈 전 공군참모총장이 낭독한 ‘절명시絶命詩’는 죽음 앞에 선 장군의 고뇌와 충효 정신을 그대로 엿볼 수 있었다.

이번 추모 제향에서 ▲초헌관은 백운기 안중출장소장 ▲아헌관은 노병우 해군 2함대 기지전대장 ▲종헌관은 김은호 평택문화원장이 각각 맡아 정성껏 차린 음식과 술을 올려 장군에게 예의를 다했으며, 참석한 추모객들도 차례로 영정 앞에 향을 피우고 국화로 헌화했다.

이계은 확충사유적관리위원장 겸 함평이씨평택대종회장은 인사말을 통해 “우리나라를 침입한 왜구를 물리치기 위해 손죽도巽竹島에서 싸우다 장렬하게 순국한 충렬공 이대원 장군은 고향인 포승읍 희곡리 확충사䨥忠祠를 비롯해 전남 여수시 삼산면 손죽도의 충렬사忠烈祠, 여수 영당影堂, 고흥 쌍충사雙忠祠 등에 제향 되는 역사적 인물로 오늘은 장군이 우리 땅을 침략한 왜구들과 싸우다 전사한지 432주년 되는 날”이라며 “오늘 추모 제향으로 평택의 역사 인물인 이대원 장군을 새롭게 인식하고 조명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며 이 자리에 참석한 분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고 말했다.

한편 이대원 장군은 1587년 2월 10일 손죽도巽竹島(損竹島·損大島라고도 불렸음) 해상에 왜선 20여척이 침공하자 이를 대파해 큰 승리를 거두고 개선했다. 이후 직속상관인 심암 장군이 그의 전공을 빼앗고자 했으나 이대원 장군이 말을 듣지 않자 원한을 품고 2월 17일 왜적이 대부대를 결성해 쳐들어오자 무조건 출전 명령을 내렸다.

결국 손죽도 해상에서 3일간 왜적과 맹렬히 싸운 이대원 장군은 죽기를 각오한 후 손가락을 끊어 피로 속적삼에 시를 남겼는데 이것이 바로 ‘절명시絶命詩’로 오늘까지 전해지며 추모 노래로 불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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