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택시의 노력과
평택시의회의 조례 제정
언론과 시민의 관심이
모두 필요한 시점이다

 

   
▲ 김해규 소장
평택지역문화연구소

지난주 필자는 티브로드 기남방송과 함께 팽성지역에서 근대문화유산 조사 활동을 했다. 팽성지역은 일제 말 일본군 비행장과 격납고, 보급기지가 건설되었던 곳이며, 한국전쟁 뒤에는 미군기지가 주둔했던 지역이다. 일제 말 일본군은 한국인 징용자 2만여 명을 징발하고 평택지역 주민들을 근로보국단으로 동원해 비행장과 보급기지, 격납고 등을 건설했다. 당시 건설됐던 군사시설은 해방 후 미군에 의해 접수됐고, 대한민국 정부 수립 뒤 한국군이 관리하다가 한국전쟁 중에 미군이 접수해 K-6 캠프험프리지 미군기지와 CPX훈련장으로 활용됐다. 오랫동안 미군에 의해 점유·사용했던 이들 군사시설은 미군기지 확장과 용산 미 8군사령부의 평택 이전에 따라 몇몇 군사시설의 반환이 결정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이번 조사 활동은 팽성읍 남산리 CPX훈련장을 비롯해 일제 말 일본군이 건설한 팽성읍 객사리 부용산방공호와 함정리 선말산방공호를 중심으로 이뤄졌다. 남산리 CPX훈련장은 평택지역 시민사회단체를 중심으로 ‘역사생태공원 조성’ 요구가 계속돼왔다. 팽성지역 주민들도 여기에 호응해 상당한 진전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부용산과 선말산방공호는 일제패망을 앞두고 군인과 주민 대피 그리고 전쟁물자 보관을 위해 건설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 시설물은 해방 후 일부 마을 주민들만 인지했을 뿐 평택시의 관심에서 벗어나 있었다. 한때는 주민들의 휴식 공간이자 식량저장고 역할을 했고, 근래에는 내부가 낡고 토사가 쌓이면서 방치된 상태였다. 더구나 부용산방공호 북사면 출입구는 우회도로를 건설하면서 부지불식 사라졌고, 부용산 남사면 방공호만 2014년경 평택시의 관심을 받아 입구에 철문이 설치됐다.

선말산방공호는 함정1리에서 함정2리 방향으로 관통한 형태다. 오랫동안 방치됐다가 환풍구로 토사가 밀려들어 굴의 중간쯤이 막혔고, 피난민 임시대피소, 주민들의 휴식 또는 식량저장고 역할을 하다가 함정1리 방향만 2003년 경 필자에 의해 알려졌다. 근래 토사와 쓰레기로 입구가 막혀 식별이 불가능했던 함정2리쪽 방공호는 올해 초 평택문화원 향토사연구소의 마을조사 과정에서 존재가 밝혀졌고, 이번에 기남방송과 굴삭기를 동원해 입구를 정리하고 내부 조사활동을 시행했다.

얼마 전 한국관광공사는 ‘한국인이 가봐야 할 한국관광 100선’에 광명시의 ‘문화예술로 채워진 광명 폐광동굴’을 선정했다. ‘광명동굴’로 명명된 폐 광산은 1912년 설립된 것으로 일제강점기 식민수탈의 표본이다. 광명시는 일제 침탈의 상징이었던 이곳에 역사사료관과 당시 모습을 재현한 역사체험장, 그리고 전시관을 조성해 일반에게 개방했다. 2016년에는 프랑스 라스코동굴벽화 한국전시를 광명동굴에서 개최해 세상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전라남도의회는 한 발 더 나아가 2018년 ‘일제강점기 유적 발굴 및 관리 조례’를 제정했다. 전라남도의회가 주목한 근대문화유산은 목포 일본영사관, 해남 옥매광산, 고흥 소록도병원, 여수 해군지하사령부, 목포 고하도 막사, 해남 해창주조장 등 일제의 식민통치, 군사작전, 강제동원에 쓰인 장소나 시설이다. 전라남도의회는 근대문화유산의 단순 보존뿐만 아니라 사료수집과 당시 경험자들의 증언을 채록하고 연구하며 전시하는 사업도 병행할 예정이라고 한다.

평택지역에도 근·현대문화유산이 꽤 남아 있다. 청일전쟁, 일제의 침략과 지배 관련 시설물, 식민지배의 잔재들, 해방 후 미군기지 관련 시설물, 한국전쟁이나 이동농업협동조합 관련 문헌과 시설물, 새마을운동 관련 시설물 등 일일이 열거할 수 없다. 이들 근대문화유산은 보존과 함께 역사문화콘텐츠로 활용도가 높다. 우리는 몇 백, 몇 천 년 전의 문화유산으로 역사를 재구성하기도 하지만, 근·현대문화유산을 통해서도 우리 삶을 반추하고 역사적 교훈을 얻는다. 우리 아이들도 근·현대의 아픈 역사 속에서 평화의 참된 가치를 배울 것이다. 근·현대문화유산 보존과 활용을 위한 평택시의 노력, 평택시의회의 조례 제정, 언론과 시민의 관심이 모두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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