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수/ 창비

 

▲ 유현미 관장
평택시도서관

“세상 모든 존재는 모두 저마다의 존재 이유가 있다”

어느 날 아침, 무당벌레가 거미줄에 걸렸습니다. 마침 지나가는 곰에게 살려달라고 애원해 보지만 곰은 자연의 법칙을 거스를 수 없다며 무심히 지나칩니다. 점심 때 곰은 우연히 그곳을 또 다시 지나가게 되고 무당벌레는 어설픈 아첨과 거짓말까지 동원해 살려 달라 애원합니다.  그러나 이번에도 곰은 얕은 속임수를 쓰는 무당벌레에게 “성냥불 하나가 온 산을 태우는 법” 이라며 외면합니다.

곰과 무당벌레의 대화를 통해 이 그림책이 던지는 메시지는 결코 만만치 않습니다. ‘약한 존재는 모두 선한 존재인가?’ 의문을 던지며 선악구도의 정형성을 뒤집는가 하면, ‘선하지 않은 약자는 동정의 여지가 없는 것일까?’ 되묻기도 합니다. ‘목숨을 건 절박한 상황에서의 거짓말을 똑같은 무게추로 달아도 될까?’ ‘자연의 법칙이라는 대전제 앞에서 착한 사마리아인은 기대할 수 없는 것인가?’ 라는 화두를 던지기도 합니다.

나에게 선한 존재가 다른 누군가에게는 적이 될 수도 있으며 또 그 반대의 경우도 성립할 수 있다는 ‘관계의 상대성’을 고민하게 합니다. 방관자인 척 하지만 속으로는 무당벌레와 거미 중 누가 자신에게 더 이로운 존재인지 계산하는 이중성을 지닌 곰과 절체절명의 순간 살아남기 위해 거짓말도 일삼는 무당벌레를 대치시켜 우리들 대부분은 절대적인 선인도 악인도 아닌 다양한 면모를 지닌 상대적인 존재임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사투의 현장에서 무당벌레는 무작정 ‘곰의 선의’에 기대보기도 하고 어설픈 아첨으로 망신을 당하기도 하지만 끝끝내 포기하지 않고 스스로의 힘으로 곰에게 자신의 존재이유를 설득해 냅니다. 

겨울이 가고 다시 봄이 왔을 때, 온 세상에 만발한 꽃은 무당벌레의 무사를 암시합니다. 필연적으로 약한 자에게 감정이입하고 마음을 졸였을 아이들도 이제 마음 푹 놓고 초대받은 꽃 잔치의 향연을 즐깁니다. 꽃이 만발한 들판 가운데 사랑을 속삭이는 곰 두 마리가 서 있습니다. 접은 면을 펼치면 화면 가득 끝없이 이어지는 꽃 잔치에 보는 이도 마음이 일렁입니다. 보고만 있어도 위안을 주는 이 장면은 단연 이 그림책의 백미라 할 만합니다. 

곰의 발톱보다 작고 약한 존재인 무당벌레가 이토록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 일에 한 몫을 담당하고 있다는 사실이 경이롭게 다가옵니다. 세상의 모든 존재는 그 자체로 존재 이유가 있음을 절로 깨닫게 합니다. 또한 서로 다른 존재인 우리가 서로에게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 다른 존재에 대한 연민이 우리 삶의 결을 어떻게 바꾸어 내는지 경험하게 합니다. 곰의 사소한 행동이 불러온 선순환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나면 곰의 선택에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여기까지 생각이 이어지면 성소수자, 이민자, 동물 등등 우리 안의 다른 존재 혹은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혐오를 돌아보게 하고 그것이 어떻게 우리 사회의 건강성을 해치는 지까지 생각이 꼬리를 물게 됩니다.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소장하고 싶은 그림책입니다.

저작권자 © 평택시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