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허훈기자가 만난 평택사람
허훈 기자가 만난 평택사람 : 이근표 / 순교자모리마르신부추모사업회장
허훈 기자  |  ptsisa_hoon@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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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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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마지막 도전, 온 힘 다할 것”


의료보험조합장·시의원 활동
대추농장 2000평 경영 시작

 

   
 

 

“최근 새로운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올해부터 오성면에 2000평 규모의 대추농장을 조성해 가꾸고 있죠. 농장 주변에 편백과 메타세쿼이아 등 많은 나무를 심기도 했습니다. 평택시는 특히 산림이 부족한 곳이기에 나무 심기를 무엇보다 열심히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진취적인 성장기
이근표(79) 회장은 고목이 즐비한 평택시 안중읍 덕우2리에서 태어났다.
“해방 당시 아버지께서 일제에 징집됐다가 죽지 않고 돌아와 온 집안이 축제 분위기였다고 합니다. 이를 축하하기 위해 마을 잔치를 벌였는데 어머니께서 음식을 먹고 심하게 체해 사흘 만에 돌아가셨다고 해요. 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지만, 당시에는 교통편은 물론이고 의료시설도 없어 생긴 일이었죠”
어린 나이에 아픔을 겪어서인지 이근표 회장은 어린 시절부터 학업에 남들보다 뛰어난 모습을 보였다.
“6살에 동네 아저씨와 손 붙잡고 청북면 옥길리 서당에 한문을 배우러 다녔습니다. 어린 나이에도 열심히 공부하는 저를 기특하게 여긴 훈장님께서는 매번 칭찬을 해주셨죠. 제가 남들보다 진취적인 성격을 갖게된 이유입니다”
그는 동네 어르신의 이야기를 듣고 애향4-H를 결성, 중학교 1학년 14살의 나이에 초대 회장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중학교 졸업 후 수원고등학교로 진학했습니다. 고등학교 재학 시절 학업보다는 사회에 관심이 많았는데 4.19혁명 직전에는 수원공설운동장에 모여 장면 내각을 지지하는 집회에 참가하기도 했습니다. 경찰에 잡혀 유치장에 끌려갔는데 교감 선생님의 도움으로 나올 수 있었죠”

파란만장한 청년기
학업보다 각종 사회 활동에 참여하기를 좋아하던 이근표 회장은 원하던 대학에 떨어지고 농사를 짓다가 소득이 변변치 않자 이듬해 갑작스레 수능을 치러 인천교대에 진학했다.
“등록금도 없고 매달 지원금까지 나온다는 말에 교대에 진학했습니다. 졸업 후에는 화성시에서 교사 생활을 시작했죠. 당시만 해도 어려운 친구들이 많았는데 한겨울 양말을 신지 못하고 온 학생들에게 양말을 사주고, 집안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의 준비물을 대신 사주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2년을 일했는데도 수중에 돈 한 푼이 없었죠”
회의를 느낀 그는 곧장 고향으로 내려와 다시 농사일을 시작했다. 1966년에는 농촌복지향상협의회를 조직해 농업인 간 교류를 모색하기도 한 이근표 회장은 2년 뒤 돌연 서울로 올라갔다.
“친구 소개로 서울 리라초등학교 학생들의 중학교 입시를 담당하게 됐는데 월급이 어마어마했습니다. 한 달에 10만원을 받았는데 당시 공무원 월급이 5000원이었던 것을 고려하면 상당한 금액인 것을 알 수 있죠”
하지만 이마저도 오래가지는 못했다. 다음 해에 중학교 입시제도가 사라진 것이다. 다시 평택으로 내려온 그는 결혼 후 신발가게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아내와 함께 신발가게를 운영했는데 3년 만에 경기도에서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점포가 됐습니다. 케미컬슈즈의 마진을 적게 남기면서 최대한 많이 판매하자 수익률이 좋은 학생화를 많이 공급받을 수 있었던 것이 성공요인이죠”

평택지역사회 활동
오랜 기간 사업을 한 이근표 회장은 1989년 초대 의료보험조합장을 역임했다.
1995년 5월 16일 의료보험조합장 임기가 끝난 직후 불과 한 달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6·13지방선거 출마를 결심한 그는 비전2동에서 무려 7명의 경쟁자를 이겨내고 평택시의회 의원에 당선됐다.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지만, 짧은 기간에 많은 표를 획득해 당선할 수 있었습니다. 시의원으로 활동할 당시에는 덕동산에 잔디광장을 조성한 일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건설사가 택지개발을 위해 당시 잔디광장 부지를 매입했는데 예산을 통과시켜 결국 공원을 조성할 수 있었죠”
이근표 회장은 시의원 임기가 끝난 뒤 본격적으로 평택신협을 이끌기 시작했다. 1972년 조합 설립 멤버로 참여해 오랜 기간 신협에서 활동해온 그는 이사장을 역임하면서 평택신협의 기반을 견고히 했다.
“평택신협 이사장으로 활동하면서 임대해오던 사무실을 떠나 본점 건물을 세웠습니다. 그 뒤에는 이충동에 분점을 내기도 했죠. 재임 동안 조합원 수는 2500명에서 8500명으로 대폭 늘어나기도 했습니다”
이근표 회장은 이외에도 평택항되찾기범시민운동본부와 평택시발전협의회, 평택문화원 등에서 활동하며 지역사회 발전을 위해 꾸준히 활동해왔다. 이제 대부분의 활동을 마무리하고 농장 가꾸기에 여념이 없는 그는 마지막 사업이 성공적으로 안착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노후를 보내면서도 끊임없이 도전하는 그의 모습이 지역 젊은이들의 귀감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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