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철학과
역사의식을 갖고
마을 숲을 보존하고
가꿔가야 한다

 

   
▲ 김해규 소장
평택지역문화연구소

경상남도 함양에는 ‘상림’이 있다. 신라 진성여왕 때 최치원이 만든 숲이다. 신라 6두품 출신으로 당나라에 유학하여 문재文才를 떨쳤던 최치원은 함양태수로 부임해 수해로 시달리는 백성들을 위해 상림을 조성했다. 지리산에서 나무를 캐서 식재했고 정성껏 가꾼 결과 오늘날 울창한 숲을 후손들에게 남길 수 있었다. 상림은 우리나라에서는 최초의 천연기념물로 지정됐다. 근래에는 함양군청에서 숲 주변에 몇 만평의 연못을 조성해 멋스러움을 더했다. 연꽃이 만발하는 초여름이면 수많은 여행객을 끌어들여 지역경제의 효자노릇도 한다. 상림과 같은 숲을 ‘관방제림’이라고 한다. 관에서 치리治理 목적으로 조성한 숲이라는 뜻이다. 조선시대 관방제림은 고을을 비보裨補하고 홍수와 자연재해를 막으며 백성들이 쉴 수 있는 공간을 제공했다. 담양의 관방제림은 1648년 담양부사 성이성이 처음 조성했다. 성이성은 춘향전에 등장하는 이몽룡의 실제 주인공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숲의 길이가 무려 15리에 이르고 끝나는 지점에 메타세쿼이아길이 이어지고 있어 수많은 관광객이 찾는다. 오늘날에는 담양하면 죽물시장, 죽녹원과 함께 관방제림, 메타세쿼이아길을 떠올릴 만큼 대표적인 관광 상품이 됐다. 원주 신림면의 성황 숲도 아름답고 영험하다. 김알지 신화가 탄생한 경주 계림鷄林도 널리 알려진 도시 숲이다. 오래된 숲에는 역사와 문화가 살아 있고 흥미로운 스토리가 전해온다. 경주 계림의 천년된 나무 앞에 서면 짧은 지식, 옹졸한 마음으로 살아온 자신이 부끄럽다.

우리민족이 숲을 신령하게 섬긴 것은 선사시대부터다. 숲에서 잠자리와 먹거리를 구했고 죽어서 숲에 묻혔던 선사시대 사람들에게 숲은 신성할 수밖에 없는 존재였다. 정착생활이 시작되고 토지이용이 다양해지면서 인간은 특별한 의미가 있는 숲을 지정해 보호하며 섬겼다. 서낭 숲, 성황 숲, 마을 숲이 그것이다. 과거 평택지역에도 다양한 숲이 존재했다. 진위면의 관방제림을 비롯해서 고을 읍치邑治의 성황 숲, 서낭당 숲, 마을제당의 숲, 풍수적 목적과 자연재해를 막기 위해 조성한 숲 등 종류도 다양했다. 이렇게 조성된 숲들은 신령한 공간이기도 했지만 주민들에게 녹지와 휴식을 제공하고 바람과 홍수를 막아주며 마을을 비보裨補하는 역할도 했다. 그래서 귀히 여겼다. 마을 숲의 나무 한 그루도 허투루 베어 내지 않았다.

오랫동안 마을과 함께 공생해온 마을 숲은 평택지역의 공업화와 도시화로 급격히 사라지고 있다. 마을공동체가 무너지고 자연에 대한 경외심마저 희미해지면서 사라지는 속도는 더욱 빨라졌다. 개발로 땅값이 상승하면서부터는 공公 개념마저 사라져버렸다. 이충동 동령마을 숲은 반면교사다. 키 큰 아카시나무가 울창했던 동령마을 숲은 마을 입구에 위치했던 비보裨補 숲이었다. 정월 대보름 줄다리기를 마친 뒤에는 이곳에 낡은 줄을 버렸다. 그래야만 마을로 들어오는 나쁜 액을 막아준다고 믿었다. 하지만 동령마을 일대가 개발되면서 마을 숲은 관심에서 멀어졌다. 나중에는 농사에 방해된다는 이유로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다. 평택지역에는 이렇게 사라진 마을 숲이 엄청나게 많다.

개발 속도가 빠른 평택지역에서는 전통의 마을, 전통의 경관, 전통의 마을 숲을 아끼고 보존해야 할 문화유산으로 인식하는 것이 필요하다. 도시 숲과 근린공원을 조성할 때도 역사적 스토리, 문화적 가치를 염두에 두고 조성해야 한다. 평택시는 근래 수많은 공원과 도시 숲을 조성하고 있다. 도시화가 진행되고 쉼의 공간이 부족한 지역현실에서 바람직한 일이다. 하지만 많은 돈을 들여 새로운 숲과 공원을 조성하면서도 마을 숲을 보존한다거나 숲과 공원에 역사성을 덧입히려는 노력은 많이 부족하다. 나무 한 그루를 심더라도 평택시의 정체성에 맞는 나무를 심으려는 노력, 역사적 의미가 담긴 마을 숲을 되살리려는 노력, 역사적 스토리가 살아 있는 공원을 만들려는 노력도 많이 부족하다. 평택시의 역사적 정체성은 하루아침에 그냥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철학과 역사의식을 갖고 접근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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