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택이
‘군사도시’보다는
‘평화도시’라고 불리기를
희망한다

 

 
▲ 강미 센터장
평택평화센터

부정하고 싶지만 많은 사람이 평택을 군사도시라고 말한다. 실제로 한국의 군사도시를 검색해보면 평택이 나온다. 게다가 평택은 우리나라의 군대가 아닌 외국군 군대 즉, 미군기지가 주둔하는 군사도시다.

나는 군사, 군대를 생각하면 전쟁이 떠오른다. 군사는 전쟁을 대비하고 훈련하기 위해 존재하는 모든 것이다. 평화를 사랑하고, 소원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분단국가에서 평화를 무력으로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한 때도 있었다. 그러나 정말 그랬을까? 남과 북의 평화로운 관계는 적대적인 대립을 끝내고 함께 해야 가능하다는 것을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방위원장이 손을 잡고 군사분계선을 넘어설 때 깨달았다.

평화와 전쟁은 함께 할 수 없다. 전쟁으로 평화가 온 역사는 없었다. 끔찍하고 잔인한 피해만이 남을 뿐이었다. 군사문화하면 떠오르는 몇 가지 단어가 있다. 무기, 획일화, 복종, 전체와 집단우선 등등. 평화는 다양성을 전제로 한다고 생각한다. 획일화하려는 순간 여러 형태의 갈등과 폭력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며, 다양함이 최대한 존중되는 사회가 평화로운 사회와 관계를 만든다고 믿고 있다. 다양함보다 획일화가 주장되는 순간 좋고 나쁜 것, 흑과 백은 분리되고 어떤 것은 무시하고 없어져야 할 것, 경멸해도 되는 것이라고 취급한다. 그런 기준은 힘이 강한 사람이 정하기 마련이고, 사회적 합의는 끊임없이 시대에 따라 변한다.

존재하는 모든 것이 관계를 잘 이루며 사는 것을 평화라고 한다면 우리의 시선은 조금 더 따뜻해 질 수 있다. 관대함이 일을 그르칠 수 있다고 생각하던 시대는 지났다. 평화를 생각할 때 중요한 일은 그 작은 일들이 왜 일어났는지 들여다보고 관찰하는 일이다.

작은 것이 전체에 복종하고, 수직구조가 편리하다는 문화는 우려스럽다. 많은 갈등과 일방적인 피해, 아픔을 불러올 수밖에 없다. 힘이 센 자, 성공한 자가 최고라는 논리에서 벗어날 수 없다. 우리나라는 분단의 상황에서 이런 구조가 당연시 돼 왔다. 항상 전체가 중요했다. 개인의 희생은 당연했다. 나는 이런 문화가 군사문화와 가깝다고 생각한다. 문화는 내가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물들어 가는 것이다. 평택에 살고 있는 주민으로서 부정하고 싶지만 군사문화는 우리와 가까이에 있다.

무엇보다 우선시 되는 군사와 안보 문제. 어느 순간은 동경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친구라고 하지만 항상 우위에 있고, 그 속내를 보여주지 않는다. 일방적인 관계를 당연하게 여기라고 한다. 한미어울림축제, 군사문화를 축제로 만든다는 것은 나의 이런 걱정을 백만 배로 늘게 한다. 군사기지 안에 들어가 전쟁무기를 구경하며 아픔을 느끼고, 그 무기에 죽어간 사람과 자연을 애도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동경을 배우게 된다면 과연 그것이 평화로 가는 길일까? 군사기지가 어떤 곳인지, 전쟁이 어떤 것인지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즐기기만 한다면 우리와 아이들에게 기억되는 것은 무엇일까.

나도 모르게 스며드는 전쟁에 대한 무딤, 폭력에 대한 둔함이 두렵다. 사라지면 좋을 것을 자꾸 상기하고 선전하고 즐기게 하는 것이 옳은가. 매일 휴대폰 들여다보며 폭력적인 게임을 하는 아이들을 걱정하고, 사회에 끔찍한 사건들이 일어난다고 한탄하면서도 폭력에 대해 둔해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일상에서 만나는 전쟁의 모습을 알아채지 못하고 물들어가는 것은 아닐지, 나의 아이들도 그렇게 되리라고 생각하니 너무나도 마음이 아프다. 그래서 평택이 군사도시보다는 평화도시라고 불리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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