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4년 11월 8일

진위·안성 하천 수리조합 갈망
진위흥농회사 야마다 등 발기

 

 

“安城, 振威의 兩河川의 治水에 關係가 有한 擴大廣漠한 耕地에 對하여 完全한 水利의 便을 供給함은 多年 關係 里民의 渴望하던 바인데, 當局에서도 ◯히 此點에 着眼하여 數年前부터 兩河川에 對하여 基本調査 中이더니, 過般 大略 調査의 完了를 告한 結果 水利事業이 甚히 有望함으로써 斷案함에 至한 模樣이다. (중략) 振安水利組合期成會를 組織하게 되어 來 二十一日 平澤에서 第一回 發議會를 開催하게 되었는데, 其 關係者의 主要한 數十名에게 對하여 案內狀을 發하였는데, 其 完成의 際는 兩河川 附近의 不動産 所有者는 勿論 農民은 多大한 利便을 享하게 되리라더라.”(『매일신보』 1923년 1월 18일)

진위천과 안성천 두 하천은 평택과 안성지역 농지의 중요한 수자원이다. 지금이야 치수를 잘 하기 때문에 홍수나 비 피해가 없지만, 1920년대만 해도 장마나 폭우가 쏟아지면 농경지와 시내가 물에 잠기기 일쑤였다. 그래서 농민뿐만 아니라 시내에 거주하는 주민들도 늘 불안하고, 때로는 공포였다. 그러다보니 주민보다도 관에서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들을 구상하기도 했다.

1920년대 초 당시 진위군청은 농경지를 확보하고 안정되게 물을 공급하기 위해 진위천과 안성천에 대해 기본조사를 마친 상황이었다. 수리시설을 하면 수만 평의 농경지를 확보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적지 않은 복지혜택을 누릴 수 있었다. 그렇지만 예산확보를 포함해 이해관계자의 협조 등 공사를 진행시키는 데는 적지 않은 어려움이 뒤따랐다. 당국에서도 적극적으로 추진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다고 이를 마냥 무심하게 미룰 수는 없었다.

그러던 중 서탄면에 있는 진위흥농회사 대표 일본인 야마다山田顯義가 발기인 대표가 되어 진안수리조합을 설립하기 위해 기성회를 조직했다. 1923년 1월 21일에는 제1회 발의회를 개최하기 위해 관계자 외에도 진위천과 안성천 주변에 땅을 소유하고 있는 지주와 농민들에게 안내장을 보냈다. 『동아일보』(1923.3.7.)에 의하면 실행위원 10명을 선임했으며, 진위·안성·용인·수원·천안의 군수를 고문으로 추대하였다. 이후 활동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확인이 되지 않아 실제 진안수리조합이 설립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농지 확보와 수제예방을 위한 지역주민의 노력이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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