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밝았다. 안녕하세요? 새해예요. 반가워요. 하시는 모든 일들이 잘 되길 빌게요. 낯선 사람에게도 미소를 지으며 이런 인사와 덕담을 건네고 싶다.
수만 년 동안 대지를 비추던 해가 뜨고 누리에 금빛 햇살이 번져간다. 영혼의 얕음과 깊음을 가리지 않고, 영웅이나 미인이나 범부를 가리지 않고 이 햇살이 평등하게 내리는 일은 얼마나 다행인가! 만약 영혼이 깊고 숭고한 생각을 품은 이들에게만 햇살이 내린다면 영혼이 얕은 나 같은 사람은 평생을 그늘 속에서 살아야 하리라. 연일 계속되는 맹추위로 금광호수의 물은 꽝꽝 얼고, 빈들과 산은 응달진 곳의 잔설(殘雪) 말고는 푸름은 찾아볼 수 없이 온통 잿빛이다. 이 잿빛 속에서도 생명의 온기를 품은 것들은 살기 위해 바지런히 움직인다. 시든 풀숲 아래에서 새들이 시끄럽게 지저귀며 씨앗을 찾고, 다시 공중으로 힘차게 날아오른다. 저 작은 생명체들의 바지런함은 그 생명의 장엄함으로 코끝이 시큰해지게 하는 바가 있다.
많은 계획을 세우고 설렘으로 시작했던 한 해가 덧없이 저물었다. 묵은해에 품었던 꿈과 계획들 중 아주 일부만을 이루고 남은 것들은 대부분 실패로 끝났거나 스스로 접었다. 이룬 것들은 뿌듯함으로 이루지 못한 것들은 아쉬움으로 남을 것이다. 당신의 지난 한 해는 어땠는가? 지난해에도 여전히 사는 일이 팍팍했다. 88만원 세대, 비정규직, 하우스푸어, 전세난, 경제 불황이라는 암울한 말들이 위세를 떨치며 서민들의 목줄을 죄었다. 일을 하고 싶어도 일자리가 없고, 아무리 열심히 일을 해도 가난을 벗어나기 힘들다. 당연히 우리가 꾸었던 많은 꿈과 계획들은 어그러졌다. 하지만 실망하지 마라. 꿈을 포기하지도 마라. 낙담과 실망이 꿈을 대신 하는 순간부터 몸이 아니라 마음이 늙기 시작한다. 마음이 늙으면 사람은 뒷걸음치고 꿈에서도 멀어진다. 보라, 지혜를 가진 시인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한다.

가장 훌륭한 시는 아직 씌어지지 않았다.
가장 아름다운 노래는 아직 불리지 않았다.
최고의 날들은 아직 살지 않은 날들.
가장 넓은 바다는 아직 항해되지 않았고,
불멸의 춤은 아직 추어지지 않았으며
가장 빛나는 별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무엇을 해야 할지 더 이상 알 수 없을 때
그때 비로소 진정한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
어느 길로 가야 할지 더 이상 알 수 없을 때
그때가 비로소 진정한 여행의 시작이다.

- 나짐 히트메크, ‘진정한 여행’ -

새해 첫날에 가장 훌륭한 시, 가장 아름다운 노래, 최고의 날들은 오지 않았다. 그것은 미래에 이루어질 일들이다. 넓은 바다, 불멸의 춤, 빛나는 별들도 만나지 못했다. 그것들 역시 미래가 품고 있는 것들이다. 그러니 실망할 필요는 없다. 사랑도 여행, 인생도 여행이다. 이 초록별에서의 삶은 누구에게나 단 한번 주어진 편도여행이다. 시인은 우리가 더 이상 무엇을 해야 할 지 모를 때, 어느 길로 가야 할 지 모를 때 비로소 진정한 여행이 시작된다고 말한다. 그렇다. 우리에겐 써야 할 가장 아름다운 시와 불러야 할 가장 아름다운 노래와 항해해야 할 가장 넓은 바다와 아직 추지 않은 불멸의 춤이 있다. 우리가 오지 않은 날들에 대해 희망을 품을 수 있는 근거들이다. 가장 아름답고 소중한 것들은 아직 우리에게 도착하지 않았다.

새해 첫날은 묵은 날과 다른 날이다. 그것은 어제의 낡음과 묵음을 혁신한 새로움을 제 안에 감추고 있기 때문에 기적의 첫날이다. 낡은 것을 무찌르는 쇄신, 탈바꿈, 재탄생, 그게 바로 기적이다. 이 기적은 새해가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라 새해를 맞는 자들이 만드는 것이다. 당신의 새해 기적은 무엇인가? 새해, 새날, 입학, 입사, 결혼, 아기의 탄생, 새집 마련, 신장개업, 첫 책의 출간, 집에 들인 새 고양이…. 이것들이 다 기적이다. 죽지 않는다면 기어코 기적은 일어난다. 오늘 죽을 것처럼 힘들어도 내일은 내일의 해가 뜬다. 오늘의 역경에 겁먹지 마라. 쇠붙이가 불에 달궈지며 강하게 연마되듯 사람은 역경에서 단련되고 그 역경을 딛고 도약할 수 있다. 역경을 견딘 자는 내면이 꿋꿋하고, 침착한 자태는 늠름하다. 해마다 한 겹씩 생겨나는 나무의 나이테도 여름의 것은 무르고 겨울의 것은 단단하다. 겨울의 나이테가 그렇듯이 역경과 시련은 자기 단련의 기회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에 대하여 제왕적 존재다. 새해 첫날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진 누려야 할 제왕의 하루이다. 주눅 들지 말고 가슴을 활짝 편 채 새해 첫날을 맞으라. 오늘보다 내일은 더 나아지리라. 우리에겐 그 행복한 날들을 맞을 권리가 있다. 샤워하면서 노래하라! 쑥스러워 하지 말고 가족과 포옹하라! 모란과 작약을 보고 기뻐하라! 사랑이 깨졌다면 새로운 사랑을 기다려라! 어디서든 시간만 나면 책을 읽어라! 오솔길을 걸으며 꿈꿔라! 연락이 끊긴 친구에게 편지를 써라!

 

 

 

 

 


장석주/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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