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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 평택의 전통예인-26
박성복 기자  |  sbbark@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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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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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시사신문·평택문화원 공동기획]

   
 

이돌천 평택농악 명인은
12살 때 풍물 소리에 혼이 빠져
유랑하는 남사당에서 활동해 오다
1985년 평택농악 예능보유자가 됐다

 

이돌천, 1919년 충청남도 천안시 서북구 쌍용동에서 출생
천안 쌍용동농악대에서 풍물을 배워 평택·천안 걸립패 활동
35살 때 평택농악 최은창과 운명적인 첫 만남, 걸립에 나서
1985년 평택농악 상법고로 국가무형문화재 예능보유자 지정

 

   
▲ 이돌천 국가무형문화재 제11-2호 평택농악 예능보유자(1919~1994년)




Ⅲ. 평택의 예인藝人
3. 농악

■ 이돌천李乭川

국가무형문화재 제11-2호 평택농악 예능보유자였던 이돌천 명인은 1919년 5월 26일 충청남도 천안시 서북구 쌍용동 38번지에서 아버지 이용성과 어머니 평택 임씨의 1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적지 않은 농사를 지으며 남사당패를 돌보던 아버지는 이돌천이 9살 때 돌아가셨고 어머니마저 재가해 생계가 막막해진 그는 12살의  나이에 풍물꾼 변홍섭의 집에서 생활했다.

1931년 12살 때 농사일을 하다가 풍물 소리에 혼이 빠져 유랑하는 남사당을 따라 충청남도 예산 신례원까지 따라가서 무동과 농악을 배우기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예산 신례원에 거주하던 나비상의 일인자 박치삼과 김종필에게 쇠와 법고를 배웠다. 박치삼과 김종필과 함께 법고잽이로 유랑생활을 하다가 1937년 18살 때부터 걸립패인 박운선 행중에 들어가 남운용南雲龍 등과 함께 걸립을 다녔고, 남사당의 상쇠인 이원보 패에도 가담하였다.

16세 때에는 마을 상쇠에게서 쇠를 배웠으며, 천안 쌍용동농악대에서도 풍물을 배워 평택과 천안 인근지역 걸립패에서 주로 활동하였다.

   
▲ 국가무형문화재 제11-2호 평택농악 역대 예능보유자 최은창, 이돌천, 김용래(왼쪽부터)

17살에는 충청북도 출신의 박지삼에게 법고를 배웠고, 18살에는 남운용南雲龍에게 법고를 배워 남운룡농악단의 법고수로 활약했다.

일제강점기인 1940년경부터 천안시가 주최하고 천안소방서가 주관해 음력 8월 16일부터 26일까지 5일간 충남 방적공장 자리와 촌동 대천내 다리 아래에 모래사장을 만들어 전국씨름대회와 농악경연 대회가 열리는 큰 난장이 있었다.

농악대회는 쌍용동 방축골농악대 상쇠인 이돌천과 인태경, 변상남, 김종한, 조병국, 오우섭, 김윤환 등이 주를 이루고, 남사당 등 유랑집단의 남운용, 이원보, 최성구, 방영태, 김재원 등을 불러들여 1등을 도맡아 하였다.

   
▲ 제23회 평택군민의날 축하공연을 펼치는 이돌천 예능보유자(맨 앞)
   
▲ 평택농악 판굿에서 상법고를 맡은 이돌천 예능보유자

주로 신방동농악대, 오룡동농악대 등이 참가하였으나 다른 농악대와는 겨룰 수 없을 정도로 잘 했다고 한다.

1954년 35살 때에는 평택농악 최은창과 운명적인 첫 만남이 이루어졌다.

최은창이 충청남도 예산소방서 걸립을 할 때 이돌천이 무동으로 참여해 최은창과 인연을 맺은 이돌천은 ‘최은창걸립패’에 들어가 평택 인근지역 걸립에 나서는 계기가 됐다. 1956년에는 송탄소방서 걸립에도 참여했다.

최성구에게도 쇠가락을 배운 이돌천은 남운용이 꼭두쇠가 되고나서 본격적으로 상쇠 역할을 학습했다.

그 이전에는 이돌천의 집에서는 최은창, 남운용, 이원보, 최성구, 김기복 등이 몇 개월씩 묵으며 농악을 함께 했다.

   
▲ 평택농악 판굿에서 상모를 돌리는 이돌천 예능보유자(맨앞)

이후 유랑집단 남사당이 구성된 1960년 서울남사당인 ‘민속극회 남사당’에서 송창선, 최은창, 김용래, 최성구, 남형우, 양도일, 송순갑, 임광식 등과 함께 활동했다. 남사당패로 활동하면서 쇠와 법고, 고사소리 등을 배웠으며, 이왈수에게도 많은 문서와 고사소리를 배웠다.

1980년 평택농악 명인 최은창으로부터 제21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 출전 요청을 받고 평택농악단에 합류했다.

이때의 구성원들은 평택 팽성읍 평궁리 사람을 중심으로 평택에서 이름난 풍물꾼들과 천안과 안성 등지에 거주한 웃다리풍물 명인들을 불러 모아서 조직됐다.

제주도에서 열린 대회에 경기도대표로 출전한 ‘경기농악’은 프로 이상의 전문성을 갖춰 너무 잘한다는 이유로 최고상인 대통령상을 개최지인 제주도에 내어주고 대회 주최 측은 즉석에서 예정에도 없던 특별상을 만들어 시상했다.

이를 계기로 이돌천은 최은창과 함께 1985년 12월 1일 국가무형문화제11-2호 평택농악 상법고부문 예능보유자로 지정됐다.

이돌천은 당시 우리나라 농악 보유단체 가운데서 유일하게 법고의 예능보유자로 지정받아 지정 의미가 매우 컸다.

이돌천은 평택농악 예능보유자로 활동하면서도 고향인 천안시에 농악대를 구성하는 것이 한결같은 소원이어서 1980년 초부터 농악단 설립에 노력하다가 1987년 ‘천안시립흥타령농악단’을 창단해 활동했다.

천안시립흥타령농악단은 이돌천의 아낌없는 지도아래 1989년 제1회 KBS사장기배 충남농악경연대회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하였다.

   
▲ 평택농악 판굿에서 상쇠를 맡은 이돌천 예능보유자

또 천안지역 학생들을 가르쳐 전주대사습놀이 경연대회 등에서 많은 상을 수상하게 하는 등 천안시립흥타령풍물단을 혼신의 노력으로 이끌어 성장시킨 장본인이 바로 이돌천이다.

이돌천은 평택농악 예능보유자 지정 이후 10여 년간 공연활동과 후진 양성에 힘써오다가 1994년 12월 5일 작고했다.

 
▲ 글·박성복 사장
   편집·김은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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