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9일, 향년 59세 나이로 유명 달리해
평택농민회, 7월 30일 추모식으로 넋 기려


 

 

 

30여 년간 평택농민회에서 활동하며 지역 농민의 삶을 위해 앞장서온 ‘농민해방을 꿈 꾼 농민운동가’ 이근랑 전 평택농민회장이 교통사고 후유증에 의해 지난 7월 29일 59세의 나이로 유명을 달리했다.

1988년 평택농민회준비위원회 회원으로 활동을 시작해 오랜 기간 평택농민회를 지켜온 이근랑 전 회장은 안중장례문화센터에서 장례의식을 치른 뒤 지난 7월 31일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관성리 선영에 안장됐다.

평택농민회는 평택시민사회장으로 장례를 치르며 오랜 기간 농민해방에 앞장서 온 고인의 공을 기렸다.

지난 7월 30일, 이근랑 전 평택농민회장의 빈소에서는 그의 영면을 기리는 추모식이 열렸다. 이날 추모식에는 장기용 평택농민회장과 임흥락 평택농민회 사무차장을 비롯한 농민회 회원과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참석했으며, 한도숙 전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이 추모시 ‘다시 피는 꽃이여’를 낭독하며 이근랑 전 회장 넋을 기렸다.

발인일인 7월 31일 오전 9시에는 안중읍 안중리 평택농민회 사무실 앞에서 고인의 가족과 지인, 평택농민회 회원, 시민사회단체 회원 등이 자리한 가운데 노제가 진행됐다. 평택농민회 회원들은 ‘농민가’를 제창하며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했다.

이근랑 전 평택농민회장은 세 번에 걸쳐 평택농민회장을 역임했으며, 수세 투쟁을 시작으로 청북읍 옥길리 택지개발사업 반대투쟁, 팽성읍 대추리 미군기지 반대 투쟁 등 농민의 삶과 터전을 지키기 위해 항상 고군분투孤軍奮鬪 해왔다. 최근에는 건강 악화로 이틀에 한 번 신장 투석을 하면서도 농민회 회의나 집회가 있으면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

임흥락 평택농민회 사무차장은 추모사를 통해 “내가 아는 이근랑 회장은 힘 있는 자에게는 엄격하고 힘없는 농민에게는 한없이 너그러운 형님이었다”며 “목숨과도 같은 투석 시간을 조절하며 평택농민회 회의에 참여하는 활동가였다. 이제는 농민회 걱정은 그만하고 행복하시라”고 전했다.

한편 고인은은 평택농민회 부회장과 회장, 청북면 옥길리 이장, 전국농민회총연맹 경기도연맹 부의장을 역임했으며, 최근까지 평택농민회 감사, 평택시쌀생산자협회장을 지내며 일생을 농민운동에 바쳐왔다.

 

 

故 이근랑 동지 추모시

 

다시 피는 꽃이여!

한 도 숙
전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

장마가 지나고 벼꽃이 일렁이면
밤마다 소쩍새는 울먹인다네
저기
동학년 싯퍼런 낫을 갈아들고
풍년가를 부르던 그 입들이
끝내 우금치를 넘지 못한 그 밤에도
소쩍새는 울먹였다네

약관의 나이 숱한 번민과 괴로움으로 새던 그 밤
무성산 밤 소쩍새 울먹임은
시대를 짊어지고 갈 숱한 고민들
함께 울먹이지 않으면 밤은 새지 않았겠지

천지에 벼꽃냄새가 가득하고
봇도랑마다 콸콸 물들이 노래할 때
강세둑 언덕넘어 새롭게 만들어 써야 할
농토의 역사를 부여안고 통곡했지

아직 세상의 근본인 농민들이 절룩거리는데
아직 도처에 쇠락한 마을들이 검게 변해가는데
아직 너의 통곡의 눈물이 마르지 않았는데
아직 조국의 끊어진 다리가 썩어가고 있는데
아직...아직...

근랑이! 자네 이름을 불러보네!
고백하건데
나를 따라 불구덩이라도 쫓아가겠다는
우직함이 부러웠다네
형같이 머리 쓰는 사람 싫어!
투쟁이 눈앞에 있으면 단순한거야...!
해답은 명쾌하잖아
싸우면 돼...!
복잡한 사안일수록 단순화 시켜
명쾌하게 난 결론은
투쟁...!!!
자네는 불사조여야 했는데
여기서 종지부를 찍어야 하는가
2005년 전용철 열사가 방패에 찍혀 숨졌을 때
자네도 머리가 깨져 40여 바늘을 꿰매고도
굳건히 투쟁으로 이겨 냈잖는가
그런데 겨우 이정도 상처로 허물어지고 만단 말인가
자넨 불사조란 말일세
어서 일어나시게

미안하고 미안 하이
요즘들어 부쩍 밥 같이 먹자고
여러 동지들에게 연락한 것을 듣고
동창리 강건너 갈비탕 같이 먹으며 만족해하던 모습 어른거리네
30년 전부터
신장의 몹쓸 별을 끌어 앉고
부글거리는 용암처럼 언젠가 쏟아내야 할 마그마들
넘쳐흐르는 걸 보고 또 나는 자네에게 내 마음을 들킨 것 같아
부끄럽고...부끄럽고...

소쩍새야 울지마라
삼천만 농민들아! 깨어있는 아들아 딸들아!
우리 앞을 스쳐간 촛불이 다시 동학년으로 돌아오리
우금치에 씻겨 내린 핏물들이
다시 너의 비로 내릴 것이니
울지 마라

그대 가신 그 자리에 푸른 나무가 솟아 오른다
너도 나도 손에 쥐고 눈을 벼르던
앉으면 죽산, 서면 백상의 창의로
푸른 나무 솟아 오른다

저 국은 땅 서서히 균열이 생기는 소리 들어 보아라
우후죽창 혁명의 목소리들아
울지마라, 흐느끼지 마라
너의 까아맣던 시절의 전설은 살아오리라
선을 넘자고 했다
트랙타를 타고 선으로 넘자고 외쳤지
그래 동지가 살아 선을 넘어야 하는데
이제 동지에겐 전설이 되어버린 것
허나, 모든 전설은 선을 넘어야 하는 것
바로 그 자리에 다시 피는 꽃을 볼 것이다

동지! 이근랑 동지!
잘 가시게
뒤돌아 볼 것 없이 훠이훠이 떠나가시게
하늘나라 노각밭에 노각 순 짚으며
선한 웃음 웃어보시게......
들판에 피어나는 이름 모를 꽃으로
다시 피어 나시게...

- 귀여재에서 형이자 동지인 한도숙 씀 -

 

 
저작권자 © 평택시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