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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훈 기자가 만난 평택사람 : 이계송 / 화백
허훈 기자  |  ptsisa_hoon@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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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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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과 그림의 만남, 문화공간 조성 노력”


와인 제조법으로 ‘호랑이배꼽’ 주조
미술관·양조장 혼합 공간 조성 추진

 

   
 

 

“제가 태어난 집을 기반으로 양조장과 미술관이 어우러진 평택의 대표 문화공간을 만들고 싶습니다. 나아가 이 공간이 많은 사람이 평택을 찾게끔 하는 하나의 관광지가 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오랜 기간 국내와 해외를 가리지 않고 화가로 왕성하게 활동해온 이계송 화백은 평택시 포승읍 희곡리에 위치한 자신이 태어난 집 옆에서 가족들과 양조장을 운영하며 평택의 대표 문화 공간 조성을 꿈꾸고 있다. 현재 둘째 딸이 대표를 맡고 있지만, 그는 많은 사람이 이 공간에서 대한민국의 술 문화가 세계 최고라는 것을 느꼈으면 좋겠다고 한다.

 

허약한 어린 시절

700년이 넘는 세월, 대대손손 포승읍 일대에 터전을 잡고 살아온 함평이씨 이계송(72) 화백은 지난날 고향의 모습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포승읍 내기리는 예로부터 교육열이 높은 곳이었습니다. 농지가 넓지 않아 먹고 살길이 막막하니 학업의 가능성을 보이는 한 자녀를 집안의 모든 식구가 지원하는 일이 허다했죠. 아버지와 저, 제 자녀들은 대를 이어 모두 내기초등학교를 졸업했는데, 1970년대에는 이곳에서 수십 명의 박사를 배출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계송 화백의 어린 시절은 그리 유쾌하지 못했다. 약한 체력으로 인해 온갖 병을 달고 살았기 때문이다.

“건강이 안 좋다보니 어린 시절부터 심한 우울감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어느 정도였냐면 하굣길에 쓰러지기도, 잠이 들기도 했어요. 매일같이 주사를 맞고 약을 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허약한 체질로 인해 친구들과 뛰어놀지 못했던 그는 주로 책읽기와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부모님께서는 공부하라며 서울에 나가살던 형에게 저를 보내셨습니다. 서울에 올라와서는 공부를 왜 해야 하는지 모르겠어서 방황도 했었죠. 그렇게 방황하던 중 그림 그리는 것이 좋게 느껴졌습니다”

 

문화도시 평택을 꿈꾸다

이계송 화백은 고등학교 졸업 후 미대에 진학하기를 원했지만, 부모님의 반대에 부딪혀 고등학교 졸업 후 농촌진흥청에서 공직 생활을 했다.

“일하면서 퇴근 후에는 화실을 찾아가 아이들을 가르쳤습니다. 결국 미련을 버리지 못한 채 18개월간의 짧은 공직생활을 뒤로하고 미대에 진학했습니다”

서양화를 전공한 그는 서울에서 오랜 기간 미술 활동을 펼쳤다. 다양하게 추진한 해외 교류전은 지역에서 문화 활동을 펼치는 데 많은 도움이 되기도 했다.

“1995년에 평택군과 평택시, 송탄시가 하나로 통합됐는데 당시 초대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평택지회장을 맡게 됐습니다. 4년간 회장직을 역임하며 평택을 문화도시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이계송 화백은 이때 평택의 문화 활성화를 위해 예술과 축제를 혼합한 ‘아트페스티벌’을 기획했다.

“예술과 축제를 혼합한 행사는 세계적으로도 없었습니다. 다양한 해외 교류전에 참여해 쌓은 인맥 덕분에 세계 각국의 작가를 초청할 수 있었죠”

그는 김영삼 정부 당시 문화지원 공모사업에 지원해 문화 공간 조성을 추진하기도 했다. 이 사업으로 만들어진 곳이 바로 현덕면 권관리에 위치한 평택호예술관이다.

“문화라는 것은 지금 당장의 이익보다는 후대에 어떤 평가를 받을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문화는 계속해서 변화하지만, 또 끊임없이 이어지기 때문이죠”

 

와인 제조법으로 본 전통주

이계송 화백의 집안은 오래전 정미소와 과수원을 운영했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그는 20대 때부터 배로 와인을 담그면 어떨까 생각하곤 했다.

“2000년쯤 프랑스 프로방스 지역에 머물며 와인 제조 기법을 눈에 익혔습니다. 이후 배와인 양조장을 운영하기 위해 농림축산식품부에 허가를 받으러 갔는데 당시 담당 공무원이 나주에 있던 배와인 양조장이 모두 망했다며 저를 극구 말렸죠. 그래서 와인 제조 기법을 활용, 막걸리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프랑스 보졸레누보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방부제가 없는 술을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다.

“보졸레누보와 같이 방부제 없는 전통주를 만들어 세계화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방부제 없는 막걸리 ‘호랑이배꼽’을 만들었죠”

서재하 청담고등학교 법사가 지어준 이름 ‘호랑이배꼽’은 한반도의 배꼽이라는 뜻으로, 호랑이 기운을 지닌 우리 민족의 전통주로서 아주 의미 있는 뜻을 담고 있다.

이계송 화백은 “술은 약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만병의 근원인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는 약 중에 가장 약한 독성을 지닌 것이 술이라는 이야기다. 물론 각종 첨가제나 방부제가 들어가지 않은 ‘호랑이배꼽’이기에 가능한 이야기다. 자녀들이 대를 이어 전통주를 만들어갔으면 좋겠다는 이계송 화백은 향후 평택의 대표 문화공간을 조성하기 위해 더욱 힘쓸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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