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아이들이 결혼해 곁을 떠난 후 제일 먼저 했던 것은 ‘장기기증’과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이었습니다. 그동안 최선을 다해 살아온 만큼 삶의 존엄한 마무리를 위해서는 어떤 순간이든 다른 이들에게 짐이 되는 일이 없어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장기기증’이라는 표식은 운전면허증 갱신과정에서 아예 면허증 한 귀퉁이에 새겨졌습니다. 아마 교통사고를 당하거나 갑자기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죽음 쪽으로 더 깊이 다가가는 일이 생긴다면 나의 장기는 누군가에게 전해져 새로운 생명을 얻게 되겠지요.

‘장기기증’과는 달리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한 후로는 내가 죽는 순간까지 인간으로서 존엄함을 잃지 않을 수 있겠구나 하는 안도감이 생겼습니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개인의 의지에 따라 등록할 경우 의사가 무의미한 연명치료라고 판단하면 건강할 때 미리 작성해둔 환자의 의견에 따라 심폐소생술이나 혈액투석, 항암제 투여, 인공호흡기 착용, 수혈, 혈압상승제 투여 등 단지 연명만을 위한 의료행위를 중단할 수 있게 됩니다.

누구나 한번은 죽음을 맞이하지만 나의 죽음을 직접 마주할 수 없다는 사실은 참으로 두렵고 불안한 일입니다. 그리고 그때가 되면 내 삶의 마무리가 타인의 의지에 따라 결정될 확률도 높습니다. 죽음의 문턱에 이르러 기계의 도움을 빌어 얼마가 될지 모를 긴 시간 동안 숨만 붙어 있는 상황에 놓이게 될 때, 내 앞에 있는 사람이 설령 의사나 사랑하는 가족이라 할지라도 내게 불필요한 의술을 동원하지 말라는 나의 마지막 엄중한 메시지가 바로 ‘사전연명의료의향서’인 것입니다. 

그런데 막상 그런 결정을 하고 나니 이상한 것이 있었습니다. 장기기증이나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한 후부터 내 육신을 더 소중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모든 인간은 어떤 환경에 처하든 주어진 삶에 따라 끝까지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모든 생명의 존재 이유입니다. 그처럼 최선을 다하는 삶 속에서 인간의 존엄도 지켜질 수 있습니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내가 건강할 때 스스로 나의 존엄한 죽음을 결정하는 하나의 절차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생명의 존엄함을 끝까지 내 손으로 지킬 수 있는 마지막 결정이 될 수도 있습니다. 

죽음에 관한 이야기는 아직도 재수 없다거나 불길하다고 치부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죽음은 우리와 그리 멀리 있지 않습니다. 아침에 눈을 떠서 잠이 들 때까지 뉴스에 수시로 등장하는 수많은 죽음은 이제 아나운서의 건조한 음성 속에서 어느덧 아무렇지도 않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보험을 설명하는 사람들은 처음부터 죽음이나 병듦을 전제로 상품을 설명하지만 그것 역시 어느새 당연하게 느껴진지 오래입니다.

전국적으로 웰빙 바람이 한창이더니 이제는 곳곳에서 웰빙을 넘어 ‘웰다잉’을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삶과 죽음이 멀지 않고 좋은 삶은 죽음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비롯됩니다. 내가 매일 죽음을 향해 가고 있음을 명확히 인지하고 있을 때 우리의 삶은 어제와 조금 더 다른, 눈부시게 값진 삶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이제는 한번쯤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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