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영·이회영 일가의
독립운동 정신을 계승할
콘텐츠를 만들자

 

   
▲ 김해규 소장
평택지역문화연구소

지난 8월 13일 더불어민주당 소속 이종걸 국회의원이 평택시를 방문했다. 광복절을 앞두고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념하고 아베 정권의 경제보복을 규탄하는 ‘2019 광복절 함께 걷기’ 행사의 일환이었다. <평택시사신문>은 이종걸 국회의원의 방문에 맞춰 평택시청 로비에서 ‘이석영 일가, 만석꾼의 꿈을 찾다’를 주제로 특별기획전을 열었다. 이번 전시회 자료는 지난 3월 <평택시사신문>이 특집보도했던 ‘기획특집-100년의 함성과 만석꾼의 꿈을 찾다’였다.

대중은 이석영은 낯설지만 이회영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다. 이회영을 비롯한 6형제가 조선 최고의 명문가라는 특권을 버리고 만석꾼의 재산을 팔아 독립운동을 위해 만주로 망명했다는 사실도 널리 알려졌다. 그들의 피땀 어린 노력으로 ‘경학사’라는 자치조직과 ‘신흥무관학교’가 설립돼 만주와 중국에서 전개된 무장독립투쟁의 초석이 됐다는 사실도 알 만한 사람은 잘 안다. 많은 이들은 그들이 독립운동에 쏟아 부은 돈이 수천 억 원에 달한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모든 것을 민족의 독립을 위해 헌신한 대가로 6형제와 그들의 아내와 자식들과 조카들은 병들어 죽고, 고문당해 죽고, 굶어서 죽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그들의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삶이 잠들어 있는 우리의 역사의식을 일깨운다는 사실까지도.

하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도 있다. 이회영과 6형제의 고향이 평택이며, 아직도 진위면 가곡리, 봉남리, 마산리 일대에 집성촌을 이루며 살고 있고, 무봉산 일대에는 경주 이씨 묘역과 사당, 재실들이 산재한다는 사실, 그리고 독립운동에 바쳤던 재산 대부분이 만석꾼 이석영의 독립의지와 헌신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 같은 것 말이다. 알려졌다시피 이종걸 국회의원은 이회영 선생의 손자다. 하지만 독립운동 명문가의 후손인 그의 기억 속에도 평택에 대한 인식과 이석영 선생의 독립운동에 대한 기억은 뚜렷하지 않은 것 같았다.

상기했다시피 올해는 3·1운동 100주년,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다. 올봄까지만 해도 경기도 각 지방자치단체는 떠들썩하게 행사를 개최하고 향후 청사진을 제시했다. 평택시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불과 몇 달이 지난 지금 100주년의 의미를 이야기하고 100주년 사업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관심 두는 사람은 많지 않다. 독립을 위해 피땀을 흘렸지만 아직 서훈을 받지 못한 독립유공자들을 발굴해 서훈하고 선양하겠다는 약속도 싸늘하게 식어버린 것 같다. 독립운동 사적을 조사하고 표석이라도 세워 기념하고 싶다는 필자의 소박한 바람까지도 실현 가능성이 희박해 보인다.

역사는 기억이다. 끊임없이 무엇을 기억하고 계승하려는 지를 되묻는다. 우리는 일본제국주의 침략과 지배, 민족적 위기 상황에서 우리 선조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떻게 살았는지 냉철한 역사의식을 갖고 바라봐야 한다. 친일부역세력이 뻔뻔하게 해방 후 친미반공세력으로 둔갑하여 여전히 부귀와 영화를 누리고 있는 현실을 좌시해서는 안 된다. 그들에게 이석영과 이회영 형제의 독립운동은 피하고 싶은 역사적 사실이지만,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자랑스럽고 영예로운 역사적 사실이다. 역사는 우리에게 무엇을 계승할 것인가를 묻는다. 어떤 삶과 정신을 계승해야만 우리의 후손, 우리 지역, 우리 민족의 미래가 밝을 것인지 묻고 있다.

필자는 제안한다. 이석영·이회영 일가의 독립운동 정신을 계승할 콘텐츠를 만들자. 역사의 현장에서 일제에 저항했던 이들을 위한 선양 사업에도 힘쓰자. 그것이 풍요로운 오늘을 사는 우리의 도리이며, 평택시민의 역사의식을 일깨우는 사업이고, 군국주의 부활을 획책하며 경제보복을 일삼는 아베 정권에 대항할 우리의 시대정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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