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변하는 세상에서
나의 경험이 최고라고 여기고
내가 아는 것이 전부라고
자만해서는 안 된다

 

   
▲ 공일영 소장
청소년역사문화연구소

춘추전국시대 ‘편작’이라는 명의가 있었다고 한다. 하루는 왕자가 죽었다는 말을 듣고 어의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더니 왕자의 상태를 파악하고 다시 살려보겠다고 나섰다. 이에 어의는 본인이 판단한 죽은 자를 살리겠다는 말에 기분이 나빠 화를 내며 나무랐다. 편작은 어의에게 “당신의 의술은 대롱으로 하늘을 보는 것과 같소”라고 말하며 태자가 보인 다양한 증상을 설명한다. 이에 임금은 편작에게 모든 권한을 주고 침을 놓도록 해서 태자를 살려낸다.

세상은 넓고 다양하며 깊이가 있다. 하지만 세상 물정을 잘 모르고 소견이 좁아 자기 아집에 빠져있는 사람들은 세상을 보는 시각이 좁을 수밖에 없다.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당시의 시각에서 이해하려는 경향이 강해 합리적 판단을 해칠 우려가 있는 것이다.

최근 매스컴을 가득 채우는 법무부장관 후보자의 자녀 입시 문제만 하더라도 그렇다. 일반적인 사람들의 시각에서는 쉽게 납득할 수 없는 금수저의 행태로 볼 수 있겠으나 죽 끓듯이 변죽을 울리는 대학입시와 교육정책의 측면에서는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농담으로 회자되던 입시담당자도 모른다는 다양한 전형이 존재하던 당시의 기준으로는 충분히 가능했던 사안으로 생각된다. 다양한 전형의 빈 틈을 잘 공략하고 관련된 준비를 잘 했다는 것이 불법일 수는 없다. 다만 기회의 균등, 다양한 정보의 제공이 보장된다면 불만이 표출되지 않았을 것이다. 이것이 해소되지 않기 때문에 다양한 불만의 소리가 나오는 것이다.

“내가 모르는 걸 어떻게?”, “그런 방법도 있어?”, “내가 말이야~”하는 소리는 집어 치우자. 비단 고위 공직자 인사청문회에서 드러나는 자녀 입시 문제를, 교육 전문가들의 소리를 듣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경험과 지식에서만 이야기하는 것이 안타깝다. 혹자는 이야기한다. 그럴 거면 국회의원 모두의 자녀 입시와 병역, 취업 문제를 까보자고. 정보의 습득과 독점으로 세상을 지배하려는 과거의 모습들을 이제는 버려야한다. 모르면 배워라!

중세 유럽 성직자들이 성경을 독점해 국민을 기만하고 권력을 휘두르던 기억, 한자로 무장해 백성들과 차별을 두고 그들을 지배하려 한글 창제를 극렬하게 반대하던 사대부들의 모습이 세상의 발전을 더디게 만드는 것이다.

우리는 그렇지 않은지 돌아보아야 한다. ‘좌정관천坐井觀天’하고 있지는 않은지? 그런 모습으로 남을 비난하고 있지는 않은지? 나만의 세상에 사로잡혀 포용하고 이해하려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는지.

빨대 구멍으로 하늘을 보면 그만큼만 보이는 것처럼 세상과 현상을 바라보는 시각도 넓혀야 한다. 특히 ‘100년지 대계’라는 교육은 중심 잡힌 정책으로 정권의 입맛에 맞는 교육 정책 수립이 아니라 현장의 목소리를 귀담아 들으면서 미래 세대를 위한 깊고 세심한 정책이 만들어지고 지속돼야 하는 것이다. 장관이 바뀌고 교육감, 교장이 바뀌었다고 손바닥 뒤집듯 정책을 바꾸는 것은 결국 학생들에게 피해가 가고 그것이 사회를 병들게 만드는 것이다. 모르면 물어보면 되는 것이다. 누구에게 물어봐야 할까? 현장 전문가다. 책상에서 정책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현장에서 정책이 만들어져야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나 때는 말이야~”하면 ‘우이독경牛耳讀經’이기 때문에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급변하는 세상에서 나의 경험이 최고라고 여기고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전부인 것이라 자만해서는 안 된다. 세상을 향한 돋보기를 들이대고 구석구석에서의 작은 몸부림과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대롱의 지름을 넓혀야 하는 것이다. 아니, 대롱을 과감하게 던져 버리고 두 눈 부릅뜨고 세상을 바라보아야 한다. 그럴 때 올바른 비판이 나오고, 세상은 따뜻하게 변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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