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가 파하자마자 숨이 턱에 닿도록 달려와 골목길로 돌아서는 순간
포장마차 리어카가 눈에 띄었습니다.
엄마는 포장마차 곁에서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엄마. 아버지는?
-음. 포장마차에 씌울 비닐지붕을 찾으러 가셨다.
-덕산이도 갔어?
-그럼 걔가 집에 있겠니. 벌써 네 아버지를 따라 나섰지.
책가방도 벗지 못한 채 수돗가에 놓여있던 물통을 들어다가 리어카에 싣는데 곁에서 구수한 어묵냄새가 났습니다.
-야. 맛있겠다.
김이 무럭무럭 나는 어묵은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돌았습니다.
-엄마 떡볶이는?
-육수를 만들었으니 이제 나가서 만들어야지. 
-그런데 아버지는 왜 안 오셔?
-음. 아버지는 비닐지붕을 찾아서 바로 '제이씨 공원' 앞으로 오시겠다는구나.
자 이제 됐다.
-엄마, 나는?
-나 혼자도 된다 넌 뒷설거지나 하고 이따 저녁때나 나오너라.
엄마는 뒤뚱거리는 리어카를 끌고 조심스럽게 골목길을 빠져 나갔습니다.
원래 텔레비전이나 냉장고를 고치는 기술자였던 우리 아버지는
군인이 되어 월남전에 싸우러 갔다가 포탄에 맞아 오랜동안 병원생활을 한 끝에
겨우 목숨은 건졌지만 한쪽 다리를 잘라내 장애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몸은 성치 않았지만 두 손을 움직일 수 있는 아버지는
조그만 가게를 얻어 전자제품 수리 센터를 했습니다.
그러나 요새 세상에 고장 난 전자제품을 고쳐서 다시 쓰는 사람은 흔치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고물장사가 가져오는 TV나 냉장고를 고쳐서 팔았지만
그것도 신통치가 않아 날이 갈수록 가게 안에는 팔리지 않은 냉장고와 TV로 발 디딜 틈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생각다 못해 아버지는 엄마와 함께 떡볶이 장사를 하기로 한 것입니다.

-덕산아 이 목도리는 네가 하고 가서 엄마 드려라.
덕산이와 마주앉아 저녁밥 먹은 것을 치우고는 벽에 걸린 엄마 외투를 챙겼습니다.
바깥바람은 차고 겨울하늘 끝에 매달린 별빛은 차고 초롱초롱했습니다.
-손님이 한 사람도 안 오면 어쩌지……
날씨 탓인지 거리에는 사람도 또 오고가는 자동차도 뜸했습니다.
-덕산아 저기 봐! 사람들이 와 있어. 저기 말이야 엄마도 보이잖아.
덕산이는 어디? 어디? 하며 두리번거리다가 엄마를 보고는
엄마아! 하면서 뛰어갔습니다.
-엄마 이 외투 입고 해 춥잖아.
엄마는 접시에 떡볶이를 담고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물 뜨러 가셨다. 옛다 이 거 먹어라 춥다.
엄마는 어묵이 담긴 국물을 한 그릇씩 떠주었습니다.
-야! 맛있다.
덕산이는 좋아서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습니다.
-지은아 다 먹었으믄 요 앞에 나가봐라 아버지 오시나.
다 먹은 어묵그릇을 놓고 막 밖으로 나가려는데 갑자기 포장마차가 통째로 흔들렸습니다.
-뿌드득 ! 뿌드드득 !
-탁! 탁! 탁 ! 쫘아악!
순식간에 리어카에 씌웠던 비닐이 다 찢어지면서 포장마차 안은 온통 수라장이 되었습니다.
-엄마야!
떡볶이와 어묵을 먹던 사람들은 놀라서 모두 밖으로 뛰쳐나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웅성거렸습니다.
-이봐! 리어카를 이리로 끌어내!
악쓰는 소리가 들리더니 리어카는 더 심하게 흔들렸습니다.
그 바람에 어묵을 끓이던 솥과 떡볶이를 만들던 철판, 숟가락과 접시가 땅바닥에 나뒹굴고
쏟아진 음식은 뒤범벅이 되었습니다.

-아주머니가 주인이요!? 누가 여기까지 나와서 포장마차를 하라 그랬어!
누구한테 허락을 받았냐구!
엄마는 아무 소리도 안 했습니다.
-아! 아줌마가 주인이냐구요!
-… …

낯선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들더니 리어카를 통째로 들어 올렸습니다.
-제가 주인인데요.
어느 틈에 왔는지 포장마차 뒤에는 목발을 짚은 아버지가 와 있었습니다.
말소리가 나자 포장마차에 둘러서있던 사람들은 모두 아버지 쪽으로 고개를 돌렸습니다.
그러자 여태까지 사람들 앞에 나서서 고함을 지르던 노란완장을 찬 사람은
힐끗 아버지를 한 번 쳐다보더니 멋쩍은 듯 한 발짝 뒤로 물러섰습니다.

-진작 말씀하지 그러셨어요.
목발을 짚고 선 아버지의 빈 바짓가랑이가 바람에 흔들거렸습니다.
그리고
아무도 더 말을 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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