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6년 7월 17일

결혼한 여자를 속여 팔아넘겨
행방불명 10여 일 후 경찰 신고

 

 

“남의 아내를 삭월 셋방 얻어둔다고 꾀여서 팔아먹었다는 혐의로 잡힌 국수집 중머리가 있다. 원적은 경기도 진위군 오성면 양교리(振威郡 梧城面  梁橋里)에 원적을 두고 현주소 시내 도렴정(都染町) 六五 번지 부벽루 중머리 김성재(金成載, 三三)는 十七일 서린정(瑞麟町) 六二 번지 김순덕(金順德, 三九) 처 최간난(崔干蘭, 三一)에게 삭월 셋방을 얻어 준다고 데리고 나간 이래로 행방불명이 되었던 것을 二十九일 오후 二시경에 김순덕이가 가로에서 남자만을 발견하여 붙잡아 가지고 종로경찰서에 이 사실을 신고하여 동서에서는 엄중한 취조를 개시하고 있다는데, 그는 전기의 여자를 상당한 값에 팔아먹은 것으로 짐작된다고 한다.”(『매일신보』 1936년 7월 23일)

‘인신매매人身賣買’라는 말이 있다. 사람을 물건처럼 사고파는 반인륜적 행위라고 할 수 있지만, 인신매매가 인간의 기본적 인권을 무시하고 인간을 마치 상품처럼 취급했던 전근대의 인식이 현대사회에서 사회경제의 불안, 물질 만능, 향락산업의 지나친 팽창 등이 복합화 되면서 인신매매가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은 사회적 문제이기도 하다.

인신매매의 대상은 주로 아동이나 여성들을 대상으로 하는데, 이들에 대한 배려가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한다. 1930년대 중반 평택사람에 의한 인신매매사건이 발생했는데, 그 사연인즉 다음과 같다.

1936년 7월 17일, 오성면 양교리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생활하던 김성재는 생활고가 어려운 최간난을 꾀어 인신매매를 했다. 최간난은 31살의 여성으로 가정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지만 남편이 마땅한 일을 하지 못해 경제적으로 어려워 생활고에 시달렸다. 당시는 일제강점기이며 만주사변으로 전시체제가 심화되고 있었기 때문에 대부분 경제생활이 어려웠던 시기였다. 이러한 시기에는 인신매매와 같은 사회적 범죄가 만연하기도 한다.

김성재는 고향을 떠나 서울에서 ‘부벽루’라고 하는 식당에서 중머리로 일을 하고 있었다. 17일 최간난에게 사글세방을 구해준다고 꼬여 어디론가 데리고 가버렸다. 남편 김순덕은 행방불명된 아내를 찾아 거리를 헤매다가 10여일이 지난 29일 오후 거리를 지나가던 김성재를 붙잡아 종로경찰서에 신고했다. 본 사건은 자치자종 알 수는 없었지만, 김성재가 최간난을 상당한 값에 팔아넘긴 인신매매로 짐작되었다. 이후 후속 기사가 없어 어떻게 처리되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당시 불안전한 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저작권자 © 평택시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